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문제는 다루기 어렵다. 각국 안팎을 아우르는 다양하고 복잡한 변수를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 역시 그렇다. 최근의 심각한 상황은 각자 내부 사정의 영향이 커 보인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부정부패 등으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장기집권으로 이미 민심을 크게 잃었다. 연정 구성에 지속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도다. 이미 연정구성권은 상대편에 넘어갔다. 만일 총리직에서 내려오면 그 순간 구속될 수 있다. 하지만 하마스와의 대결 구도가 선명해지면 지금은 반네타냐후 블록에 가담한 유대교 근본주의 세력의 태도 변화나 친아랍 세력의 이탈을 기대할 수 있다. 아직 희망은 있다고 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은 일방적 역사다. 하지만 이번엔 팔레스타인 내부 사정 역시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마흐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 역시 장기집권으로 인기가 떨어진 상황인데, 약속했던 15년 만의 총선거를 최근 연기했다.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 지역 선거를 불허했다는 게 이유였다. 압바스 수반이 속한 파타에 도전하는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단호한 투쟁 의지를 과시하는 것으로 지지를 얻으려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정치권은 적대적 공생관계에 놓인 셈이다.
누군가 나서서 말려야 하는데, 키를 쥔 미국의 태도는 미적지근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었다. 하루 이틀 일은 아니라지만, 뒤로는 휴전 합의를 모색하면서도 앞서 발언으로 당내 좌파 블록의 비판을 자초한 이유는 뭘까? 국내 유대인 기득권 세력의 눈치를 본 것이기도 하겠으나 외교안보 정책의 우선순위 역시 고려했을 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에 미국이 끼어드는 모양새에 따라 이란 핵합의 복원 문제도 덩달아 꼬일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뤄졌다.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백신이다. mRNA(메신저RNA) 백신의 국내 대기업 위탁생산이 실질적으로 이뤄지면 백신 수급에 대한 우려는 불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이나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중심에 놓으면서도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쓰는 데 망설임이 없다. 백신도 마찬가지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식품의약청(FDA) 승인 백신 2천만 회분을 해외에 제공하겠다고 밝히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비판하고 “2차 대전”을 언급했다. 백신은 정치화·무기화하고 있다. 우리는 배터리·반도체 분야에서 대미 투자를 지렛대 삼아 ‘백신 허브국가’가 되자는 전략으로 응해왔다. 한-미 정부 간, 또 기업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앞으로 성과를 기대해볼 만하다.
다만 개운하지 않은 부분이 분명 있다. 우리의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나 중국과 패권을 겨뤄야 하는 미국의 지정학적 이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치권 상층의 사정 등에 비하면, 교전 즉시 중단이나 공평한 백신 배분 같은 민중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문제는 부차적 차원에서만 다뤄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국익의 실체란 이렇듯 일방적이고 냉혹하다. 각자의 국익에서 빠져나와 서로 손을 맞잡는 건 이제 상상 속에서만 가능할까.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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