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윤석열 정국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며칠의 여론전에 이어 사의를 표명했다.
시작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였다. 검찰총장은 구중궁궐의 임금님이 아니다.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구체적 정책에 대한 의견을 국민에게 자세히 밝히는 일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당 일각의 움직임을 일종의 ‘공적 보복’으로 규정한 것은 현직 검찰총장이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사퇴는 이미 이 시점에 예견됐다.
윤 총장 주장대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면 ‘부패완판’이 되는 것일까?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윤 총장과 여권 내 대(對)검찰 강경파는 서로의 주장이 ‘세계표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각국은 각자가 처한 환경이나 역사에 따라 제각각의 제도를 쓴다. 결국 제 논에 물대기다.
중요한 건 우리의 현실이다. 검찰과 권력이 유착한 폐해가 컸다. 힘있는 자는 얼마든지 봐주면서 솜방망이 수사를 하는 일이 많았다. 반면 ‘하명수사’의 대상은 온갖 고초를 다 겪고 망신을 당했다. 재판에서 무죄를 받아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다. 수사·기소 분리가 이 정권 이전부터 개혁 의제였던 이유다.
그럼에도 윤 총장의 주장이 일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정치적 맥락 때문이다. ‘유착론’은 검찰이 조직의 명운을 걸고 살아 있는 권력과 맞서는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정권의 힘이 빠질 때 권력에 칼을 대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검찰이 힘을 유지한다는 ‘신화’가 만들어진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 이는 결과론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국면 이후 정권과 검찰의 대립으로 ‘신화’는 깨졌다. 2020년 정당성 없는 징계 청구는 윤 총장에게 ‘박해받는 사람’이란 이미지만 남겨줬다.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을 정권이 공격하는 건 세상 사람들에겐 이해 불가의 일인데, 박해받는 당사자가 “권력을 수사했기 때문”이라고 하니 그럴듯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임명은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논의보다 수사권 조정 등의 안착을 우선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주장은 개혁론자 입장에서도 설득력이 있다. 수사·기소 분리가 수사 역량의 훼손과 공백에 우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여당 일각은 이 문제에선 이제 대통령의 말조차 들을 생각이 없다는 걸 보여줬다. 재보선 이후 당권선거 국면까지 생각하면 이 논의가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 ‘권력 내부에선 해결 불가능’이라는, 윤 총장이 마침내 선을 넘고야 마는 근거가 되었다.
호사가들은 윤 총장의 다음 행보가 당연히 정치권 진출이라고 본다. 윤 총장도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렇게까지 했기 때문에 윤 총장은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야권은 ‘윤석열 바람’에 올라타려 할 것이고 여당은 강경론으로 쏠릴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검찰이냐 아니냐로 재편되는 것은 본인이 “대단히 사랑한다”고 말한 검찰 조직은 물론 정치사회 전반에 파괴적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검사는 수사만 잘하면 되지만 정치는 그렇지 않다. 기개 있는 검사로 남으시라.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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