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_Handmade_2018
“한밑천 잡아 헬조선 땅 뜬다.”
2018년 프리랜서 작가 생활을 시작할 무렵, 나는 박찬욱 감독 영화 <아가씨>(The Handmaiden)에 나오는 이 대사를 따 습관처럼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 이 대사의 주인공 숙희(김태리)가 아가씨 저택에 하녀로 들어갔던 것처럼, 무명인 내가 부푼 꿈을 안고 입성한 곳이 ‘인스타그램 빌리지’였다. 그전까지 주된 온라인 거처는 페이스북이었다. 싸이월드가 지고 북적였던 페이스북 동네는 어느 순간 점점 한산해졌다. 알고 보니 다들 새롭게 뜨는 빌리지, ‘인스타그램’으로 속속들이 이주 중이었다.
얼핏 둘러본 인스타그램 빌리지는 페이스북보다 훨씬 거대하고 눈부신 곳이었다. 20살, 인천 토박이였던 내가 처음 서울 강남 번화가를 맞닥뜨린 때처럼 전세계 인스타그램 계정들에서 쏟아지는, 명멸하는 사각형 이미지에 단번에 홀렸다. 또 아는 사람을 기반으로 했던 페이스북과 달리 생면부지 불특정 다수의 주목을 몇천, 몇만 규모로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오프라인에서 받아볼 수 없는 수준의 관심이었다. 더구나 몇몇은 관심뿐 아니라 돈까지 끌어모으고 있었다. 신세계였다. “여기가 바로 ‘한밑천’ 잡을 곳이로구나.”
집단적인 관심 세례에 취하다
하녀 숙희가 아가씨 앞에서 스피넬을 달고 근사한 드레스를 입었듯이, 나는 ‘인스타그램 감성’ 문법을 입었다. ‘힙스터 식물’로 유명한 몬스테라를 사서 함께 셀카를 찍은 뒤, 필터 효과를 덧입혀 ‘#selfie, #식물스타그램, #반려식물’ 등의 해시태그(hashtag)를 달아 이미지를 업로드하는 식이었다. 또 본계정 외에 ‘부계정’도 따로 개설했다. 영화 속 매력적인 장면을 수집해 피드에 업로드하는 계정으로, 이를 통해 나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이 계정을 보고도 내 본계정을 팔로하는 이가 하나둘 늘었다. 이렇게 나의 모습과 정체성을 명품이나 뛰어난 외모가 아니더라도, 몇 가지 아이템과 인스타그램 애플리케이션(앱) 조작만으로 얼마든지 ‘가성비 좋게’ 직접 만들 수 있는 인스타그램은 별천지였다.
가장 많이 ‘좋아요’를 받았던 게시물은 내가 ‘신상’ 원피스를 입고 웃는 모습이었다. 107개의 ‘좋아요’가 찍혔는데, 이는 내가 오프라인에서 같은 옷을 입었을 때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집단적인 관심 ‘세례’였다. 특히 나를 노출할수록 그 관심도가 높아졌는데, ‘여성성’을 드러낼 때가 그랬다. 일상복보다는 몸매가 드러난 차림, 미용하고 난 뒤의 셀카가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 이보다 반응이 뜨겁게 돌아오는 것은 ‘일상’의 노출이었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는지 실시간 공유하는 게시물일수록 댓글이 많이 달리는 등 즉각적인 ‘소통’이 이뤄졌다. 나아가 나의 몸짓과 표정이 연속해서 날것으로 드러나 편집 여지가 적은 영상 콘텐츠일 때는, 사진 콘텐츠보다 최대 10배의 관심이 매겨졌다. 그러자 내 일상 구석구석이 ‘노다지’ 같았다. ‘이걸 찍어 올리면 50명가량은 ‘좋아요’ 하겠지’ ‘이 카페를 게시물에 태그하면 안목 있어 보이겠지’….
그즈음, 작가이자 인스타그램 셀러브리티 이슬아씨가 독자들에게 매일 한 편의 글을 전송해주는 메일링 서비스 ‘일간 이슬아’로 크게 화제였다. 그리고 이슬아씨가 기존 인스타그램 팔로어들을 통해서도 ‘일간 이슬아’를 홍보할 수 있었다는 인터뷰를 읽었다. 이슬아씨의 다른 노력과 고충보다도, 그 대목이 나도 인스타그램에서의 관심을 밑천 삼아 유명 작가가 될 수 있겠다는 ‘인스타그램 드림’으로 확대돼 보였다.
손에 잡혔다 금세 흩어지는 ‘팔로어’
그러자 매일을 ‘인생샷’으로 남겨야 한다는 강박감이 커졌다. 학연, 지연이나 소속된 직장이 없는 나에게 소셜네트워크 명성은 유일한 동아줄로 보였다. 인스타그램 세상은 ‘눈 감으면 팔로어 베어 먹는 세상’이었다. 관심 뭉치는 손에 잡힌 듯하다가도 며칠 업로드가 뜸하거나, ‘인스타그래머블’하지 않은 사진을 올리면 금세 흩어졌다.
한창 인스타그램에 중독됐을 때는 하루에 게시글을 세 번은 업로드하고, 수시로 접속해 사람들 반응을 살폈다. 당시 오프라인에서 3년 만에 본 친구로부터 “어제 본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이런 ‘노오력’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팔로어가 기존 지인을 중심으로 맺었던 50명대에서, 1년 사이 그 10배인 500명대로 훌쩍 뛰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마케팅 업계 기준 팔로어 500명 이하인 ‘나노 인플루언서’를 넘어,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된 것이다. 작가 생활을 한 뒤 처음으로 연 글쓰기 수업에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수업을 신청했다는 수강생도 있었다. 여러 원고 청탁과 인터뷰 요청도 받았다. 무엇보다 내가 쓴 글을 알아주는 독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카페 아르바이트 노동의 지리멸렬함과 당시 경기도 부천에서 얹혀살던 4평(13㎡) 남짓의 좁다란 방에 핀 곰팡이 따위는 잊을 수 있었다. 100원 동전만 한 크기의 인스타그램 이미지에서만큼은 땀 한 방울 흐르지 않는 우아한 모습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아나 그란데처럼/ 셀럽이 되고 싶어/ 셀럽은 뉴욕에서/ 스테낄 썬다구요/ 뉴욕 집은 호화 별장/ 수영장도 딸려 있대/ 셀럽파이브 우리 홈그라운드/ 반전세 4천에 60/ 한 방 노려보자 신데렐라걸스/ Do you wanna Celeb Five/ 반지하에도 살았대/ Do you wanna young and rich/ 불금 일없다 신데렐라걸스/ Do you wanna workaholic/ 협찬받았어 옷 어때/ Do you wanna 쬐끔 Tight” 걸그룹 ‘셀럽파이브’(Celeb Five)의 노래 <셀럽이 되고 싶어>(2018)는 당시 내 심정을 잘 대변해줬다.
그러나 인스타그램 빌리지는 만만치 않았다. 수많은 인스타그램 이미지의 틈바구니에서 내가 공들여 쓴 글은 묻히기 일쑤였다. “가엽고도 가엽구나 가짜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이른바 ‘인스타 작가’들이 잘나가는 현상에 의구심이 커졌다. 아무나 쓸 수 있을, 고작 서너 줄 정도의 얄팍한 ‘감성 글귀’로 몇십만의 팔로어를 확보해 대형 서점의 프런트 매대를 독차지하는 그들의 모습에 불안이 커져갔다.
결국 그 ‘인스타 작가’ 계정을 몰래 벤치마킹했다. 텍스트를 길게 올리는 일은 그만뒀다. 페이스북에선 300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은 페미니즘 칼럼이, 인스타그램에선 그 5분의 1도 안 되는 59개의 ‘좋아요’를 받았기 때문이다. 조급해졌다. 그럴수록 과시와 전시에 중독되고, 다른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했다. 인스타그램 손바닥에 갇힌 것 같았다. 그제야 인스타그램 빌리지 구석 층계참에 쪼그린 재투성이 내 민낯이 보였다.
재투성이 내 민낯
그러자 인스타그램 빌리지 속 다른 주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들은 인스타그램에서 어떤 한밑천을 잡아보려고 할까? 내가 그랬듯, 현실과 삶의 괴리를 느끼고 있을까? 우리는 모두 인스타그램 빌리지의 ‘관종’일 뿐일까? 허세와 나르시시즘이 유별난 사람들일까? 이 빌리지의 지하실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스타그램 빌리지 꼭대기층을 점유하며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셀러브리티보다, 그 아래층에서 생활하는 인스타그램 주민들에게 문을 두드렸다.
도우리 작가
1324호 표지이야기-‘좋아요’ 사회 모아보기
1. 나는 어떻게 인스타로 한밑천 잡을 꿈을 꾸게 되었나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051.html)
2. 인스타 피드, 카페는 있고 살고 있는 월세집은 없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052.html)
3. 신념은 커버링하고 절망은 부계정에 감추고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053.html)
4. 우리는 모두 관종, 그것을 이용하는 관심경제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0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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