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4호 표지이야기-‘좋아요’ 사회
1. 나는 어떻게 인스타로 한밑천 잡을 꿈을 꾸게 되었나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051.html)
2. 인스타 피드, 카페는 있고 살고 있는 월세집은 없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052.html)
3. 신념은 커버링하고 절망은 부계정에 감추고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053.html)
4. 우리는 모두 관종, 그것을 이용하는 관심경제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054.html)
김아보씨는 조금 전 ‘워킹샷’(걸으면서 찍힌 사진,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사진 연출법) 하나를 업로드했다. 40~50장 연속 셔터를 눌러 그중 잘 나온 사진을 한 장 골랐다. 그것을 아내 김카도씨에게 확인받았다. 오늘 그는 아내와 비슷한 분위기의 ‘신상’ 옷을 차려입고 서울 한남동에 새로 오픈한 카페에 왔다. 간판이 따로 없어 인스타그램으로 검색한 사람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실제 보니 기대 이상으로 인테리어가 괜찮다. 아보씨는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 한두 개 정도 포스팅한다. 오늘의 포스팅은 이걸로 정한다. 카도씨와 동시에 올린다. “크 오늘도 완전 패피(패션 피플)네.” 곧 누군가 반응을 보였다. 오프라인 지인인 것을 확인하고 약간 실망한다. 얼마 뒤 알림이 떴다. “최고예요”(‘엄지척’ 이모티콘) 인스타그램에서 2천 명 이상 팔로어를 거느린 패션 셀럽이다. 비록 짧은 댓글이지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아보씨와 카도씨가 ‘착샷’(착용샷)을 공개하고 몇 시간 뒤 곽구미씨는 셀카 필름 스냅사진을 올렸다. 올리자마자 찍히기 시작한 ‘하트’는 세 시간 만에 300개 넘는 ‘좋아요’가 달렸다. 팔로어가 2천 명 가까이 되는 사진가 구미씨는 인스타그램으로 ‘사진 작업’을 홍보한다. 대학교 때 만든 페이스북 여행 페이지 팔로어가 한때 1500명까지 된 적이 있고, 올린 사진 중 하나는 30만원을 받고 팔기도 했다. 아이돌을 꿈꾸기도 했던 그는 인스타그램을 기지 삼아 팬들과 교류한다. 팬들이 댓글을 올리면 각종 이모티콘을 활용해 정성껏 답한다.
재무설계사 갓영업씨는 아침에 올라온 포스팅에 댓글을 달고 있다. “멋져버리네요” “너보단… 못하즤” 그는 수시로 접속해 본인 계정뿐 아니라 다른 재무설계사의 인스타그램을 체크한다. 게시물은 매일 2개, 사람들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시간대인 아침과 저녁에 꼬박꼬박 업로드한다. 오늘 아침에 올린 것은 지난 월요일 한낮에 강원도 삼척 바닷가로 떠난 여행 사진이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오픈카를 탄 모습이다. 여행 중에 잠깐 미팅하고 보통의 직장인 월급에 준하는 돈을 하루에 벌었다는 설명도 잊지 않는다. 잠시 후 ‘잠재적 고객’일 수 있는 팔로어가 늘었다. 그가 만든 인스타그램 이미지가 호감과 신뢰를 산 덕이다.
이윤우씨는 새벽 동안 쓴 글의 일부를 업로드했다. “J. 그곳의 겨울은 어떤가요. 당신이 겨우내 그곳에 부는 바람을 묘사하는 특별한 단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당신께 들었던 희한한 그곳의 사투리가 꽤 많아 그 바람의 이름이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네요.” 소중한 사람이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윤우씨는 법당을 꾸려 사람들의 사주 점사를 본다. 인스타그램에는 종종 취미로 글을 올리는데 상담 요청이 더러 있다. 그러나 ‘플랫폼 속 관심’을 경제적 이득으로 전환하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하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해시태그도 달지 않는다. 신 선생님의 영향이다. “손님을 집으로 들이는 것, 점을 보는 것, 향후 입소문이 나는 것까지 전부 다 신명님 원력이기에 사사로이 홍보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문예창작과 학부 졸업을 앞둔 보에씨는 윤우씨 피드에 올라온 글들을 흥미롭게 감상 중이다. 그는 포스팅을 하기보다는 ‘눈팅’(보기만 하는 것)을 좋아한다.
글을 올리는 행위도 그 목적도 다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인스타그램에 모여 산다. 생활공간도 생활방식도 다 다르지만, 이곳은 웃기든, 감동을 받든, 예쁘든 모든 ‘관심’이 하트로 표현되는 ‘인스타그램 빌리지’다. 하트를 많이 받기 위해, 현실에서는 숨겨놓은 ‘관종적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는 곳이다. 빌리지에 사는 사람들은 하트를 하나라도 얻기 위해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란 뜻의 조어) 이미지 전시’에 골몰한다.
①맛은 없더라도 멋은 있다
인스타그래머블 이미지란
“(좋은 반응이 올 거라는) 느낌이 딱 와요.” 그간의 인스타그램 운영 경험으로 어떤 이미지가 인기 많을지 카도씨는 체득했다. “아, 이건 ‘좋아요’ 수 많겠다, 그럼 진짜 ‘좋아요’ 수가 많긴 하거든요. ‘내가 데리고 있는 팔로어들은 이걸 더 좋아할 거다’라는 확신이 있는 거죠.”
카도씨가 가장 많이 ‘좋아요’ 받았던 게시물은 바버(Barber) 간절기 재킷 ‘착샷’이다. 194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이 재킷에 관심이 한창일 때 입어서 ‘좋아요’ 수가 많았던 거 같아요. (이 상품을) 태그하면서. 바지와 신발 같은 것도 브랜드에 맞게끔 입었다는 그런 느낌? (내가) 갖고 싶은 스타일 다 갖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 재킷 아직도 파냐, 이런 말도 하고.” 아보씨 역시 희귀 브랜드 아이템 태그가 많은 게시물일수록 ‘좋아요’가 많았다고 했다.
가장 행복할 때가 영업 실적 기록을 경신할 때라고 말할 만큼 ‘일에 미친 사람’인 갓영업씨는 인스타그램도 2016년 무렵 ‘철저히 영업용’으로 시작했다. 기존 오프라인 및 지인 영업 등의 인맥을 통하지 않더라도 신규 고객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그는 오프라인에서도 항상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고민한다. 인터뷰 때 맞춤 정장과 행커치프까지 갖춘 그의 차림새처럼, 인스타그램 피드는 깔끔하고 고급스럽다. 그 이미지가 계약 체결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2015년 처음 보험 영업에 발을 들인 뒤 5년 만에 부지점장으로 승진한 그는 “나처럼 살고 싶으면 나처럼 일하라”는 메시지를 이미지로 전하고 싶다고 했다. “관리자 입장에서 첫째는 (사람들이 재무설계사를 직업으로 택하도록) ‘도입’해야 하고, 둘째로는 (연차가 적은 재무설계사들이 소속을 정하도록) ‘정착’ 얘기를 해야 돼요. 그다음은 시간에 대한 여유입니다.” ‘시간에 대한 여유’가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메시지다. 초기에는 수상 실적, 커리어(경력) 달성뿐만 아니라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만 집중했다. “내비게이션을 많이 찍죠. 여기저기 간다를 보여주는 거죠. 네다섯 시간 이동했다는 것도. 아침 일찍 출근하면서 시계 찍고, 저녁 늦게 퇴근하면서 시간 보여주는 것도 빠지지 않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하죠. ‘네가 노력한 만큼 벌고 네가 목표를 달성하면 나머지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죠. 옛날에는 상담 이미지도 ‘열심히 하는 일’과 연관이 많았다면, 이제는 ‘여행’과 연관시킵니다. 술도 마시고 강원도 펜션에 가고, 이런.” ‘인스타그래머블’에는 시각적으로만 즐겁다는 의미도 있다. 구미씨는 인스타 감성의 특징을 “편해 보이는 불편함”이라고 정리한다. 실제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를 건질 수 있는 ‘인스타 감성’ 카페의 테이블은 낮은 편이다. 위에서 피사체를 찍는 ‘항공샷’이 유행한 까닭이다. ‘한과’라고 불릴 정도로 코크(마카롱에서 감싸는 부분)와 장식이 커지는 ‘뚱카롱’처럼 ‘인스타그래머블한 디저트’가 인기를 얻은 것도 비슷한 ‘시각적 즐거움’이 강조되면서다.
②매일매일이 ‘인생샷’
사진을 찍기 위해 그곳으로 간다
시네필(영화 마니아)인 조체크씨는 “인스타그램을 위해 창작했다”고 할 정도로 자신의 창작 활동을 플랫폼에 쏟았다. 그는 영화 비평 메일링 서비스와 영화 장면을 그린 일러스트, 이를 공개한 전시 기획까지 여러 창작 활동을 이어왔다. 하지만 체크씨는 “인스타그램이 없었다면 교수 이런 쪽(제도권)으로 가지 않았을까요”라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체크씨에게 인스타그램은 제도권 바깥에서도 유명해지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직업적 가능성의 공간’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콘텐츠를 올리지만, 인스타그램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킨다. 아보·카도씨 부부는 인스타그램을 검색해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한다. 고유씨는 어떤 전시가 열리고, 어떤 글쓰기 강좌가 열리는지, 그런 정보는 인스타그램에서만 주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중독까진 아닌데 마음이 공허해서 계속 (인스타그램 피드를) 하염없이 구경”하며 인스타그램에 에너지를 쏟는 일이 “내가 진짜 원해서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여행 갈 때 ‘인생샷’을 찍는 행위가 그렇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어딜 가야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옷을 어떻게 입는지 등을 고민한다.
삶 속으로 들어온 인스타그램은 오프라인 ‘일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준형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다른 이용자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올리며 (일상에 대한) 규범을 계속 만든다”고 말한다. “(적합한 이미지가) 취해지고 버려지는 방식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규정한다. 규범에 알맞은 일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면, 규범을 만든다는 것은 곧 (그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배제의 과정을 포함한다.”
③카페는 있고 집은 없다
보여주는 것, 보여주지 않는 것
아보·카도씨 부부의 인스타그램 주제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일본 캐주얼 스타일의 패션과 ‘착샷’, 한정판 음반, ‘힙한’ 카페와 음식점 ‘인증샷’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들의 인스타그램 피드는 고급 편집숍의 카탈로그나 패션잡지를 연상케 한다.
아보씨는 5년 전 남들이 다 만들 때 인스타그램 계정을 시작했다.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 그는 운영 원칙을 세웠다. 아이폰 카메라 기본 필터로만 찍어 이미지 톤을 일관되게 하고(애초에 그 톤과 맞는 분위기의 카페나 음식점만 찾는다), 전체 옷의 매무새와 디테일이 드러나도록 옷을 올리되 신상 노출이 싫어 얼굴은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패션 사진과 카페 사진은 연달아 올리지 않는다. 피드 톤을 일관되게 정리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적은 옷으로 할 수 있는 연출법을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
아보씨는 옷이 많지는 않다. 인스타그램에 보이는 옷들은 ‘장기적 점유’, 다른 말로 ‘소유’한 것은 아니다. 몇 달짜리든, 몇 년짜리든 ‘한시적 점유’다. 그는 그것이 유행할 때쯤 중고로 되판다. 안경, 스카프, 가방, 신발 등 패션 소품을 다양하게 갖추었지만 대표적인 남성 액세서리인 시계는 없다. 시계 분야는 본인의 경제적 수준에서 ‘한참 위의 취향’이어서 애초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부부의 ‘크롭’(crop·사진에서 원하지 않는 부분은 잘라내는 것) 중 하나는 ‘월셋집에 산다는 사실’이다. 결혼 3년차인 신혼부부라면 월셋집보다 보증금이 마련된 전셋집에 산다는 인식이 있어서다. 하지만 그 월셋집은 “그럭저럭 살기에 괜찮지만 인스타그램에 찍어 올릴 수준이 안 된다”. “몇 가구는 그 수준(인스타그램에 올릴 수준)으로 갖춰놓았지만 집이 다소 낡아 가구들과 톤이 맞지 않는다.”
이들의 피드에 올라온 ‘힙한 장소’도 수도권, 주요 도심 위주다. 그가 그 ‘힙한 장소’들을 지하철과 버스로만 가기 때문이다.
“차가 없어 차 끌고 갈 만한 장소는 못 가요.” 아보씨는 애초에 운전면허를 따지 않았다. “대중교통이 있으니 차 살 필요를 못 느끼고 차에 별 관심이 없죠.” 하지만 ‘나중에 돈이 아주 많이 생기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자 “집 다음으로 차를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감기, 사랑, 가난은 숨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낡고 해진 ‘가난의 표지’가 따로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의 얼굴은 ‘우아하다’.
2020년 밀레니얼 트렌드 중 하나로 ‘우아한 가난’이 꼽힌다. 청년들이 ‘88만원 세대, N포 세대’의 형편에도 원룸 라이프에 몇십만원짜리 일대일 요가 레슨이나 고급 스피커 같은 값비싼 소비를 하는 모습을 이르는 신조어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정지우 작가)는 말로도 요약된다. “흔히 청년 세대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개 절망과 포기로 수렴된다. (…) 그런데 정작 청년 세대가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SNS에는 그런 흔적이 없다. 그곳은 언제나 밝고 희망차고 화려하다. 청년 세대에 대한 담론과 인스타그램의 간극은 마치 매트릭스의 밖과 안처럼 극명하다.”(<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중에서) 절망적이라고들 하는 청년의 현실과 달리, 인스타그램에는 매일 해외여행 사진이나 고급 레스토랑 맛집 인증 같은 행복한 이미지가 넘친다. ‘있다’와 능력이라는 뜻의 ‘Ability’를 결합한 ‘있어빌리티’(<트렌드 코리아 2016>)가 새로운 능력의 하나로 치켜세워지기도 한다.
이런 이미지를 ‘청년의 달관’으로 낭만화하기도 한다. <주간조선>은 2019년 “우아한 가난의 태도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에서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노력, 일, 성공 같은 단어에서 벗어나 나, 즐거움, 만족 같은 가치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5년 전 <조선일보>가 신세대의 특징으로 소개한 ‘달관세대’와 같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임세화는 “동 세대의 곤경 안에서 긍정하고 자족해야 한다는 ‘달관’의 세대론으로 교묘하게 덧씌워지고 있다”(2015년 계간지 <말과활> 5-6월)고 비판했다.
아보·카도씨 부부는 ‘미리’ 유행을 알아보고 그 변화에 빠르게 반응한다. 일종의 ‘시세차익’이다. 카페, 음악, 맛집, 패션을 ‘빠르게’ 선택한다. ‘속도 차이’가 곧 자금이 된 것이다. 자본이 풍부하지 않은 부부가 ‘플렉스’(flex·자랑)로 넘쳐나는 인스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쓴 결과다. 카도씨가 인스타그램에서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노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인기가 많은’ 사람을 볼 때다. “이 사람이 이렇게 인기 많게 된 이유가 얼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전형적인 길로만 가는 사람으로서 ‘뭐야, 돈 들여서 이런 거 사봤자 얼굴이면 끝나잖아’ 이런 것들도 좀 있어요. 그런 것에 박탈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도우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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