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을 도통 집중해 읽을 수 없는 시기가 있다. 난독증을 떨치는 데 적당한 책이 없을까 하며 서가를 훑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를 꺼내 뒤적이다 빠져들었다. 10년 전쯤에도 즐겁게 읽었던 책인데, 이제 이 책을 쓴 하루키의 나이에 가까운 때에 다시 읽으니 새롭게 환기되는 지점이 많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이다.
빛나는 나이를 지나왔다“전과 같이 연습을 해도 3시간40분대로 달리는 것이 점점 힘들게 되었고, 1킬로에 5분30초의 페이스가 되었고, 그리고 마침내는 4시간대의 아슬아슬한 선에 가까워졌다. 그건 약간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나이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이 육체적으로 쇠퇴해가고 있다는 것을 일상생활에서는 아직 전혀 실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무시하려고 해도, 숫자는 한발 한발 후퇴하고 있었다.”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은 내 신체가 정점을 지났다는 사실을 앞서 깨닫게 된다. 하루키의 말대로, 일상을 이루는 대부분의 활동에서 변화를 느끼기 전에 하강세를 감지한다. 점점 나은 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되도록 이 상태라도 오래 유지하려면 운동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넘어갈 시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이행하지 못하면 더는 진지하게 운동하기 어렵다. 이런 생각으로 이행하는 것은 좀 쓸쓸한 일이지만 미리 맞는 예방주사 같은 것이다. 다른 활동에선 아직 전성기처럼 보이고 모두 그렇게 말해주니 닥쳐올 하강 국면을 알아채기 어렵다. 운동하며 몸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 동안, 몸이 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쓸쓸해지지만, 그래도 계속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 애쓴다. 그런 하강이 없는 양 이를 악물고 전처럼 하려고 애쓰다 다쳐 몇 달을 꼼짝없이 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어떤 자책감과 마주하는지 안다. 물론 그런 일을 저질러봤기에 아는 것이다. 삶의 많은 일에 대해서도 머잖아 비슷한 상황이 닥칠 것임을 새삼 새겨본다.
나와 동갑인 친구 하나는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를 보고 나서는, 이제 주인공 윤진아와 서준희의 연애보다는 단호함으로 울타리가 되어주는 정영인 부장에게, 오랜 시간을 두고 쌓아온 윤진아와 서경선의 우정에 더 이입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연애하는 주인공보다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눈길이 가는 걸 보면, 빛나는 나이를 지나왔다는 당연한 사실을 평화롭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말에 공감하며 “빛나는 나이를 지나왔다”는 말과 “평화”라는 말을 나란히 놓고 마음속으로 만지작거렸다. 쓸쓸함이 좀 있더라도 그 자리에 평화를 놓을 수 있다면, 이는 꽤 좋은 거래다. 스포트라이트는 무대 중심에만 쏟아지지만, 거기서 좀 비껴간 곳도 무대다. 그곳에서도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걸맞은 준비가 필요하다.
몸이 늙듯이 마음도 늙어야아직 40대 초반 나이에 너무 이른 생각이라는 사람도 있다. 그 말도 틀리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인생의 하강 국면을 우아하고 품위 있게 맞고 싶다. 그러려면 시간을 들여 이행을 준비해야 한다. 능력이 줄어드는 만큼(이런 표현이 영 그렇다면 ‘능력이 변화하는 만큼’이라고 해두자) 그에 알맞게 몸에 힘을 빼고 적절한 역할로 바꿔가며 일상을 천천히 재조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몸이 서서히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마음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젊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꼭 좋은 건 아니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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