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애들이 담배 피우는 걸 줄일 수 있다는데 고작 주머니에서 푼돈 나가는 게 그렇게 아까워?’ 담뱃값 인상이 그저 증세를 위한 꼼수임이 간파될까봐 준비한 카드였을까. 담뱃값 인상이 청소년 흡연율 감소에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반대론에 상당한 도덕적 부담을 안겨주는 모양이다. 한 일간지는 교복을 입고도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이 늘고 있어도 학교마저 손 놓고 있다며 담뱃값 인상의 불가피성을 스리슬쩍 들이밀기도 했다.
문제의 대상은 ‘욕망하는 청소년’
한때 지적 고뇌와 청춘의 저항을 상징하기도 했던 흡연이 이제 ‘문화적 루저(loser)’의 표지가 되어버린 시대가 왔다. 이는 남성 비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담배 피우는 여성과 청소년은 한 번도 도덕적 비난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담배와 여성 청소년의 조합에는 ‘그렇고 그런 여자애’라는 더 강력한 혐의가 덧씌워져 있다. 최근 ‘부천 아이유’라 주목받던 한 여성 청소년이 흡연과 음주 전력이 입방아에 오르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중도하차한 일이 있었다. 학교의 통제는 더욱 강력하다. 담배나 라이터를 갖고만 있어도 처벌하고 3~5회 적발시 퇴학이라는 초강수를 두기도 한다. 얼마 전 흡연 문제로 교사에게 괴롭힘(교사는 ‘지도’라 말했다)을 당하던 중학생이 자살한 사건마저 있었다. 담배는 누구에게나 유해한데 왜 유독 청소년에게만 도덕적 비난까지 덧씌울까. 간접흡연 문제를 제외하면 타인에 대한 책임을 묻기 힘든 행위에 대해 학습권 박탈이라는 중징계를 가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흡연 자체가 아니라, 의무의 족쇄에 갇혀 있어야 할 청소년이 ‘감히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것’을 처벌하고픈 건 아닌가. 특히 정부가 청소년 흡연에 예민한 이유는 청소년 개개인의 건강보다 훼손된 몸이 불러올 사회적 비용과 관련돼 있다.
내가 만나본 청소년들은 사회적 비난과 가난한 주머니 사정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계기로 흡연을 선택했고 복합적 삶의 맥락 속에서 흡연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저 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서도 아니고, ‘센 척’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호기심에 손댔다가 이내 중독이 되어버린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불량해서가 아니다. 학생은 대표적 감정노동자다. 성적에 대한 항시적 압박 속에 지루한 공부를 견뎌야 하고 교사의 심기를 덜 건드릴 자세까지 고민하며 졸아야 할 만큼 눈치 백단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이들에게 담배는 짧은 시간 내에 감정 회복을 도와주는 약물이었다. 콜센터나 백화점 화장품 코너 등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의 흡연율이 높은 까닭과 같다. 화려한 쇼핑가 뒷골목에서 저임금 중노동에 시달리는 청소년 알바들이 담배 몇 모금 빨아들이고선 황급히 돌아서는 장면을 쉽사리 볼 수 있다. 누구를 응대하지 않아도 되는 찰나의 순간이다. 호된 시집살이, 남편 뒷바라지에 지친 아낙들에게 아궁이 앞에서 몰래 담배 피우던 시간이 유일하게 허락된 혼자만의 시간이었던 것과 유사하다. 가족의 파탄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던 어떤 청소년에게 담배는 세상 누구도 주지 못한 위안이었다. 가부장적 통제에 지친 여성 청소년이 꼬나무는 담배에는 사회가 부여한 소녀상을 거부하는 저항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거리 청소년에게 담배는 당연한 유약함과 절박한 사정을 감추기 위한 위장의 도구였다. 어떤 이들은 담배 피우는 이들끼리 형성되는 유대감 덕분에 잠시라도 세상이 덜 외로웠다고 고백한다.
담배 함부로 차지 말라피우는 것은 메시지다. 흡연에는 ‘습관’을 넘어 그들을 계속 끌어당기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러하기에 담배를 둘러싼 삶의 맥락과 감정의 서사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금연의 당위성만 역설하는 것은 어리석다. 담뱃값 인상으로 담배가 주던 위안조차 살 수 없는 청소년들은 무엇을 또 선택할까.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당신은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담배 함부로 차지 마라. 이 사회와 교육은 청소년에게 한 번이라도 담배만큼의 위안을 준 적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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