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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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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름 6m, 1m의 난간대, 한 번 돌면 25m 이 거리를 매일 고공농성 일수만큼 돈다

단독 고공농성 213일째,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가 보내온 편지
등록 2015-01-01 14:20 수정 2020-05-03 04:27

구미국가산업단지(경북 칠곡)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가 굴뚝에서도 철저하게 시간을 지키며 운동하는 이유를 글로 전한다. 그는 213일째(12월26일 기준) 홀로 하늘에 있다. _편집자


아침에 눈을 뜨면 싸늘한 냉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굴뚝 아래 공장사수팀은 스타플렉스(스타케미칼 모기업)가 입주한 서울 목동 CBS 건물 앞에서 비닐천막을 치고 농성하는 동지들을 생각하며 침낭 속에서 일어난다.

굴뚝의 하루 일과는 시간표를 따라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먼저 물 한 잔으로 속을 깨우고 몸풀기를 시작한다. 제자리뛰기를 하며 아침운동을 하고 있으면 공장사수팀 동지들이 아침 식사를 올려보낸다. 213번째(12월26일 기준) 먹는 굴뚝의 아침 식사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무언가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혼 이후 18년 동안 아침 밥상은 꼭 이현실님과 같이했기 때문일까.

아침밥을 먹고 나면 ‘자유시간’이다. 명상을 하거나 책을 읽고, 굴뚝 농성장 구석구석을 정리하기도 한다. 페이스북을 하고 지인의 안부 전화도 받으며 2시간을 보낸다. 추위 속에 혼자 있다보면 한여름의 뜨겁던 햇빛이 그렇게 그리울 수 없다. 자유시간에도 굴뚝을 거니는 일이 많아졌다. 소변을 얼린 페트병을 모아 굴뚝 한쪽에 벽돌처럼 쌓아올린 뒤 그 위로 비닐을 쳐 바람을 막았다. 맞바람은 피할 수 있지만 한겨울 냉기는 ‘소변 벽’으로도 차단할 수가 없다.


한여름의 햇볕이 그립다 / 소변 얼린 페트병을 모아 벽돌처럼 쌓아올렸다. 맞바람은 피할 수 있지만 한겨울 냉기는 ‘소변 벽’으로도 차단할 수가 없다.


스타케미칼(경북 칠곡)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차광호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의 얼굴 사진을 촬영 순서대로 배열했다. 농성 직전에 찍은 맨 왼쪽 사진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수염과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고 있다. 차광호 제공

스타케미칼(경북 칠곡)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차광호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의 얼굴 사진을 촬영 순서대로 배열했다. 농성 직전에 찍은 맨 왼쪽 사진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수염과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고 있다. 차광호 제공

굴뚝 위에서 스타케미칼의 텅 빈 공장을 내려다보면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든다. 내 청춘을 보낸 20년의 기억이 공장 곳곳에 어려 있다.

공장동과 식당 사이에 너른 마당이 있다. 1995년 동기생 38명이 한국합섬에 입사했다. 우리 기수는 100여 명의 면접자 중에서 유독 합격자(1~2명이 보통이고 많으면 3~4명)가 많이 나왔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폴리에스터 섬유 경기가 좋아 한국합섬이 제2공장을 증설했다. 공장 가동을 위해선 추가 인원이 필요했다. 1공장에 입사해 몇 개월 기술을 익힌 뒤 9월에 지금 굴뚝이 있는 공장으로 동기생 10여 명과 함께 옮겨왔다. 공장은 설비가 완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석 달 뒤 설비를 설치·가동하는 과정에서 입사 동기 2명이 산업재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중 한 명인 ○○○은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이었다. 특히 족구를 잘했다. 그가 손을 땅에 짚고 족구 네트 위로 공을 내리꽂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어른거린다. 산재 보상과 재발 방지를 두고 노동조합이 협상에 나섰다. 생긴 지 1년 된 민주노조는 조직력에 한계가 있었다. 교섭에 들어간 노조위원장이 사 쪽 대표로 나온 공장장에게 뺨을 맞았다는 말이 공장 전체에 퍼졌다. 노조는 준법투쟁에 돌입했다. 이른바 ‘FM 투쟁’이었다. 모든 공정을 안전수칙에 맞추는 투쟁으로 당연히 생산량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 빌미로 회사는 2006년 1월 노조 간부들을 대상으로 23억7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교섭은 결렬됐고 그해 4월7일 한국합섬 1·2공장이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5월5일 조합원 2명의 분신으로 37일간의 파업은 마무리됐다. 노조 간부 전원은 짧게 3개월에서 길게 1년6개월의 감옥살이를 했다. 민주노조를 지키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너른 마당 옆은 야외 휴게실이다. 1998년 한국합섬 임·단협이 한창일 때였다. 위원장이 조합원들 몰래 회사와 직권조인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교섭위원으로 참여한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간부 50여 명의 결의를 모아 야외 휴게실 앞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전원이 삭발했다. 우리의 머리카락을 깎아주던 조합원이나 머리카락이 깎이는 우리나 모두 울었다.

휴게실 옆엔 식당이 있다. 2006년 회사의 일방적 정리해고 통보에 맞서 전체 간부가 결의서를 작성해 식당 유리창에 붙였다. 그 결의서는 스타케미칼이 회사를 인수해 식당 운영을 새로 시작할 때까지 붙어 있었다. 한국합섬 폐업 뒤 5년 동안 고용승계 투쟁을 했던 우리가 직접 밥을 지어 먹던 장소도 이곳이었다.

2시간의 자유시간이 지나고 나면 운동을 한다. 운동은 농성을 버티게 하는 바탕이면서 굴뚝생활의 주요 일과를 차지한다. 교도소 수감 시절 허리가 좋지 않아 고생한 동료가 허리를 튼튼하게 만들고 좁은 공간에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라며 하루 두 차례 108배를 권했다. 굴뚝농성 150일이 지난 뒤부턴 기력이 떨어진다는 ‘고공농성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농성 일수에 맞춰 절하는 횟수도 늘렸다. 목과 복근 강화 운동을 하고 나면 점심이 올라온다. 점심을 먹은 뒤엔 다시 1시간의 자유시간을 갖고 오후 3시부터 오후 운동을 시작한다.

여름엔 뜨거운 햇빛을 피해 저녁에 하던 운동을 지금은 오후로 당겨 햇살이 살아 있을 때 한다. 굴뚝 내경(안지름)이 6m 정도 되고 그 주위로 1m 넓이의 난간대가 있다. 이 난간대를 왔다갔다 왕복한다. 한 번 돌면 25m를 걸은 셈이 된다. 이 거리를 매일 고공농성 일수만큼 돈다. 팔굽혀펴기와 제자리에서 앉았다 일어나기까지 끝내면 저녁 식사가 올라온다. 식사를 받고 나서 줄넘기 없는 줄넘기를 농성 일수만큼 한다. 허리돌리기로 운동을 마무리한 뒤 저녁을 먹는다.

저녁 식사 뒤엔 휴대전화로 하루 일정과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저녁 8시쯤 이현실님과 안부 통화를 하며 서로를 격려한다. 그는 굴뚝농성을 시작한 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통화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하루의 삶을 페이스북에 일기로 정리한 뒤 밤 11시 전후로 취침한다.

하루 시간표를 짜서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스타케미칼은 한국합섬을 399억원에 인수했다. 한국합섬은 시설 설비에만 2500억원 이상 투자한 공장이었다. 한국합섬이 파산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지급돼야 할 퇴직금과 체불임금이 한 사람당 6천만원으로 총 330억원에 달했다.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녹아 있는 공장을 헐값에 인수한 스타케미칼은 공장 가동을 통해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2012년 내가 지회장으로 임·단협을 할 때 스타케미칼은 매달 1억~2억원씩 적자가 난다며 인건비 절감을 위해 감원과 비정규직화를 원했다. 우리가 만든 폴리에스터 원사 500t을 매달 모기업인 스타플렉스에서 사용했다. 스타플렉스와 스타케미칼은 김세권 사장이 경영한다. 스타케미칼은 김세권 부자가 90% 이상, 스타플렉스는 68%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다.

2013년 1월2일 시무식 자리에서 회사는 공장 가동을 중단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공장이 재가동되면 권고사직을 받아들인 직원에게만 일자리를 준다는 회사의 입장에 따라 수용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사이에 노-노 갈등이 일었다. 그 뒤 회사와 노조(나를 포함해 권고사직을 거부한 8명을 조합원에서 제명)는 지난 5월26일 권고사직에 합의하고 공장을 비웠고, 이튿날 새벽 나는 굴뚝에 올랐다.

현재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노동자는 11명이다. 한국합섬 폐업 뒤 5년 동안 싸우면서 빚에 허덕인 우리는 다시 2년여의 가난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 험한 세월을 겪으며 한 동지는 뇌경색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고, 돈을 벌지 못하는 아빠들의 가정은 아이들 학원비는커녕 생계가 막막하다. 그래도 투쟁을 그만둘 순 없다. 지금 포기하면 다른 일을 한다 해도 노동자들의 설 자리는 없다. 김세권 사장의 ‘먹튀’에 맞서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굴뚝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투쟁은 건강 유지다. 내가 하늘에서도 열심히 운동하는 이유다. 착취와 억압 없이 모두가 평등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여러분의 관심을 바란다.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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