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도 몸이 안 좋지만 요즘은 더 몸이 좋지 않다. 전체적으로 힘이 빠졌고, 이따금이 아니라 만성적으로 어지럽다. 계단 한 층을 걸어 올라가는 일조차 지구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힘겹다. 고등학교 2년 동안 열심히 살아서 그 반동이 이제 찾아오는 걸까. 왜 하필 지금일까. 나는 지금도 열심히 살 생각이다. 그런데 아프면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지 못한다.
몇 주간 제대로 학교에 가지 못했다. 몸이 약해지면 우울이 대체 어떻게 안 건지 찾아온다. 사실 면역과 감정, 그중에서도 우울함은 작용이 비슷하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비슷한지는 모르겠다. 몸이 약해질 때는 더 쉽게 우울해지고, 우울하면 몸이 약해지고. 얼핏 당연한 말 같은데 또 새삼 신기하다. 생각과 몸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육체가 무너질 때 마음이 무너지지 않으려는 것은 정해진 몸의 섭리를 견디는 일이다.
6월2일 또 오랜만에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다. 지난해보다 더 나아지거나 심해진 건 없다. 눈에 띄는 수치와 검사 결과로 몸에 변화가 있으면 더 아파진 것으로 판단하고 약을 줄이거나 더할 텐데, 아무리 아파도 검사상 변화가 없으면 임의로 약을 조절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의사 되기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지만, 치료를 판단하는 건 비교적 쉬워진 시대가 온 것 같다. 병원에서 만나는 의료인에게 늘 감사함을 느끼지만 아픔과 고통을 막아주지 못하는 현대의학이 구멍 뚫린 우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비가 새는 것 같다. 아픔이 새는 것 같다. 비가 아니라 칼이 내린다. 젖은 옷이야 갈아입으면 되지만, 피할 길 없는 칼에는 어떻게 맞서야 하나? 막막해질 때가 있다.
아마도 그의 고통스러운 생애라는 배경을 알아서겠지만, 고흐 그림의 붓질 하나하나가 아프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미술 선생님의 해석에 따르면 고흐의 그림은 착란적인 색깔을 사용하고, 현실적이지 않을 때도 많다. 아, 고통은 추상화되곤 한다. 그 낱낱을 세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아무도 듣거나 보고 싶어 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아픈 이를 외롭게 하니까.
어젯밤에는 약이 입안에서 불어나는 꿈을 꿨다. 내 몸을 낫게 하려 약을 먹었는데 목구멍에 채 닿기도 전에 두 배, 세 배로 늘어나서 목을 막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은 정교한 환각과 상상일 뿐 멀쩡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아침에 눈을 뜨고도 그때의 답답함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쩌면 그것이 단순히 꿈이 아니라 실제 일어난 게 아닐까 싶었다.
잘 지내느냐 그렇지 못하냐를 물으면 섣불리 대답하기 어렵다. 잘 지내는 것 같은데 아직도 불어난 약이 입안에 남은 듯하고,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듯한 눈물을 흘리는데 갑작스럽게 친구와의 대화가 날 다시 기쁘게 한다. 아픈 것은 몸인데 언어화하면서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감정뿐이다. 세포 하나하나를 느낄 순 없으니까. 감정조차 내가 아는 부분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래도 말하기를 멈추지 않기로 한다. 감정이라도, 내가 아는 것은 작은 집 안마당에 준하는 좁은 공간일지라도 탐험하기로 노력해본다.
2021년 7월22일의 일기에는, ‘내가 싸우는 대상은 어쩌면 삶을 이어나가지 않고서는 이길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적었다. 한창 내가 싸우는 것이 삶 자체가 아닌가 의심할 때였다. 어쩌면 진실로 나는 살아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기 위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삶 속에서라야 그게 무엇이든 싸워보기라도 할 수 있다.
신채윤 고3 학생
*노랑클로버: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고 있는 학생의 투병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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