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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속 고양이

반려동물 재난 매뉴얼의 필요성
등록 2019-04-14 19:56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나는 고양이를 키운다. 11살 노령의 고양이다. 어느 날 곤히 자는 고양이를 옆에 두고 글을 쓰는데 바닥이 ‘꽝!’ 하고 울렸다. 정말 온몸이 흔들리는 진동이었다. 깜짝 놀라 뉴스와 소셜미디어를 켰다. 알고 보니 경북 지역에서 생긴 지진의 여파가 서울에까지 느껴진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만약 지진 같은 큰 재난이 서울에 불어닥치면 나는 바닥이 울린 것도 모르고 자는 고양이를 데리고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만약을 대비해서 차를 사야 하나?

즉각 머릿속으로 매뉴얼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데리고 대피하려면 케이지(우리)에 넣어야 한다. 그리고 사료 봉투를 챙겨서 백팩에 가득 채워야 할 것이다. 물통도 챙겨야 한다. 고양이 화장실도 가져가야 한다. 동물을 데리고 공공 대피소에는 갈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수도 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차 안에서 지내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차가 없다. 만약을 대비해서 차를 사야 하나?

이번 강원도 산불 재난을 겪은 사람들도 같은 고민에 빠졌던 것이 틀림없다. 반려동물은 공공 대피소에 함께 들어갈 수 없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이 소셜미디어로 반려동물 대피법을 공유했다. 반려동물과 출입이 가능한 사설 대피소를 찾아헤맸다. 하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재난이 일어나면 우리가 몸을 맡길 수 있는 곳은 대피소다. 공공 대피소가 반려동물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규칙에 따를 수밖에 없다. 난감한 일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강원도 산불이 진화된 뒤 보도된 동물들의 사진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어떤 반려동물들은 가족과 함께 화마를 피했다. 어떤 동물들은 까맣게 그을린 채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타 죽은 동물도 많았다. 화재 때문에 사람들은 축사에 다가갈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다가 피신했다. 목줄을 풀어주지 않고 대피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화재 등 비상상황에 집을 비워야 할 때는 동물들의 목줄을 풀어주는 일이 필요하다. 반려동물도 챙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이것은 재난 상황이다. 다급한 재난 상황에서는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법이다.

재난 대응 계획에 동물을 포함하라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보도를 보면 미국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 이후인 2006년 ‘반려동물 대피와 운송 기준법’을 통과시켰다. 재난 대응 계획에 동물을 포함하라는 것이다. 이 법이 통과된 뒤 미국 전역에 반려동물과 함께 갈 수 있는 대피소가 늘었다. 이제 한국도 이걸 고민할 때가 됐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2017년 설문조사를 보면 전체 가구 수의 28.1%인 593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운다. 재난이 오면 593만 가구는 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재난으로부터 대피처가 필요한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반려동물까지 포함하는 재난 매뉴얼이 지금 우리에게는 절실히 필요하다.


김도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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