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TV토론에서 “기억 앞에 겸손해야 한다”고 했다. 내곡동 땅 측량 현장에 있었는지 묻는 말에 대한 답이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오세훈 후보가 측량 현장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의혹은 KBS가 해당 토지 경작인들이 한 발언을 보도하면서 제기됐다. 오세훈 후보는 이 보도 내용이 전혀 사실무근이고 편파적인데다 악의적이라며 KBS와 기자 등을 고발했다. 그런데 TV토론에서는 앞의 발언으로 자기 기억이 불완전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 고발은 왜 했는가? 자기 반론이 충실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정도의 문제라면 반론보도 요청이나 언론중재위 제소 등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결국 추가 보도에 압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게 과연 좋은 공직자의 자질인지는 유권자가 판단할 것이다.
과거 여당도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다. 지난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에 투표하지 말자는 취지의 글을 기고한 교수와 그 글을 실어준 언론사를 고발했다. 비판받고 고발을 취하했다는 점에서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발은 아니지만 친여 인사가 공영방송 사장을 거명하며 “보도 내용을 점검해보라”고 한 일도 있었다. 본질적으로는 유사한 행태이다.
여론조사로 볼 때 이번 재보궐선거는 여당에 불리하다. 부동산 문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의 영향이 크다고들 한다. 겉으로 드러난 사실을 보면 그런데, 그 아래 흐르는 민심의 맥락을 함께 봐야 한다. 집값 급등은 집을 가진 사람이든 아니든 모두에게 피해를 줬다. 전부라고 할 순 없겠으나 ‘개혁적’ 정부의 정책 실패 영향이 분명히 있다. 이 실패를 정부·여당이 책임지고 피해를 함께 나누고 있다는 감각이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면 오늘날 여론이 이렇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정권에서 본 건 언론이나 투기세력 등 ‘남 탓’을 하면서 뒤로는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달라지지 않은’ 기득권 모습이다. 심지어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사람이 전월세상한제 시행 직전 자기 소유의 아파트 전세보증금을 14%나 올렸다. 집주인들이 법 시행 직전 일제히 임대료를 과다하게 올리는 부작용이 있을 거라는 지적이 쏟아지던 상황이었다. 김상조 전 정책실장의 행위는 이 정권이 세입자 피해 방지를 위해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보다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해 사익을 추구할 준비가 돼 있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결국 이 정권이 내놓은 ‘개혁’이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란 의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정권심판론의 핵심은 ‘개혁’이 대다수 서민이 아닌 ‘자기편’만을 위한 것이었다는 의심이다. 앞서 여당과 친여 인사가 언론에 대응한 방식도 마찬가지로 비쳤을 것이다. 이런 의구심에 반박할 수단이 없는 한, 이번 선거는 정권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이 수단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중도층 유권자가 탄핵 이후 상당 기간 보수정치에 거부감을 가진 이유를 다시 상기시키는 게 거의 유일한 선거 전략처럼 됐다. ‘이명박’을 반복 거론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러나 정권심판론의 근거는 ‘현재’이고 ‘이명박’은 ‘과거’이다. 과거가 현재의 고통을 이길 수 있겠는가? 선거 결과와 별개로 뼈를 깎는 쇄신은 불가피하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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