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경기도 농지, 셋에 둘은 외지인이 샀다

최근 3년10개월 경기도 농지 매수인 거주지 전수분석…
평택 현덕면 외지인 매수 90% 이상 5개 마을 현장취재
등록 2021-05-03 02:44 수정 2021-05-04 05:18
사진 가운데 넓은 땅은 세 필지로 이뤄진 밭으로 일부에서 잔디 농사를 짓고 있다. 총면적이 2만6201㎡에 이르며 세 필지 모두 평택농장이 과반수 지분을 가지고 있다. 2016년께 다른 농업법인이 일부 지분을 사들여 전국 각지로 쪼개 팔았다. 현재 세 필지의 소유자는 각각 26명, 25명, 20명이다. 밭에서 길을 건너 사진 위쪽으로 보이는 공사 현장이 안중역 개발 예정지다.

사진 가운데 넓은 땅은 세 필지로 이뤄진 밭으로 일부에서 잔디 농사를 짓고 있다. 총면적이 2만6201㎡에 이르며 세 필지 모두 평택농장이 과반수 지분을 가지고 있다. 2016년께 다른 농업법인이 일부 지분을 사들여 전국 각지로 쪼개 팔았다. 현재 세 필지의 소유자는 각각 26명, 25명, 20명이다. 밭에서 길을 건너 사진 위쪽으로 보이는 공사 현장이 안중역 개발 예정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토지 투기에 비판 여론이 거셌다. LH 직원은 공공기관 소속으로 토지 개발·보상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인과 다르다. 법적 처벌과 도덕적 비판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의문이 남는다. LH 직원만 처벌하면 공정성이 회복될까. 고위 공직자 청문회 때마다 ‘농지법 위반’은 단골손님이다. 헌법과 법률에 농지는 농사짓는 사람만 소유할 수 있다고 적혀 있지만, 현실은 아득히 멀다. 이미 농민보다 도시민이 더 많은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LH 사태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농촌 고령화와 맞물려 농지는 본래 목적을 잃고 차츰 ‘순수한 부동산’으로 변하고 있다. 도시민 지주에 현지 주민 소작농. 농촌은 이미 1950년 농지개혁 이전으로 돌아갔다. 최근 3년10개월치 경기도 등기 데이터와 한 마을의 사례로 농지의 부동산 투기화 현주소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모내기를 앞둔 논에는 물이 찰랑찰랑 담겨 있다. 갈아엎은 밭에는 고구마가 파종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황산리는 특별할 것 없는 농촌마을이다. 여느 농촌마을처럼 폐가가 즐비하고, 숨바꼭질하듯 사람 구경하기 쉽지 않다. 차로 한참을 달리고, 논둑을 밟고 뛰어야 마을을 지키는 노인을 하나둘 만날 수 있다.

도시로 변한 평택 동쪽과 달리, 평택 서쪽의 현덕면은 여전히 농촌이다. 나지막한 언덕을 굽이굽이 넘을 때마다 그리 넓지 않은 논과 밭이 펼쳐진다. 황산리로 들어서는 313번 지방도로에는 그 흔한 카페나 편의점 하나 없다. 대신 어림잡아 10곳을 훌쩍 넘는 부동산이 들어서 있다. 길가에는 ‘귀한 토지 매물 모십니다’라는 펼침막이 나부낀다. 이곳에서 황산리는 ‘역세권’으로 불린다. 바로 옆 안중읍 송담리 벌판에 2022년 말 개통할 서해선 복선전철 안중역이 공사 중이기 때문이다.

“농사지으려고 사나, 땅 차지하려 사지”

97%, 68%, 703%. 황산리를 설명하는 숫자들이다. 최근 3년10개월간 매매된 황산리 농지 중 외지인이 매수한 비율 97%(738건 중 716건). 현재 농지 면적 중 외지인 소유 비율 68%(황산1리 기준). 최근 20년간 땅값 상승률 703%. 숫자보다는 이런 표현이 더 와닿을 수 있겠다. 조금 보태어 말하자면 황산리는 서울 사람의 땅이다.

황산리는 ‘농촌의 부동산화’라는 빙산을 어림해볼 수 있는 한 조각이다. 또 다른 조각은 빅데이터다. <한겨레21>은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을 통해, 2017년 5월부터 2021년 3월까지 경기도 전체 토지 거래 등기정보를 받았다. 익명화됐지만 토지 매수인의 거주지 정보를 시·군·구 단위까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3년10개월 동안 경기도 농지(논·밭·과수원) 매매 중 매수인의 거주지를 알 수 있는 거래는 총 16만4145건. 이 중 농지가 속한 시·군과 매수인이 거주하는 시·군이 일치하는 경우는 5만8506건(35.6%)에 그쳤다. 나머지 10만5639건(64.4%)은 농지와 거주지가 일치하지 않았다. 이처럼 농지가 속한 시·군에 살지 않는 64.4%의 매수인을 이번 기사에서는 ‘외지인’이라고 정의한다. 외지인 매수 비율을 통해 농지가 농사 목적보다 투기 목적으로 더 많이 거래되는 현실을 짐작해볼 수 있다.

데이터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농지 근처에 살지 않는 땅주인이더라도 멀리서 와서 농사지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농지 거래가 가장 활발하고 외지인 매수 비율이 가장 높은 평택시로 가서 농민들에게 현지 사정을 직접 물었다. 외지인 매수 비율로 경기도 최상위권인 현덕면 황산리(97%)와 인광리(96.7%), 도대리(96.5%), 안중읍 대반리(96.4%)와 삼정리(92.8%) 등을 돌아다니며 농민 10여 명을 인터뷰했다.

“솔직히 말해서 농사지으려고 사나, 땅 차지하려고 사지.”
60년을 황산리에서 산 주민 박아무개(82·여)씨는 외지인이 농사짓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외지인이 논밭을 사간 뒤에도 농사는 계속 동네 사람이 짓는단다. 옆 마을 인광리 성광교회 최충일 목사도 “전부 동네 주민이 농사짓는다”고 했다. 도대리, 대반리, 삼정리에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됐다. 삼정리 주민 이도경(57)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농사가 얼마나 힘들고 수익이 안 나는데, 외지인이 누가 와서 농사를 지어요. 취미로 텃밭 하는 거면 모를까.”

황산1리는 남북으로 길게 생겼다. 안중역과 가까운 북쪽에 외지인 땅이 많고 기획부동산도 주로 이곳에서 활동했다. 평택농장은 소유자가 대를 이어 서울 강남구에 살고 있다. 평택농장 땅도 사실상 외지인 땅으로 볼 수 있다. 황산1리에서 외지인 소유 농지는 필지를 기준으로 59.7%, 면적을 기준으로 67.6%다.

황산1리는 남북으로 길게 생겼다. 안중역과 가까운 북쪽에 외지인 땅이 많고 기획부동산도 주로 이곳에서 활동했다. 평택농장은 소유자가 대를 이어 서울 강남구에 살고 있다. 평택농장 땅도 사실상 외지인 땅으로 볼 수 있다. 황산1리에서 외지인 소유 농지는 필지를 기준으로 59.7%, 면적을 기준으로 67.6%다.

평택 농지 매수, 서울시민 28.8% vs. 평택시민 15.8%

평택 농지를 누가 주로 사는지 들여다보면 농민들의 이야기에 설득력이 커진다. 3년10개월간 평택 농지는 2만8162건 거래됐다. 이 중 매수자가 평택시민인 경우는 4443건(15.8%)밖에 안 된다. 서울시민이 매수한 거래가 8111건(28.8%)으로 2배가량 많다. 2019년 기준 서울시민 973만 명 가운데 농사짓는 사람은 7586명, 인구 대비 농업인 비율은 0.08%다. 반면 평택시민 중 농업인 비율은 3.93%로 서울보다 49배 높다. 농지가 어디서 어디로 팔려가야 농사 목적으로 활용될지 가늠해보는 건 어렵지 않다. 평택 농지는 경기도 수원시민(농업인 비율 0.69%)과 성남시민(농업인 비율 0.24%) 등도 많이 샀다. 일부 농업인도 포함됐겠지만 상당수는 투자 목적의 매수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외지인 매수세의 원인이자 결과는, 땅값 상승이다. 개별공시지가 기준 황산리 토지 평균가격은 2000년 ㎡당 1만1492원에서 2020년 8만840원으로 20년 만에 무려 7배 넘게 뛰었다. 참고로 서울 아파트 가격은 같은 기간 2.8배 올랐다. 황해경제자유구역, 평택호 관광단지, 화양지구도시개발 등 현덕면 주변에 불어닥친 개발 바람이 고루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중에서도 앞서 이야기한 안중역 개발의 영향이 컸다. 2007년 충남 홍성군에서 경기도 화성시를 잇는 서해선 건설 사업이 확정됐다. 안중역도 거기에 포함됐다. 2022년 말 안중역이 완공되면 평택시가 역세권 개발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전국에서 황산리 땅을 사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겨레21>은 황산1~3리 중 1리에 속하는 농지 412필지의 등기부등본을 떼서 소유권을 살펴봤다. 서해선 철로 설치로 정부·지방자치단체에 수용된 174필지를 제외하고, 238필지 중 평택시민이 소유한 것은 87필지(36.6%)에 그쳤다. 나머지는 외지인 소유 106필지(44.5%), 평택농장 소유 37필지(15.5%), 외지인·평택시민 공유 8필지(3.4%)였다. 평택농장은 본점이 황산리에 있지만 소유자가 대를 이어 서울 강남구에 살고 있다. 사실상 외지인 땅인 셈이다. 종합하면 외지인 소유가 143필지(60.1%)에 이른다. 그리고 등기부등본을 보면 황산리에 기획부동산이 활개 친 흔적이 역력하다. 소유자가 10명 이상인 것이 51필지(21.4%)에 달한다.

면적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외지인 소유 비율이 더 높아진다. 전체 59만4720㎡ 중 국공유 11만8596㎡를 제외하고 47만6124㎡를 살펴봤다. 평택시민이 소유한 땅은 15만4328㎡(32.4%)에 불과했다. 서울시민 소유 면적이 13만6281㎡(28.6%)였고, 평택농장 10만535㎡(21.2%), 서울 외 전국 8만4979㎡(17.8%)가 뒤를 이었다. 종합하면 외지인 소유 면적이 황산1리 농지의 67.6%였다. 황산리 땅은 이미 황산리 사람의 손을 떠났다. 눈에 띄는 점은 하나 더 있었다. 서울시민 소유 면적 중에서도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구민 소유 면적이 6만4457㎡로 절반 가까이 됐다.

서해선 안중역 공사가 한창인 경기도 평택시 안중읍 송담리에 최근 지어진 아파트. 황산리에 투자를 권유하는 일부 부동산에서는 황산리도 곧 송담리처럼 개발될 것이라고 홍보한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서해선 안중역 공사가 한창인 경기도 평택시 안중읍 송담리에 최근 지어진 아파트. 황산리에 투자를 권유하는 일부 부동산에서는 황산리도 곧 송담리처럼 개발될 것이라고 홍보한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현지 부동산 “농업경영계획서도 대리 가능”

농촌 땅값 상승은 아이러니한 상황을 불러왔다. 농민이 농지를 못 사게 된 것이다. “땅값 금값 됐슈. 얼마나 비싼데. 시골 사람은 땅 못 사.” 황산리 주민 박씨는 말했다. “시골 사람이 무슨 돈이 있슈. 좀 비싸게 주면 다 팔았지. 본토박이들은 못 샀어요. 팔아먹을 때는 싸게 팔아먹고, 살려고 하면 금값인데. 여기 땅 가진 사람 얼마 없슈. 나부터두 그렇게 했으니께. 애들 가르치라니께. 그래서 다들 판 거유. (후회는 안 하세요?) 안 해유. 자식 가르친 게 땅 산 거유.”

외지인에게 넘어간 땅이 다시 주민에게 돌아오는 일은 없을까. “그 사람들이 파나? 안 팔지. 시방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앞을 내다보고 산 거 같아. 철도 같은 거 우리는 생각이나 했어요? 꿈도 못 꿨지.”

땅값 상승은 농촌 소멸을 가속한다. 실제 농사지으려는 사람이 농촌에 땅을 사서 들어올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건, 외지인이 땅을 샀다는 사실보다 마을 주민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광리 주민 ㄱ(70대 후반 여성)씨는 외지인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는 소모된 기분이지. 동네 인심도 사나워졌어. 옛날에는 동네 사람들이 한 가족처럼 살았는데, 노인들은 다 죽고 자식들은 다 팔고 나가고, 이제 이 동네는 없어질 거 같어.”

황산리는 2021년 현재도 외지인 투자가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에서 황산리 농지 투자를 권유하는 한 공인중개사와 통화했다. “안중역 1㎞ 안에 토지를 사면 나중에 역세권 환지개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요(토지를 수용하는 대신 개발된 땅을 주는 제도). 지금 황산리에서 안중역 가까운 땅은 평당 200만~300만원 정도에 거래되는데, 2~3년 뒤면 최하 50% 이상 수익이 나요.”

직접 농사짓지 않는데 농지를 사도 괜찮은지 물었다. “요새 LH 사태다 뭐다 해서 그러는 거 같은데, 걱정할 필요 없어요. 보통 지주들이 농사짓지 않거든요. 소작 줘서 현지분들이 지으면 돼요. 그것도 저희가 연결해드려요. 300평 미만은 주말농장으로 쉽게 농취증(농지취득자격증명) 나오고요. 300평 넘어가면 농업경영계획서 내야 하는데 그런 건 저희가 다 대리해드려요.”

*2편 “농사지으려고 사나, 땅 차지하려고 사지”으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300.html

평택=글 변지민 기자 dr@hani.co.kr·이정규 기자 jk@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참고 문헌
1.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지법상 예외적 농지소유 및 이용실태와 개선과제’, 2019
2. 평택시, ‘평택의 사라져가는 마을 조사보고서’, 2018
3. 사동천 홍익대 법과대 교수, ‘합법적으로 농지를 소유한 비농업 상속인이 농지를 불법적으로 용도변경한 경우 농지처분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 2019
4.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토지공개념에 기초한 농지관리 제도 개선 방안’, 2019
undefinedundefinedundefinedundefinedundefinedundefinedundefinedundefinedundefined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