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뒤의 길, 글 뒤에 글 [노랑클로버-마지막회]2020년 1월8일부터 ‘노랑클로버’를 연재했다. “첫 글에 노란색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클로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들어가니까 ‘노랑클로버’ 어때?”라는 큰이모의 제안으로 이름을 붙인 투병기 칼럼이었다. ‘다카야스동맥염’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병을 앓으...2023-02-04 00:52
성인과 어른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내일부터 꼬박 사흘이 지나면 나는 법적으로 성인이 된다. (병 때문에 마실 순 없지만) 술을 살 수 있고, (피울 생각 없지만) 담배를 살 수 있고, 나이 제한으로 출입 불가능한 공간이 대부분 없어진다는 것 외에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나열해놓고 보니 성인이 된다는 ...2023-01-04 19:00
예쁜 순간들을 책갈피로 끼우며생각이 많고 머리가 번다할 때는 삶을 쪼개서 단위를 작게 만드는 일이 좋은 것 같다. 작은 것에 집중하고, 삶이 얼마나 작은 일들로 이뤄졌는지 아는 것.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엄마의 사랑을 알게 해주는 것은 잘 정리된 침대다. 나는 매일 아침 눈도 제대로 못 뜬 ...2022-12-14 20:30
아픔은 익숙해졌어도 때때로 낯설다지난 일주일간은 엄마와 밤마다 산책했다. 산책 코스는 매일 같았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더 멀리 가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멀리 가리라 다짐하는 식이었다. 집에서 출발해 얼마 되지 않아 넓지 않은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건너온 저편을 바라보며 걸으면 하얀색 조그만...2022-11-15 20:43
가을 하늘의 높이를 누가 재어보았나사계절의 하늘을 모두 사진 찍어 비교해보면 정말 높이가 다른 것을 알 수 있을까? 푸른 가을 하늘은 언제나 높다고 느껴지는데 정말 봄, 여름, 겨울의 하늘과 다른지 궁금하다. 2022년 10월15일 토요일에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서점에 다녀왔다....2022-10-26 16:18
내면 깊숙이 들어가기 좋은 계절, 가을추분이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았다. 낮과 밤의 길이가 다시금 똑같아진다는 추분에는 소나기가 우렁차게 내렸다. 그러잖아도 피부에 와닿는 바람이 제법 쌀쌀해진 요즈음인데, 소나기가 내리고 나서는 확실히 기온이 더 내려갔음을 느꼈다. 추분의 소나기는 계절의 경계를 긋는 빗줄...2022-10-03 22:58
불안정한 안정, 불확실한 확실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가을비임을 알 수 있는 건 싸늘한 공기와 냄새 때문이다. 지난여름에는 스콜처럼 비가 많이 내렸다.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곳까지 물에 잠겼다. 우리 집에도 물이 조금 샜다. 특히 내 방 책상은 창문 앞에 있는데 창문 위 천장에서 물이 새서 책...2022-09-06 20:38
열아홉의 여름, 고3과 청춘 사이한여름이다. 여름의 중간이고, 큰 여름이고, 거센 여름이다. 고등학교에서 여름 한 철 한 달짜리 방학을 주는 건 왜일까? 아픈 나만 지친 것이 아니기 때문일까? 선생님은, 친구들은 한여름을 얼마만큼의 에너지로 나고 있을까. 얼음정수기에서 밤새 얼음이 달그락달그락 떨어지...2022-08-19 01:02
관설동 농부는 왜 점 찍기까지 팔을 떨까한참 비가 내린 뒤에 구름 틈새로 햇살이 조각조각 내려앉았다. 학교 건물 뒤편에서 운동장으로 나 있는 완만한 내리막길에는 빗물이 조그맣게 개울 지어 흘렀다. 보도블록이 개울물에 새끼줄처럼 꼬인 무늬를 만들어냈다. 길옆에는 언덕으로 시작되는 산이 있다. 산과 길의 경계에...2022-07-13 00:19
아픔의 칼이 내린다원래도 몸이 안 좋지만 요즘은 더 몸이 좋지 않다. 전체적으로 힘이 빠졌고, 이따금이 아니라 만성적으로 어지럽다. 계단 한 층을 걸어 올라가는 일조차 지구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힘겹다. 고등학교 2년 동안 열심히 살아서 그 반동이 이제 찾아오는 걸까. 왜 하필 지금일까...2022-06-21 22:35
캄캄한 밤 아픈 동생 옆에서, ‘어른 되기’를 생각하다글을 쓸 때, 특히 칼럼 글을 쓸 때 되도록 코로나19를 언급하지 않으려 애썼다. 분명 사회적 거리두기 등이 몸과 마음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지만, 코로나19를 조명하기보다 원래 일상에 주목하려 했다. 무엇에 힘들더라도 그것에만 매몰되지 않은 게 중요하니까. ...2022-06-03 01:53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여’해야 한다요즘은 생명과학이랑 한문이 재밌다. 생명과학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아빠나 언니는 그건 선생님의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실제 나는 생명과학을 가르치는 임선영 선생님의 팬이고, 선생님의 수업 방식은 나(를 비롯해 많은 친구)와 꼭 맞는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생명과...2022-05-12 23:51
아픈 건 신의 질투?지난주 우리 학교에서는 장기하의 앨범 《공중부양》의 타이틀곡인 가 유행했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선생님, 학생 할 것 없이 각자의 노트북과 휴대전화로 이 노래를 듣는 이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어느 반의 누구가 이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른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떠돌...2022-04-13 01:54
언니 없는 언니 생일상요즘따라 ‘든든한 한 끼’ 하면 국밥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밖에서 밥을 먹자고 하면 아빠가 일순위로 꺼내는 메뉴가 콩나물국밥이다. 언니가 울산에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러 갔을 때도, 오랜만에 집에 온 언니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콩나물...2022-03-11 00:11
마지막 겨울방학이라는 두려움지난해에 썼던 학습지 위에 커터칼로 연필을 깎았다. 대패로 깎은 것처럼 밀려나온 나무가 종이에 눈처럼 내려 쌓였다. 날리는 먼지에 재채기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톱밥이 고요히 쌓인 모습은 흰 눈 쌓인 밤처럼 가만히 바라봄 직한 모습이다. 하지만 쌓인 장소가 책상 위 얇은...2022-02-18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