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를 만들던 노동자가 부산대학교의 한 동상 앞에 섰다. 동상 옆엔 동상에 “옷깃을 여미고 경의를 표하는” 표석이 있다. “날로 창성해나가던 사업은 마침내 하늘의 뜻까지 얻어 태양그룹의 기업 신화를 창출해내기에 이른다. …부산대학교에 한국 개인 기부금 사상 최고액인 305억원을 헌납하여 양산 캠퍼스 부지를 매입케 해준 것도 그 실천행의 일환이었다.” 1인 시위하는 노동자들의 팻말은 그를 달리 칭했다. “이 동상의 주인공은 생탁 막걸리 사장입니다.”
동상은 생존 인물에게 헌정됐다. 송금조 태양사 회장은 올해 91살이다. 그는 1953년 부산 거제동에 양조장을 차렸다. 1974년 스테인리스 주방제품 제조사인 태양사를 창업했고, (주)태양과 (주)태양화성을 잇따라 세웠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인 박정희가 권해(“1960년대 말 양조장, 정미소 사업자들을 모아놓고 ‘여러분이 그나마 자금 여력이 있는 계층인 만큼 제조업을 해보라’고 해서”) 기계금속업에 뛰어들었다고 언론 인터뷰(2007년 10월18일 )에서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에겐 한나라당 대표 시절 정치후원금(2004~2007년 1600만원)을 냈다. 1988년엔 전국 개인사업자 중 최고액 세금 납부자로 기록(1989년 국세청 발표)됐다. 그는 1986년 대통령 산업훈장과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고, 2000년과 2002년엔 각각 국민훈장 봉황장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03년엔 부산대에 305억원을 기부키로 약정(부산대의 기부금 전용 논란으로 2008년부터 부산대와 법적 분쟁)했다. 2004년엔 별도로 1천억원을 출연해 경암교육문화재단을 만들었다. 기부금을 낸 해에 부산대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1년 뒤 부산대는 그의 동상을 세웠다.
송금조 회장은 생탁 막걸리 사장 40명 중 한 명이다. 생탁은 전국 매출 2위(부산 점유율 1위) 막걸리다. 1970년 정권이 막걸리 업계를 ‘1지역 1업체’로 구조조정할 때 부산의 43개 양조장도 하나로 통합(부산탁약주제조협회)됐다. 사장의 수는 양조장 수와 일치했다. 현재 40명이 된 사장들은 장림·연산 두 공장에 분산 배치돼 있다. 사장 중 일부는 탁약주협회장과 공장별 대표·감사 등을 맡고 있고,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사장들 다수는 배당을 받는다. 40명 중엔 ‘친형제 사장’ 3명(1명은 대학교수 겸직)도 포함돼 있다. 10명 이상의 사장은 서울에 거주 중이며, 선대로부터 지분만 상속받은 사람들도 있다. ‘지분 사장’이란 이유로 다수의 사장들이 파업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 공장별 독립회계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장들은 두 공장의 수익을 합쳐 n분의 1로 나눠갖는다고 노동자들은 전한다. 2011~2013년 평균매출은 206억원이었다. 사장들이 월 2천여만원씩 가져갈 때, 100여 명 노동자의 월급은 130만~220만원이었다.
생탁 장림공장 노동자들은 2014년 4월29일 파업(8월21일 기준 478일째)에 돌입했다. 시간외근무 수당 지급과 공휴일 휴무 보장, 주 5일 근무,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날(4월16일) 송복남 노조 총무부장은 택시노동자 심정보(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부산지회 조합원)씨와 광고탑(부산시청 앞)에 올랐다. 128일째(8월21일 기준) ‘하늘 감옥’에서 살며 계절이 가열되는 동안 해결의 기운은 거꾸로 냉각돼갔다. 파업 참가자 45명 중 현재 8명(이 가운데 5명은 60살 전후의 여성)만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파업에서 이탈한 노동자들은 회사가 개입해 만든 노조에 가입했다. 새 노조와 임·단협을 체결한 회사는 지역 일간지에 “노사상생 대타협” 광고를 냈다. 파업 조합원 중 한 명은 집에서 고독사한 채 발견됐다.
송복남·심정보씨는 폭염이 달군 ‘양철냄비’ 속에 있다. 광고탑의 크기는 작고, 넓이(1m 미만)는 좁고, 길이(3m 미만)는 짧다. 해가 뜨면 아침 7시부터 전광판이 달아오른다. 창문이 없는 광고탑은 열을 안으로만 가둬 그들을 데우고 익힌다. 최근 두 사람은 열사병을 앓으면서도 의사 진료를 받지 못했다.
“동료들이 올려준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하고 구토 증세에 시달렸다. 다리엔 빨간 열꽃이 피었다. 열사병 증세였다. 광고탑 안 온도계가 44~45℃를 찍는다.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의료진이 올라오려면 크레인을 불러야 한다. 크레인 사용료가 30만원이다. 우리가 그 돈 들여 링거를 맞을 처지가 못 된다.” (송복남)
오랜 파업으로 생탁 노동자들은 ‘싸우고 견딜 돈’이 바닥났다. 더위가 준 병은 더위에서 벗어나야 치료되지만 두 사람은 더위를 피할 수 없다. 그들은 과일을 먹으며 열사병과 다만 대면하고 있다. 과일의 당이 몸속으로 들어가면 포도당으로 바뀐다고 의사는 조언했다. 그들은 ‘간접 처방’에 의지하며 대상포진(송복남)과 습진(심정보)까지 앓고 있다. 야당과 부산시가 중재에 나섰지만 교섭은 진전이 없다.
강병규 장림제조장 공동대표는 인터뷰를 거부했다. “우리가 일 시키면서 정말 고구마만 줬겠나.” 생탁 노동자들은 파업 직후 “휴일에도 출근해 고구마 먹으며 일했다”며 열악한 노동 현장을 묘사했었다. 강 사장은 “언론이 우리를 고구마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열심히 사는 지방 중소업체일 뿐이다. 우리를 짐승으로 몰지 말라.”
송금조 회장의 휴대전화는 부인인 진애언 경암교육문화재단 상임이사가 대신 받았다. “우리가 생탁의 주인인가. 대표 사장인가. 우리는 지분을 가졌을 뿐이다.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데 우리보고 책임을 다하라고 하면 어떡하나. 농성하는 걸 말릴 순 없지만 솔직히 억지처럼 보인다. 데모도 뭘 알고 했으면 좋겠다.”
사장들은 완고하고, 막걸리는 텁텁하며, 광고탑은 타들어간다.
*국가인권위원회(서울 중구) 건물 옥상에서 71일째 고공농성 중인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정명·한규협(제1075호 ‘광고업체 사장 “죽어서 내려오라고 해요”’ 참조)씨를 소속 사내업체들이 8월20일 해고했다. 이틀 전 두 업체의 사장들은 농성장 옥상을 찾아 핸드마이크를 들고 궐석 징계위 개최를 공지했다. 광고탑 아래로 하늘 벼랑이 깊이 파이고 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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