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김혜윤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투기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이다. 선거에 대한 영향이 불가피해 정부·여당은 불난 호떡집이 됐다. 몇 차례 공개 지시를 거듭한 문재인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와의 오찬 간담회에서 이번 사건을 “우리 사회의 공정과 신뢰를 바닥으로 무너뜨리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신뢰의 문제는 확실하다. 이제 공공기관의 도덕성을 어떻게 믿겠는가? 이번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이 정부 부동산 대책과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신뢰도 걸려 있는데, 이 중 일부는 이미 훼손돼 복구가 어렵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공정의 문제란 뭔가? 요즘 시사, 아니 수사평론가로 거듭난 듯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청년들이 특히 이 문제에 분노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게임의 룰조차 조작되고 있어서 아예 승산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청년들이 공정한 경쟁을 믿지 못하면 이 나라 미래가 없다”고 했다. 정치적으로는 대척점에 섰지만 대통령의 상황 인식과 공통분모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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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통분모를 최근 사건과 연관지어보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토지는 투자의 대상이고 돈 벌 기회는 공정해야 한다. 그런데 LH에 들어가기만 하면 얼마든지 특혜를 누리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이는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공정론’은 이 정권 들어 매 순간 등장했다.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 자산 투자를 소재로 한 공정성 논란의 핵심은 “윗세대는 벌 만큼 벌어놓고 젊은 세대가 돈 벌 기회는 박탈한다”는 서사였다. 실제 ‘윗세대’ 중에 자산 투자로 큰돈을 번 사람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따질 필요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런 주장에서 ‘청년’은 기득권에 의해 손해를 본 존재이다.
반면 ‘청년’의 이익을 지키는 게 공정한 것이란 서사도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관련한 논란이 대표적이다. 약자를 돕자는 선의에 기반한 정책일지는 모르겠으나 ‘청년’의 입사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공정하지 않다는 거다. 이게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된 곳도 마침 ‘공사’였다.
결국 종합하면 ‘나는 더 가져야만 하고, 약자와도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세계관은 불안과 절박함을 전제할 때에야 이해된다. 실제 우리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한 번 실패는 곧 죽음’이란 원리를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다. ‘강남 건물주’가 될 때까지 이 불안은 끝나지 않는다.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익명 앱에서 당당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생존경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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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건 허무한 해답이다. 지금 문제는 ‘열심히’가 ‘죽을 만큼’이란 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는 거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시절 구의역 사건을 “시정 전체를 흔든 사건”으로만 여긴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면 수용되는 신도시에 땅을 사는 건 바보짓”이라며 LH 직원을 감싼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이쯤 되면 이 현실을 유지하는 게 이 정권의 철학인 것 같다.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다면, 변창흠 장관부터 바꿔보시라.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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