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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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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여’해야 한다

한문을 배우며 알게 된 ‘위민’과 ‘여민’ 그리고 사랑의 방식
등록 2022-05-12 14:51 수정 2022-05-13 01:19
일러스트레이션 제천간디학교 이담

일러스트레이션 제천간디학교 이담

요즘은 생명과학이랑 한문이 재밌다. 생명과학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아빠나 언니는 그건 선생님의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실제 나는 생명과학을 가르치는 임선영 선생님의 팬이고, 선생님의 수업 방식은 나(를 비롯해 많은 친구)와 꼭 맞는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생명과학을 좋아할 수 없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어쩐지 의기소침해진다. 동시에 운이 참 좋다는 생각도 든다. 과목을 계속 공부하고 싶게 해주는 선생님을 만나는 건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가 아닌가?

또 정말 운이 좋은 것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싶을 때 배울 수 있는 점이다. 한문은 내게 시기를 잘 만난 배움이었다. 한문을 가르치는, 세상 모든 것을 아시는 게 틀림없는 이재철 선생님도 정말 좋아하지만, 오래전부터 한문을 공부하고 싶었다. 어릴 때 엄마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시구로 이뤄진 추구(推句)를 배웠다. 비록 글씨가 예쁘게 써지지 않고 규칙성 찾기도 어려워 울면서 공부했지만, 자라면서 까막눈 수준으로 한자를 까먹긴 했지만, 한문에 대한 향수와 동경을 언제나 가지고 있었다. 2년 전 맹자를 공부하기 시작해, 맹자가 양혜왕에게 ‘왕은 하필왈리(何必曰利)잇고’라고 여쭙는 부분까지밖에 못 읽었다. 논어도 배우고 싶었다. 이번 학기에 논어를 배울 수 있다기에 수업을 듣게 됐다. 수업은 10명 남짓이 한 반이 되어 돌아가면서 한 구씩 공부해와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친구들의 설명이 끝나면 선생님이 보충설명을 해주신다. 또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발제해 읽는다.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에서 유교의 위민(爲民) 정신은 오독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맹자의 정신을 위민으로 꼽곤 하는데,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며 맹자가 사실 강조한 것은 위민이 아니라 ‘여민’(與民)이라는 것이다. 위민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고, 여민은 백성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이다. 지배자는 위민해 백성을 올바르게 다스려야 할 본분을 자신이 ‘베푸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맹자 사상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역성혁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개인의 위민은 공동체 속에 자신이 없고 시혜적인 시선으로 상대를 내려다보며, 자신이 타인에게 ‘베푼다’는 생각으로 행하기에 타인 또한 자신에게 마땅히 보답할 것을 바라게 된다고 한다.

이번 학기 초에는 특히나 친구들에게 거절당하는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어떤 친구는 개학 뒤 나를 외면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기회가 닿지 않아서 같이 일하지 못하게 된 친구가 날 내친 것이라 여기기도 했다. 아픈 나를 배려해서 먼저 ‘모든 것을 같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말이 날 제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속상할 만한 일이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으나, 또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남에게 준 마음을 보답받길 바랐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방식대로 남이 나를 사랑하길 바랐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초조해했다. ‘나는 거절당하는 게 익숙하다’며 나 자신을 할퀴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슬프게 하는 말도 했다.

위민은 미숙한 사랑의 방식이다. 나를 깎아 남에게 내주는 것이 진정으로 그를 위한 길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나를 낮춰 친구를 치켜세울 때, 연정이는 내가 그럴 때마다 혼낸다고 엄포를 놨다. 그땐 그 말이 마냥 고마웠고 지금도 고맙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렇게 말한 것이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 건강한 관계를 위해, 선뜻하고 뒤탈 없는 마음으로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여’(與)해야 한다.

신채윤 고3 학생

*노랑클로버: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고 있는 학생의 투병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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