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내 경선 후보일 때만 해도 언론은 “모두가 친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당선 뒤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하려니 이제 다들 “비주류”라고 한다. 아무튼 송 대표가 뭔가 달라진 당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는 건 사실 같다. 전당대회에서도 “총부채상환비율(DTI)·주택담보대출비율(LTV) 90%”라는 급진적(?) 주장을 했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고 사는 곳’이란 말이 유행하던 때도 있었는데, 순식간에 집은 다시 ‘빚내서 사는 것’이 됐다.
최소한 ‘김수현 모델’엔 지금보다 진전된 환경과 조건의 주택시장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김수현 모델’은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2011년에 쓴 <부동산은 끝났다>의 논지와 큰 틀에서 차이가 없다. 공공주택 공급으로 단기간 내에 모든 주택 수요를 충족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굳이 집을 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려면 민간 임대시장을 관리 가능한 체계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여러 혜택은 이를 유도하기 위한 거였다.
이게 건전한 민간 임대시장 조성이 아니라 ‘갭투기’ 수단으로 이용되고 끝나버린 건 정권의 능력 부족으로 이른바 ‘투기 세력’에 패한 결과이다. 원래 ‘청사진’ 자체가 틀린 게 아니라면, 안이한 접근을 보완해 애초 구상의 실현을 다시 모색하는 게 맞다. 하지만 정권은 여론에 떠밀려 공급만능론으로 선회했다. 이마저도 단기간에는 효용이 별로 없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결국 ‘대출 규제 완화’ 카드를 빼들 수밖에 없게 됐다.
많은 사람이 잊었지만, 한때 ‘소득주도성장’이란 말이 유행했다. 이의 원판인 ‘임금주도성장’ 이론은 조건에 맞는 해법을 써야 한다고 본다. 가령 이윤 증대가 수요 진작의 핵심이라면 친자본적 분배는 ‘낙수효과’로 이어진다. 이게 신자유주의였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경험한바 ‘낙수효과’는 없었다. 왜? 임금주도성장론자들은 선진국가 대부분을 이윤 주도가 아니라 임금 주도 체제에 속한다고 본다. 따라서 친자본적 분배는 ‘오답’이고 친노동적 분배가 ‘정답’이다.
이게 자영업자 비중이 큰 한국에 와선 소득주도성장이 됐다. 야심차게 추진한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자와 저임금노동자의 충돌로 귀결되자 권력은 당황했다. 앞서 이론이 옳다고 본다면 당장은 후퇴하더라도 노동소득분배 강화는 비타협적으로 추진했어야 한다. 그러나 더 이상의 노력은 없었다. 소득주도성장은 사라졌고 ‘적극적 재정지출’이란 구호만 남았다.
이 정권 사람들이 ‘김수현 모델’이나 소득주도성장에 얼마큼 확신을 갖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상대를 향한 ‘반대’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만 사고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새 지도부가 모색하는 ‘변화’도 반대를 ‘반대하는 것’, 즉 기성 해법으로 돌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는지 우려할 수밖에 없다.
김용민 최고위원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기소에 대한 주장은 이런 현상의 코믹 버전 같다. 기소의 부당함을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권 주자 유시민’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의도라는 주장은 그냥 검찰을 ‘반대’하기 위한 것으로 볼 때만 이해 가능하다. 이런 무리수는 다시 ‘검찰 반대’를 ‘반대’하는 여론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보수정치가 ‘거봐라’ 하는 동안 개혁에 대한 냉소는 걷잡을 수 없는 정도까지 커졌다. 계속 이럴 건가? 지금 필요한 게 어떤 변화인지 점검하고 합의하는 게 우선이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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