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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50> 신문 어떻게 만들었나

등록 2020-11-08 01:51 수정 2020-11-13 15:03
왼쪽부터 2015년 1월에 나온 <굴뚝신문> 1호, 2호, 3호에 이어 이듬해 9월 발간한 특별잡지 <꿀잠>.

왼쪽부터 2015년 1월에 나온 <굴뚝신문> 1호, 2호, 3호에 이어 이듬해 9월 발간한 특별잡지 <꿀잠>.

전태일이 50년 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자기 몸을 불사르며 바란 것은 노동조건 개선이었다. 당시 10대이던 노동자들은 환기구 하나 없이 먼지 가득한 평화시장 지하 공장에서 폐병과 눈병에 시달리면서도 하루 15시간 넘는 노동을 견뎌야 했다. 전태일 정신은 자신의 차비를 헐어 노동착취에 허덕이던 노동자에게 먹을 것을 사주던 ‘풀빵 정신’이자, 이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청과 언론사를 찾아 호소하고 싸운 ‘불꽃 정신’이기도 하다.
열사가 산화한 지 50년이 됐다. 반백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의 노동조건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정부가 ‘노동존중 사회’를 선언하고 3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가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하고, 임금을 착취당하지 않으며, 전태일이 애타게 부르짖던 근로기준법의 보호 아래 산다고 보는 이는 얼마나 될까.
이런 의문을 품고 11개 언론사 기자 12명과 문인, 노동·인권 운동가 등이 모여 신문을 만들었다. 제호가 <전태일50>이다. <한겨레21>은 이 가운데 전태일 정신을 이어받아 언론·문학·인권의 현장에서 각각 수십년간 현장을 지키며 노동에 대한 곡진한 애정을 잃지 않은 세 글쟁이의 글을 받아 싣는다. 우선 1970년 11월 전태일의 분신 소식을 듣고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서울 동숭동 거리를 울며 걷던 홍세화 <전태일50> 편집위원장이 50년 세월을 돌아보며 글을 썼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전태일과 어머니 이소선씨가 나누는 가상 대화를, 송경동 시인은 1970년대 이소선씨에서 시작해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정리했다. _편집자주

<전태일50>은 열사 분신 50년이 지난 2020년 현직 기자와 작가, 활동가들이 한국 노동현실을 향해 던지는 물음표다. 지난 50년간 한국의 노동현실은 얼마나 개선됐는지, 비정규직·특수고용·플랫폼·현장실습생·여성이란 이름의 노동 약자들의 삶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다. <전태일50>은 전면 컬러 16면짜리 대판 신문(<한겨레> 크기)으로 발행됐다.

이 신문은, 먼저 전태일이 일하던 서울 동대문 봉제공장의 현재를 짚는다.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 국내 노동자를 대체해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모습을 담았다. 이어 10년 전 섭씨 1600도의 쇳물에 빠져 숨진 청년의 사연에 달린 댓글 시에 곡을 입혀 노래를 만든 뮤지션 하림과의 인터뷰에선, 국회의원들한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심사하기 전에 이 노래를 불러보라”는 음악인의 목소리를 전한다. 직장인 1천 명에게 지금 시점의 노동현실에 대한 인식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도 담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진 노동자들의 인식 괴리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지난 8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직장갑질119 등 노동단체 쪽이 전태일 50주기에 맞춰 신문을 만들자고 제안한 뒤, 그 취지에 공감한 11개 언론사 기자가 뜻을 모았다. 참여 매체는 <한겨레21>을 비롯해 <경향신문> <뉴시스> <뉴스1> <매일노동뉴스> <미디어오늘> <서울신문> <오마이뉴스> <참세상> <프레시안> <한국일보>이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이 편집위원장을 맡았고, 기자들은 자신의 시간을 쪼개 재능 기부 형식으로 현장을 뛰어 글을 적었다. 김흥구, 노순택, 박승화(<한겨레21> 기자) 등 사진가들도 뜻을 보탰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을 비롯해 송경동 시인,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등도 필진에 합류했다. <한겨레>에서 절정의 시사만화 감각을 뽐내는 권범철 화백의 만평은 덤이다.

<전태일50>은 2015년 1월 <굴뚝신문>이란 제호로 처음 맹아적 모습을 드러냈다. 대규모 정리해고로 “해고는 죽음”이라는 메시지를 한국 사회에 던진 쌍용자동차의 해고노동자 김정욱과 이창근이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 안 70m 굴뚝에 올랐을 때다. 한 달 뒤 쌍용차 문제 해결을 재차 촉구하는 <굴뚝신문> 2호가 나왔다. 쌍용차 농성자들이 내려오자마자 이번엔 스타케미칼(파인텍) 해고노동자 차광호가 ‘굴뚝농성 400일’이란 슬픈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그해 7월 세 번째 <굴뚝신문>을 냈다. 당시 1면 제목이 ‘굴뚝 400일 자꾸 떨어지는 꿈을 꾼다’였다. 이들은 모두 무사히 내려왔고, 결국 복직됐다. 1년 뒤엔 투쟁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쉼터 성격인 ‘꿀잠’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모금운동이 벌어졌다. 다시 기자들이 뭉쳐 특별잡지 <꿀잠>을 발행했고, 수익금 5천만원을 꿀잠에 기부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전태일50>은 아래의 링크에서 PDF 파일로 볼 수 있습니다.
http://h21.hani.co.kr/h21_service_inc/events/taeil_jeon50_resize.pdf


*표지이야기-전태일 50주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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