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m 광고탑에서 농성 중인 씨앤앰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강성덕씨가 단식농성 중인 땅의 동료들을 내려다보며 고통스러운 마음을 띄웠습니다. 그는 임정균씨와 함께 45일째(2014년 12월26일 기준) 하늘을 견디고 있습니다. _편집자
“안녕하세요. 2층에 살고 있는 강성덕입니다.”
2014년 12월13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김정욱 동지가 굴뚝 위에 올라선 뒤부터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층엔 코오롱의 최일배(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장) 동지, 2층엔 씨앤앰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인 저와 임정균 동지, 3층엔 차광호 스타케미칼(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 동지, 4층에선 쌍용차 동지들이 집을 지어야 하는 현실입니다.
12월26일로 저희가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광고탑에 오른 지도 45일이 되었습니다. 차광호 동지의 213일에 비하면 짧은 기간이지만 살림살이가 하나씩 늘어나는 걸로 봐서 저희도 꽤나 오래 머문 듯합니다. 아침은 동지들의 안부전화와 함께 컵라면으로 식사를 합니다. 아래 동지들은 밥을 먹으라고 하지만 임정균 동지와 저는 땅 위에서의 고생을 알기에 그들이 먹는 컵라면을 먹겠다고 했습니다. 라면을 먹은 뒤엔 밤새 저희 둘을 지키기 위해 불침번을 섰던 동지들과 손인사를 나눕니다.
전광판 안쪽은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아 많은 먼지가 쌓여 있습니다. 오전엔 주로 주변 정리를 하고 먼지를 닦으며 사람 손때를 묻히고 있습니다. 점심 식사 이후엔 차광호 동지가 조언해준 대로 운동을 합니다. 저는 오른팔에 생긴 심한 근육통 때문에 주로 걷기 운동을 1시간가량 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열흘에 한 번 정도 올라와 주사를 놓고 약을 처방하는데 근육통이 쉽게 가시지를 않습니다. 추위와 전자파 등이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광고판은 새벽 6시에 켜지고 밤 12시가 돼야 꺼지는데 전광판 안쪽은 전원부와 안정기가 600여 개 달려 있습니다. 소음도 소음이지만 마치 클럽 조명처럼 여러 개의 형광등이 번갈아가며 조금씩 반짝거립니다. 임정균 동지는 심한 편두통을 앓고 있고, 저는 하루 종일 샤페이 강아지처럼 얼굴이 퉁퉁 부어 있습니다.
저녁 7시30분엔 매일 문화제를 하는데 이 시간이면 차광호 동지가 자주 생각납니다. 사람도 뜸하고 외로운 45m 굴뚝에서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합니다. 문화제가 끝난 뒤 잘 준비를 하고 누우면 밤 11시 정도 되는데 소음으로 잠들지 못합니다. 자정이 돼 전광판이 꺼지고 나면 저희는 소리내어 말합니다. “아~ 살 것 같다.” 이땐 마치 평화롭고 조용한 호숫가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추위 속에서 깨고 잠들기를 반복합니다. 옥상의 고장 난 환풍기로 찬바람이 계속해서 들어올 때면 마트에 놓인 신선 채소가 된 기분입니다.
광고탑은 땅 위에서 25m 높이지만 눈을 하늘로 향하면 광고탑을 압도하는 빌딩들이 저희를 굽어보고 있습니다. ‘진격의 거인들’이 마치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입맛을 다시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희는 애니메이션에서처럼 높은 곳에 줄을 매달고 곡예를 해가며 자본의 거인들과 싸우고 있지만, 길거리를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신기한 듯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손가락질로 저희를 가리키며 무심하게 지나갑니다. 언젠가 그들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들인데 말이죠.
사실 저는 노동조합이나 집회 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사람이었습니다. 2003년 전국노동자대회 때 제 동생은 의경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동생은 어떤 노동자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팔에 심한 골절상을 당했고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2013년 8월 노조에 가입할 때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지 않고 노동자들을 탄압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노조에 가입해 정당한 요구를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동생도 저의 투쟁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파업투쟁과 노숙농성에 이어 전광판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나의 문제들은 내가 아닌 가족과 친구, 그 어떤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고공농성장 아래에 있는 동지들 중 20명이 단식투쟁에 돌입했습니다. 천막도 아닌 비닐에 나무 막대기를 세워 농성장을 지었는데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경찰들이 강제로 철거했습니다. 지켜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저와 임정균 동지는 너무나 참담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엔 단식을 하고 있는 동지들을 바라보며 괴로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동지이자 직장 동료였던 저 사람들을 힘든 인내와 고통의 시간 속으로 밀어넣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고 목이 메어온다. 서해안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높디높은 70m 굴뚝도 아니고, 외로이 200일 넘게 45m 굴뚝 위에서 투쟁했던 것도 아니다. 내가 농성을 하고 있는 25m 광고탑은 서울 도심 한복판 광화문에 있고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동지들의 머리 위에서 함께하고 있다. 바람,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에서 투쟁을 하고 있어 좋은 조건이라 위안을 삼았건만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동지들을 위에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외로워도 좋고, 높거나 바람이 많이 불어도 좋으니, 차라리 나 혼자 감당하고 싶은 심정이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노숙, 고공농성, 단식을 해야만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분통이 터진다.”
단식투쟁을 하는 동지 20명 중 10명은 제가 8년 동안 일해온 사무실 동료들입니다. 일이 많아 점심과 저녁을 굶어야 할 때 밥이라도 마음 놓고 먹기 위해 서로 도와가며 일했던 동료들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설치·사후관리(AS) 작업 때 도움을 요청하면 자기 일을 마다하고 도와줬던 동료들입니다. 퇴근 뒤에 기울이는 소주 한잔에 신세한탄을 하며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들어줬던 그들입니다. 그들과 일터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12월24일엔 씨앤앰 대주주 MBK파트너스에 해결을 촉구하며 조합원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저는 이곳에 올라오면서 부모님께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어머니에게 휴대전화를 새로 사드리며 SNS를 알려드린 게 잘못이었나봅니다. 제 SNS를 보시고 농성 사실을 알게 된 뒤 매일 밤 잠 못 이루고 걱정에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겨울이면 아들 고생한다며 보일러도 안 켜신 어머니입니다. 임정균 동지를 보러 형수님과 누님도 오셨는데, 형수님은 몇 마디 말도 못하고 이내 울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기구(OECD) 가입국 중 최저 출산 국가라 국가정책으로 세 자녀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광고탑 위에 목숨을 걸고 올라온 임정균 동지는 세 자녀의 아빠입니다. 세 자녀 혜택을 주면 뭐하겠습니까. 정작 아버지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투쟁을 하려 합니다. 최일배, 차광호, 이창근·김정욱 동지 모두 승리해 1층에 함께 모여 한잔 술을 기울일 날을 학수고대하겠습니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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