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세상을 이해하는 근육을 키우려면

“소수자의 고통은 하지 못하는 것을 하라고 강요하는 사회가 있기 때문”… 신윤동욱 기자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성소수자 등을 취재하며 쌓아온 이야기를 나누다
등록 2015-08-05 18:39 수정 2020-05-03 04:28
은 7월6일부터 6주 동안 교육연수생 프로그램(제1064호 표지이야기 ‘좋은 기자 프로젝트’ 참조)을 진행하고 있다. 연수생들은 현직 기자들이 진행하는 10여 차례의 기사 분석·저널리즘 특강을 듣는다. 7월2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회의실에서 2시간 동안 이뤄진 3차 기사 분석 특강을 지면 중계한다. _편집자
7월28일 오후 <한겨레21> 회의실에서 신윤동욱 기자(가운데)가 교육연수생 5명과 취재 뒷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용일 기자

7월28일 오후 <한겨레21> 회의실에서 신윤동욱 기자(가운데)가 교육연수생 5명과 취재 뒷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용일 기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채식주의자, 청소년. 신윤동욱 기자는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인권의 문제로 전해왔다. 교육연수생 5명은 그가 소수자의 삶을 전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

교육연수생 5명의 ‘멘토’ 역할을 맡기도 한 그는, “(회사에서) 쓰라고 하니까 쓰는 것” “(나처럼) 인상이 좋아야 얘기를 잘 들을 수 있다”며 장난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이내 진지한 어조로 “가장 소외된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전체적인 문제가 가장 잘 보인다”고 강조했다.

“‘나는 왜 총을 들지 못하는가. 나는 왜 이성애를 하지 못하는가. 나는 왜 고기를 먹지 못하는가.’ 내 기사들은 ‘나는 왜 그것을 하지 못하는가’를 얘기했다고 생각한다. 병역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평화운동가, 성소수자들이 그 문제 때문에 자살을 하거나 감옥에 간다. ‘하지 못하는 것을 하라고 강요하는 사회’가 있어서 그렇다. 인권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권은 사회가 동의한 원칙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인권의 문제로
신윤동욱 기자는 2001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권 문제로 보도했다(제345호 ‘차마 총을 들 수가 없어요’). 한겨레

신윤동욱 기자는 2001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권 문제로 보도했다(제345호 ‘차마 총을 들 수가 없어요’). 한겨레

2001년 신윤 기자는 한국 언론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권의 문제로 제기했다(제345호 ‘차마 총을 들 수가 없어요’ 참조). 이전까지는 일부 ‘이단’ 종교인들의 반사회적 행동으로 치부됐다. 그의 기사는 ‘양심의 자유’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 2002년 병역법 제88조 1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받아들여졌다. 2004년 5월엔 법원에서 군 입대 거부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3명에게 최초로 무죄를 선고했다.

“(내가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이 일을 했을 거예요. 피해자가 너무 많았거든요.” 1970년대 아버지가 병역거부를 해 징역형을 살았는데 그 아들도 여전히 감옥에 간다. 예전에는 어른 어깨가 꼭 끼는 너비에 겨우 다리를 뻗고 앉아 있을 정도인 ‘독거특창’에 갇히기도 했다. 고문도 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했다. 그런데도 반세기가 넘도록 인권의 언어로 그들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없었다.

신윤 기자는 이런 문제를 포착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달라진 시대의 ‘감수성’을 풍월이라도 알았던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1990년대 초·중반에 대학을 다녔다. 이전까지 계급이나 민족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동운동, 통일운동이 전부였던 한국의 학생·사회 운동이 달라지던 시기였다. 성(젠더·섹슈얼리티) 문제, 환경 문제부터 신세대와 구세대 간 갈등까지 다양한 문제가 얘기되기 시작했다.

양심적 병역거부 기사를 쓴 2000년대 초에는 ‘양심의 자유’를 위한 인권운동이 한국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은 ‘양심의 자유’를 가질 권리가 있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주말에는 시내에서 열리는 여러 집회에 다니는 게 취미였다. 여성활동가들이 집회에서 ‘컵을 깨자’는 유인물을 나눠줘서 봤더니 여성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가부장적 문화에 대한 비판을 담았더라. 여성·평화·인권이란 의제가 사회 흐름 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성주의 활동가들이 모인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 취재를 갔을 때였다.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던 그들에게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자극을 받았다. 그는 시대의 의제를 예민하게 알아채고 사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그 스스로는 “단지 ‘시대의 컨베이어 벨트’ 역할을 했다”고 표현했다.

의제를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
‘태극기 세대가 휘날린다’(제553호), ‘서른다섯의 사춘기’(제624호)처럼 사회의 새로운 흐름을 포착해 전달하는 보도도 많았다. 한겨레

‘태극기 세대가 휘날린다’(제553호), ‘서른다섯의 사춘기’(제624호)처럼 사회의 새로운 흐름을 포착해 전달하는 보도도 많았다. 한겨레

“기자가 자기 의제를 만들기도 하지만, 시대적 의제의 컨베이어 벨트가 될 때도 있다. 지금은 ‘안 된다’고 하지만, 언젠가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다룰 때 그렇다. 양심적 병역거부나 성소수자 문제가 대표적이라고 본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관심을 가진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니었다. 그때 경기도 의정부 청소노동자들 파업 기사를 썼다. “이주노동자들의 서울 같은 곳”인 경기도 안산에 대해서도 꽤 많은 기사를 썼다. 이주노동자 역시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신윤 기자는 “새로운 의제가 뉴스”라고 말했다. 새로운 의제를 가지고 문제제기하는 것, 그 자체가 기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상대로 ‘사회가 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들어야 했다. 신윤 기자가 생각하는 기자란 “응축된 시간 안에 내밀한 이야기를 듣는 행운을 누리는 직업”이다. ‘사람 책’을 읽는 직업인 셈.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고 현장에 가보고 그 사람과 대화하며 얘기를 끌어낸다. 신윤 기자는 “‘기자라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늘 한다”고 했다. “기자는 무상으로 다른 사람의 시간을 뺏는 직업”이라고도 했다. 취재원이 누구냐에 따라 기자는 달라진다. 신윤 기자는 주로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자세를 취한다고 했다. 힘있는 사람들, 정치인들이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을 만나서다.

그런 태도와 함께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현장’이다. “현장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무릅쓰고 끊임없이 물어보는 직업”이 기자라고 했다. ‘태극기 세대가 몰려온다’(제553호 표지이야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쓸 때를 예로 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일종의 자기 모멸감을 갖고 있다. 식민시기 일제에 의해 강요됐다고도 얘기하는 열패감이다. 2000년대 들어 새로운 흐름이 생겼다. 태극기를 ‘예쁘다’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세대가 나타났다. 월드컵이 개최되고 한류 바람이 불 때다. 한국 사람임을 긍정하는 세대는 기존 세대가 보기에 새로웠다. 신윤 기자는 “맨땅에 헤딩해야 했다”고 말했다. 응원단 ‘붉은 악마’가 퍼포먼스를 연습하는 곳에 찾아가 사람들을 만났다. 이 새로운 흐름에 ‘태극기 세대’란 이름을 붙였다.

주변에서 찾기도 한다. ‘서른다섯, 물음표에 서다’(제624호 표지이야기) 기사를 쓸 때 그랬다. 그는 ‘30대 중반이 됐는데도 여전히 스스로 미성숙하다고 느끼는 세대’가 출현했다는 추정을 했다. 지금 얘기하는 ‘오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세대를 의미하는 말)처럼 기존 생애주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세대가 생겨났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장만하는 주기가 무너지는 세대다. 주변을 비롯해, 30대 중반쯤 되면서 자기 삶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자기 삶의 근본적 문제를 생각해보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서른다섯이지만 여전히 사춘기다. 두 번째 사춘기를 겪고 있다”는 내용으로 기사를 썼다.

내밀한 경험을 응축된 시간에 받아들여야

그런데 기자는 누구나 현장에 가고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닌가? 신윤 기자가 남과 같은 일을 하면서 다른 답을 끌어내는 비결은 뭘까. 그는 “몇 가지 질문을 갖고 가되 질문에 얽매이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이를 ‘모래성 쌓기’라고 표현했다. “당장 기사를 쓰는 데 필요 없을 것처럼 보이더라도, 일단 가보고 일단 듣는다. 어떻게 보면 곧 무너질 모래성을 쌓는 일 같아도, 일단 질문을 품고 현장에 가는 것이 중요하다.” 세월호 취재를 예로 들었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유가족들과 같이 배를 타고 현장에 간다면, 어떤 것을 볼지 먼저 질문을 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만 현장에 있을, 훨씬 많은 이야기들을 받아들일 자세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단순히 듣기만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단 하나의 문장”을 당사자에게서 끌어내려 한단다. 신윤 기자가 생각하는 기자의 효용이란 이런 것이다. 문제를 발견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잘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 그는 “세상을 이해하는 ‘근육’을 키우기 위해 시를 읽으라”고 권유했다. 사람의 압축적이고 내밀한 경험을 이해하는 데 시의 도움이 컸다는 것이다.

신윤 기자는 스스로를 “기록하는 자”라고 표현했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소수자들이 자신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들을 이미 알고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들은 고통의 현장을 경험하며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그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소화해서 쓸 뿐”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보수’에도 관심이 많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성소수자들은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공통점이 없다. 그들을 같은 ‘소수자’로 만드는 것은 바로 기독교 단체, 개신교 단체들이다. 소수자를 다룰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체다. 그는 성소수자 혐오세력이나 종교단체에서 우리 시민사회 보수의 핵심을 보았다고 한다. 보수의 문제는 정권, 정파,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정권이 바뀌는 것에 따라 인생의 모든 것이 바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사회문제가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바이엘만 100번째

그는 기자 일을 하면서 “바이엘을 100번 치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몇가지 인권을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보면 한국 사회의 변화는 느리지만은 않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는 것 같다고 느낀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성소수자들의 권리 가 장벽을 넘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여전히 쓰고 싶은 기사가 많다. 사회에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목소리가 많아서다. “다른 매체도 많이 쓰는 ‘동성결혼’ 기사보다는 ‘청소년 퀴어’ 기사를 쓰고 싶다. 주류적인 흐름에서 숨겨져 있는, 주목받지 못하는 목소리들을 담고 싶다.” 그는 장벽을 넘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장벽 너머의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기자다.

김가윤 교육연수생 gaga0618@naver.com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