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꼬박 사흘이 지나면 나는 법적으로 성인이 된다. (병 때문에 마실 순 없지만) 술을 살 수 있고, (피울 생각 없지만) 담배를 살 수 있고, 나이 제한으로 출입 불가능한 공간이 대부분 없어진다는 것 외에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나열해놓고 보니 성인이 된다는 건 국가에서 또 다른 단계의 신분을 부여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내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와 관계없이.
엄마에게 어른이 대체 뭐냐고 물었던 밤을 기억한다. 엄마가 두꺼운 잠옷 위에 또 조끼를 입고 생활하는 겨울이었다. 그날따라 국가가 외면한 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느라 마음이 어지러웠다. 이 나라를 만든 건 누구였나. 어른이었지. 이 나라를 유지하는 건? 어른이다. 그렇다면 어른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어린 날이었다. 팔을 내 머리에 고여준 엄마는 어른이었다. 따뜻한 집에서 날 살 수 있게 해준 것도 어른이었다. 나는 어른에게 보호받았고, 누군가를 보호할 수 있게 된다는 건 큰 책임이 따르는 일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른이 보호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건 어른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어른’ 하면 필수로 갖춰야 한다고 여긴 것은 책임이었다.
법적 성인이 된다는 것이 반드시 내면의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건 어느 정도의 책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떤 책임을 어디까지 져야 할까? 일단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보호하는 일. 우선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나에겐 아무도 챙겨주지 않으면 밥을 챙겨 먹지 않는 나쁜 습관이 있다. 이제는 챙겨주는 이가 없어도 밥을 챙겨 먹어야겠다.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쉬는 것. 나를 보호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예전에 아빠가 자신의 까끌까끌한 수염을 만지며 이 나이에도 몸에서 뭔가 새로 나온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에게 완연한 어른인 아빠가 그렇게 말했을 때, 어른이 되는 게 몸이 더는 성장하지 않는 것임을 실감했다. 동시에 아빠의 나이에도 처음이 있다면, 나에게는 얼마나 무궁한 처음이 남아 있을지 설레기도 했다.
성인이 되는 소감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처음인 것은 설레기 마련이니까. 새삼스럽게도 성인이 되는 것이 난생처음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친구들은 성인이 된 기념으로 모여서 술을 마시기로 약속을 잡고, 벌써 운전면허를 따기도 한다. 나에게도 성인이 되면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운전면허 따기, 친구들과 숙박여행을 해보기, 혼자 여행 가기 등이다. 성인이 되기 전 할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성인이 된 뒤엔 무엇보다 새롭게 출발한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성인이 되는 것은 인생에 하나의 전환점을 제공해 지금까지를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를 예비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듯하다.
성인이 된다고 하니 다른 사람들이 성인이 될 때의 마음가짐이 궁금해진다. 수능이 끝나는 것과 성인이 되는 것을 동일시하지 않았는지, 성인이 됨으로써 짊어졌던 무거운 의무는 없는지, 성인과 어른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당신의 성인은 무엇인가요? 저는 저만의 성년이 됩니다.
신채윤 고3학생
*노랑클로버: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고 있는 학생의 투병기입니다. 3주마다 연재.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헌재 “윤석열 통보서 받은 걸로 간주…27일 탄핵심판 개시”
민주 장경태 “김건희, 계엄 당일 성형외과에 3시간 있었다”
[단독] “말 잘 듣는 장교들, 호남 빼고”…‘노상원 사조직’ 9월부터 포섭했다
우원식 “한덕수, ‘내란 특검’ 후보 추천 의무 오늘까지 이행하라”
이승환 “‘정치 언행 않겠다’ 서약 거부, 구미공연 취소 통보 진짜 이유”
노상원 ‘계엄 수첩’에 “북의 공격 유도”… 정치인·판사 “수거 대상”
계엄의 밤, 사라진 이장우 대전시장의 11시간…“집사람과 밤새워”
“내란 직후 임명…자격 없다” 국회 행안위서 바로 쫓겨난 박선영
[단독] 윤석열, 3월 말 “조만간 계엄”…국방장관·국정원장·경호처장에 밝혀
[단독] HID·특전사 출신 여군도 체포조에…선관위 여직원 전담팀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