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간은 엄마와 밤마다 산책했다. 산책 코스는 매일 같았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더 멀리 가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멀리 가리라 다짐하는 식이었다. 집에서 출발해 얼마 되지 않아 넓지 않은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건너온 저편을 바라보며 걸으면 하얀색 조그만 덩어리가 촘촘히 박힌 버드나무를 볼 수 있었다. 주변에 버드나무가 많은데 그런 나무는 그 한 그루뿐이었다. 산책하러 나간 둘째 날 그 버드나무를 발견했고, 새인가 싶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해 가까이 가봤다. 마침 그 나무 옆 나무에 비닐봉지가 매달려 있었다. 엄마와 나는 그 나무에 매달린 것도 흰 비닐봉지이거나 종이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다음날 등교하면서 보니 나무에 박혔던 흰색 물체들은 온데간데없고 그 나무 바로 앞 하천에 하얀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놀고 있었다. 비닐봉지도, 종이도 아니었다. 새들이었다. 밤이 되면 새들은 날개를 접고, 정해놓은 나무(집인가 싶었다)에 올라앉아 잠들었을 것이다. 그다음 날에도 새들은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 날에는 없었다. 날이 추워지면 새들이 사라졌고, 다시 날이 조금 풀린다 싶으면 아니나 다를까 새들은 나무에 찾아들어 잠들었다.
추울 때 새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날이 추워져서인지 요즘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 자주 지각한다. 아침에는 몸이 더 아플 때가 많다. 이것이 단순히 게으름인지, 아파서 그런 건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병을 진단받고 초기에는 게으름과 아픈 것이 칼같이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병을 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력이 남아 있었기에 어느 정도 구분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구분도 어렵거니와 굳이 구분하는 게 의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최선을 다했지만 안 되면 거기까지. 나는 아침에 일어나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싶다. 나는 아프고 그것이 몸의 컨디션에 영향을 주는 게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에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병을 앓는 것에 절대 익숙해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병을 진단받고 2주쯤 지났을 때 엄마에게 “이제부터 여행 온 것처럼 살 거야”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때 “아, 얘가 마음을 다잡는구나” 하고 조금 안심했단다. 이제야 밝히건대 그때 그 말은 사실 병에 적응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선언이었다. 집을 떠나온 사람이 바깥에 적을 두고 마음을 붙이는 일은 있을 수 없으므로. 병과 함께 살아야 함을 인정하지 않고 병을 낯설게 바라보겠노라는 결심이었다.
3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병을 앓는 일에 적응한 것만 같다. 이따금 치밀어오르는 낯섦이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병과 함께 살아가야 함을 인정하고 있다. 낯선 기분이 드는 빈도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건 마치, 여행을 떠나온 뒤 돌아갈 곳을 마음에서 지워버리는 일 같았다. 이제 돌아갈 수는 없다.
적응한다는 건 유지하는 데 아무 힘도 들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매일이 힘들다. 병을 앓는 것이 힘들다. 병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로 괴롭다. 그래도 연연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환자로서의 당당함’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신채윤 고3학생
*노랑클로버: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고 있는 학생의 투병기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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