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따라 ‘든든한 한 끼’ 하면 국밥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밖에서 밥을 먹자고 하면 아빠가 일순위로 꺼내는 메뉴가 콩나물국밥이다. 언니가 울산에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러 갔을 때도, 오랜만에 집에 온 언니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콩나물국밥집에 가자고 했다. 친구들도 학교 밖에서 끼니를 때워야 할 때면 종종 순대국밥으로 배를 채우고 온다.
이런 대세에 걸맞지 않은 것 같지만 소심하게나마 소신을 말하자면, 나는 국밥을 별로 안 좋아한다. 사실 국에 왜 밥을 말아 먹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애초부터 국에 담겨 나오는 밥은 불어서 안 그래도 많은 양이 더 늘어난다. 너무 많아서 다 먹기도 힘들고, 잘 식지 않아서 반밖에 남지 않았을 때도 입천장을 데기 일쑤다. 그래도 오직 한 가지로, 국에 밥을 말아 먹는 예외가 있다. 바로 우리 집 미역국이다.
우리는 친할머니와 함께 사는데, 나는 할머니의 미역국 외에 다른 미역국은 잘 먹지 않는다. 할머니는 소고기뭇국이나 미역국처럼 소고기가 들어간 국을 끓일 때 양지머리를 덩이로 넣는다. 끊어 온 고깃덩이를 찬물에 반나절에서 하룻밤 정도 담가 핏물을 뺀다. 누군가의 생일 전날 부엌에 가면 스테인리스강 볼의 물속에 고기가 잠겨 있다. 국냄비에 핏물 뺀 고기를 넣고 끓이다가, 익으면 고기를 건져내서 잘라 넣어 국을 끓인다. 할머니의 미역국은 깊은 감칠맛이 난다. 때로 고기 없이 조갯살을 넣어서 끓인 미역국도 그런 걸 보면, 단순히 고기를 기름에 볶다 끓이지 않아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고기를 요리해서 끓인 미역국을 좋아한다. 고깃결에 수직으로 썰린 큼지막한 고기를 좋아한다. 미역과 밥을 다 건져 먹고 국물도 남김없이 마신 다음, 고기만 남겨서 배추김치에 싸 먹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육식을 지양해야 함을 알면서도 그렇다.
2월13일은 언니가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간 지 한 달이 되는 날이자 언니의 생일이다. 언니가 떠나기 전부터 언니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 먹기로 할머니와 이야기해뒀다. 만약 언니가 있었더라면, 육고기를 먹지 않는 단계의 채식을 하는 언니를 위해 조개미역국을 끓였을 것이다. 명목상 언니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니 조개미역국을 끓여 먹는 게 맞을지 모르지만, 언니가 먹을 것도 아니니까 할머니를 졸라 소고기미역국을 먹었다. 나는 왜 이렇게 고기를 좋아할까.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와 오랜 기간의 고민, 그리고 도덕적 당위성을 모두 고려해서 채식을 지향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채소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우울해진다.
사실 언니 없이 생일상을 차린 것, 채식하는 언니의 생일상을 육식으로 차린 것 둘 중에 굳이 꼽으라면 후자가 더 이상하다. 실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당사자 없는 생일상을 의아해했다. 정작 언니는 대체로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다. 언니가 출발하기도 전부터 별렀던 일이니까.
언니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미역국을 먹었는데 하필 반찬이 대구전이어서 그랬는지, 언니가 “사람의 사진을 앞에 두고 밥을 먹는 것은 제사상 아니냐”고 했다. 프랑스에 있는 사람과 같이 얼굴 보면서 밥을 먹을 수 있다니 세상 참 좋아졌다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8시간의 시차로 우리의 저녁식사 시간과 언니의 점심식사 시간이 얼추 맞았다. 언니가 프랑스에 간 지도 한 달 넘게 지났는데 나는 아직 언니가 옆에 있었으면 뭐라고 했을까, 하고 궁금해하는 일이 많다. 문명의 발달로 전화를 걸지만, 시차는 어쩔 수 없어서 수업이나 수면 중인 언니를 방해하기도 한다. 미안, 언니.
신채윤 고3 학생
*노랑클로버: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고 있는 학생의 투병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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