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본격적으로 정치 행보를 시작했는지, 국민의힘 의원들을 연쇄 접촉했다는 보도가 쏟아진다. 모양새가 그리 좋진 않다. 외조모 성묘를 갔다가 어릴 적 친구인 권성동 의원을 만났다는데, 권 의원이 국민의힘 소속이 아니었다면 과연 만남이 성사됐을지 의문이다. 또 정진석 의원은 “남에게 10원 한 장 피해 준 적이 없다고 한다”는 윤 전 총장 장모에 대한 해명을 언론에 전하기도 했는데, ‘국민의힘에서 정치를 시작할 예정이며 검증에는 자신 있다’고 윤 전 총장 본인이 직접 밝히면 안 되는 이유는 뭔가. 시쳇말로 그냥 간이나 보겠다는 건지 궁금하다.
윤석열 전 총장이 ‘100세 철학자’나 노동정책 전문 교수를 만났다고 할 때까지는 그나마 뭘 하고 싶은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 연희동 맛집 투어에 이르러서는 도통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그런 우려가 있었는지 윤 전 총장은 ‘드러머 출신 30대 시사평론가’를 대동했는데, 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중책을 맡겼다기보다는 ‘인간 SNS’ 정도로 활용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전형적인 ‘청년 생색’의 정치 아닌가.
윤 전 총장은 왜 갑자기 급해진 것일까? ‘이준석 돌풍’의 영향이 아니겠냐는 분석이 많다. ‘이준석 돌풍’은 어쨌든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윤 전 총장이 보수정치에 자연스럽게 합류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동시에 ‘유승민계’ 논란에서 보듯 기성정치의 수단으로 통제할 수 없으리란 점에서 ‘이준석 대표’는 윤 전 총장에겐 불안 요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졌지만 잘 싸웠다’가 가장 좋다. 이게 윤 전 총장 행보의 배경이 아닐까 한다.
과연 이런 식의 셈법만으로 시대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본인이 생각하는 정치란 뭐고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인지를 내놓는 게 우선이다. 뭘 하겠다는 것도 없이 대통령 되기 쉬운 길만 찾는 데 몰두하는 거야말로 반복된 구태인데, 그걸 그대로 답습하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다.
오늘의 ‘윤석열’을 만든 것은 집권여당의 편협하고 기만적인 개혁 정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자기 위주 서사의 책을 내면서 여당은 다시 ‘조국의 시간’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 ‘민심 경청 투어’의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다시 입장 정리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그게 사과냐”는 비판과 “사과를 왜 하냐”는 반발이 양쪽에서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극성 지지층의 입김이 강한 당의 구조를 놓고 볼 때 송영길 대표의 사과는 나름 결단의 결과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조 전 장관 가족에 대한 수사 기준이 윤 전 총장의 가족 비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할 것”이란 얘길 더한 건 의문이다. 그 얘긴 다른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굳이 거기서 하는 바람에 ‘조국 대 윤석열’의 대결이 본질인 것처럼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은 과연 옳았는지, 이걸 정당화하며 반대론자들을 ‘개혁 거부 세력’으로 찍어 누른 여당의 정치가 정당하고 떳떳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조국과 윤석열의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늦었지만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라도 꼭 해야 할 일이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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