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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변화’인 것처럼 ‘회귀’한다

등록 2021-05-29 02:27 수정 2021-05-29 11:30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현실은 시궁창이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다들 여기까지만 얘기한다. ‘어떤 변화’인지를 말하는 것엔 불성실하다. 가령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나선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정말 보수의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일까? 젊은 세대의 도전은 반갑지만 가치와 노선 차원에선 따져볼 문제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지금까지 내놓은 메시지를 보면 그는 무한경쟁의 화신이다. 정치적 노선이나 가치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컴퓨터 활용 능력 등을 근거로 공직 후보 검증을 하겠다니 그렇다. 여기에 할당제 폐지 주장까지 더하면 신자유주의 시대에 보수정권이 국민에게 강요했던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세계관이 완성된다.

‘공공선 자본주의’에 대한 보고서를 당내에 돌리기도 했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나 데이비드 캐머런의 사례를 말한다. 둘 다 중도화의 상징이다. 특히 캐머런은 지역구 여성 후보 50% 할당제를 주장한 일도 있을 정도다. ‘중부담 중복지’로의 전환을 말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충돌했던 유승민 전 의원(바른정당)은 대선 출마 당시 장차관과 공공부문 임원에 여성 30% 할당제를 약속한 일이 있다. 이에 비하면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히려 퇴행적이다.

이런 걸 문제 삼을 주자도 없다보니 당권 경쟁은 ‘계파’와 ‘배후’ 구도에 갇혔다. 구 친박(친박근혜계)은 나경원·김무성 전 의원 등을, 비박은 주호영 의원, 유승민계는 이준석 전 최고위원과 김웅 의원을 지지한다는 건데, 당사자 말을 잘 뜯어보면 이 사실 자체는 굳이 부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다만 나경원 전 의원과 주호영 의원은 “저쪽엔 실체적 대권주자가 있지 않냐”란 항변을 하는데, 참 한심한 수준의 논쟁이다.

방향을 상실한 변화로 위기를 벗어나려는 건 여당도 마찬가지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과거의 당내 주류와는 다른 변화를 보여주겠다며 보유세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빚내서 집 사는 시대의 재현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주택 가격이 ‘하향 안정화’될 거라고 전제하면 이 해법은 불가능하다. 즉 지금의 부동산 가격은 ‘뉴노멀’이다. 따라서 ‘변화’는 사실상 ‘백기투항’인 것이다.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사진)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김오수 후보자의 발언을 듣고 있으면 이쪽 같기도 하고 저쪽 같기도 하다. 허술하다 싶으면서 핵심은 비켜가는 답변을 반복했고, ‘친정권 검사’와 ‘검찰주의자’란 이유로 양쪽에서 견제당했다. 청문회는 조수진 의원(국민의힘)을 향한 김용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의 그야말로 인격을 의심케 하는 기이한 막말로 파행됐는데, 양쪽 모두 별 의지가 없었는지 그대로 끝났다. 아마 다들 애매했을 거다. 하여간 ‘김오수 검찰총장’ 등장은 변화인가 똑같은 시도의 반복인가? 이런 변화 아닌 변화가 김오수 후보자의 ‘낙마’ 가능성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됐을 테니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불만족스러운 현실의 대안으로 ‘과거’가 ‘변화’의 외피를 두르고 끝도 없이 회귀하는 정치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차라리 각자 알아서 살아남는 게 현명한 해법이라는 거다. 앞서의 한계에도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시대정신의 조류에 올라탄 이유도 이것이다. 이 점에서 가끔은 우리가 무슨 벌을 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한국 정치의 고난은 그런 면에서 자업자득이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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