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문재인 정부 정도면 독일에서는 보수”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보수야당이 이 정권을 좌파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얘기하던 중이었다. ‘놀랐다’는 건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서가 아니다. 오만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념에 대해서는, (나는 이야기)할 만큼 했다. 하지만 이 정권을 보수로 규정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도, 그렇다고 보수야당을 “보수가 아니라 수구”라고 하는 것 역시 편의적 분류일 뿐이라는 것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논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이 현실에 어느새 순응한 자신을 새삼스레 발견한 게 ‘놀라움’의 이유였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사진)이 최근 보수정치에 던지는 메시지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뜬금없이 히딩크 감독 얘길 꺼내며 진보의 아류로는 집권할 수 없고 보수의 유니폼을 입고 승리해야 한다고 했다. 본인은 아니라지만 누가 봐도 김종인 위원장을 겨냥한 말이다.
김종인 위원장이 주장한 것은 약자와의 동행, 궁핍에서의 자유, 전일제 수업을 통한 보육과 사교육 문제 해결 등이다. 한국의 정치 지형에선 이게 ‘좌클릭’이지만 독일에선 이 역시 보수정치의 의제다. 김종인 위원장은 독일에서 유학했고 자신의 책에서 “스스로 보수를 앞세우지 않으면서 보수주의를 실천하고, 좌파의 어젠다까지 선점하여 오히려 좌파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며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을 언급한 바 있다.
한때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의 한 사람이던 원희룡 지사 정도 되는 사람이 이렇게 나오는 건 김종인식 독일화(?)를 통해 가시화할 대권 후보가 본인일 수 없다는 본능적 인식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만 해도 기본소득에 대해 “당장 실현은 어렵더라도 앞으로 고민해볼 문제”라고 한 유승민 전 의원이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해선 “악성 포퓰리즘”이라고 한 것에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 ‘진보의 아류’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한국은 독일이 아니고, 김종인 위원장의 당내 기반이 강한 것도 아니기에 독일화 꿈은 일장춘몽에 그칠 우려가 있다. 전 당원에게 힘을 모아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식사정치’로 의원과 유력 원외 인사들에게 각개격파에 나서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김 위원장이 이 정부의 대북정책을 굴종이라고 평가하고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현충원 안장 문제를 건드리는 건 어쨌든 본색은 전통적 보수라는 ‘인증’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안보-보수’ 행보는 당연히 손해를 동반한다. 그 정도는 ‘좌클릭’의 신선함이 중화되는 것 이상이다. 김종인식 해법은 ‘진보의 아류’가 ‘보수의 아류’를 ‘주류’ 영역에서 완전히 흡수해 스스로가 ‘모범답안’이 될 때 최종적으로 성공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년 집권’과 ‘주류 교체’를 말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전략이다. 적어도 경제와 연관된 의제에서 김종인식 해법이 파괴력을 갖는 것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미 모범답안은 ‘뉴노멀’이었기 때문이다.
안보도 마찬가지다. 변화된 글로벌 정치 환경은 더는 과거 해법으로 푸는 게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일깨운다. 이 판국에 ‘굴종’이니 ‘낙동강 전선’이니 하는 말은 이미 낡은 해답이다. 독일 재통일이 가능했던 것은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사회민주당 정권의 동방정책을 기민련의 헬무트 콜 총리가 계승한 덕분이었다. 기왕 독일의 예를 따를 거라면 이 점도 참고했으면 한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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