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 그늘 아래 혼자 앉아 있다. 멀리서 공을 가지고 농구 하는 친구들을 지켜본다. 친구들은 머리카락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결을 느끼며 햇살에 눈을 찌푸릴 뿐인 나와는 대조적으로 운동장 흙바닥에 땀방울을 뿌리고 있다. 땅을 울리며 뛰고, 높이 점프하고, 팔을 휘젓고, 서로의 이름을 소리 높여 외친다. 체육 시간이다.
원래도 체육 시간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 특히 탁구 수업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리 연습해도 탁구 실력은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비단 탁구뿐 아니라 체육은 나에게 투자한 시간 대비 결과가 가장 안 나오는 과목 중 하나였다. 나는 내가 운동에 재능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한 번을 피하거나 꾀부리지 않았다. 연습하라고 주어진 시간을 꽉 채워서 움직였다.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을 가장 원했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최선을 다했다고라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병에 걸린 걸 처음 알았을 때는, 이제는 체육 시간에 전처럼 온 힘을 다해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가 생겨서 조금은 기뻐했다.
이제 체육 시간은 가장 혼란스럽고 무기력한 시간이 됐다. 병원에 다녀오느라 수업에 빠져서 공백이 느껴져도 듣다보면 녹아 들어가는 다른 수업 시간과 달리, 다른 아이들 속에 섞여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크게 느껴진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곳에 앉아 있어도 함께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몸을 쓰는 활동은 당연히 할 수 없고, 약의 부작용으로 관절이 약해졌으므로 점프하는 것도 안 된다.
농구 수행평가는 주어진 방법대로 농구 골대에 골을 넣는 방식이었다. 어차피 어느 정도는 참여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안내받을 때도 남 일처럼 여겼고, 이런 마음가짐으로 임하면 좋은 결과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적어도 기대치가 높지 않으니 결과에 실망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몇 번 연습해봤을 때는 골대에 공을 몇 번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수행평가를 위해 타이머 버튼이 째깍, 눌렸다. 12개의 골을 넣어야 만점인 시험, 단 1개의 공만이 골대를 통과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다 알았는데도 왜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하며 결코 이길 수 없는 과거의 결과를 가져와서 비교하는 걸까. 예전만 못한 모습에 실망이 솟았다. 주변 친구들에게 가서 최대한 밝게 “그래도 한 골 넣었어!”라고 말했다. 바꿀 수도 없는 정해진 결과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어쩌면 그런 속내까지 투명하게 드러났을 수도 있다. 눈치 좋은 친구가 그 점을 발견해서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내 결과도 만족스럽지만은 않아” 하며 위로를 건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 나는 입을 감쳐물며 텁텁한 마음을 꾸역꾸역 삼키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친구가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다.
“다음에 두 골을 넣으면 두 배고, 세 골을 넣으면 세 배고, 네 골을 넣으면 네 배네! 더 잘할 수밖에 없구나!” 이 대목에서 나는 그 친구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놀라운 것을 발견한 어조로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 굉장한 일은 처음이라는 듯이. 진부한 응원의 말을 했더라도 진부하게 들리지 않았을 텐데, 고작 한 번 골대를 통과한 내 공에서 큰 가능성을 봐줄 줄은 몰랐다.
그다음 기회에는 세 골을 넣었다. 예전만 못하고, 이전 기회를 만회하기에도 턱없이 모자란다. 하지만 설령 0골을 넣었다 해도 1에 0을 곱한 수를 넣었다고 말할 수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배수로 늘어났다고. 농구 실력이 이만큼 떨어졌다고 풀 죽은 것 말고 다른 할 말이 있었다.
신채윤 고1 학생
*‘노랑클로버’는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고 있는 학생의 투병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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