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선원들이 법정에 들어올 때마다 피해자 가족들 사이에 동요가 인다. 첫 재판이 열리던 때나 지금이나, 방청 인원이 줄었을 뿐 서늘한 감정의 밀물이 법정 뒤에서 피고인석과 재판장석까지 찬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증오와 답답함의 감정이다. 이 감정은 변호인들에게도 날아가 꽂힌다. 9월23~24일 광주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임정엽) 심리로 열린 세월호 선장·선원에 대한 17·18차 공판에서도 검찰은 전문가 자문위원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선원들의 인적 과실을 입증하려 했고 변호인들은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 피해자 가족이 화를 참지 못하고 재판장에게 ‘변호인이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쪽지를 보내기도 했다. 재판장은 “질문이 필요한지는 재판부가 판단할 문제”라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가만히 있다면 그게 선원인가”17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이윤철 한국해양대 교수, 김명모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는 ‘선원의 상무’(Good Seamanship)에 근거해 비상시엔 인명 구조가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선원의 상무란, 선원이 선박의 조종 성능 및 당시의 사정과 조건에 맞게 선박을 안전하게 운항해야 하는 의무를 뜻한다. 일부 피고인들은 선박의 엄격한 서열 구조를 근거로, 선장이나 상급 사관의 ‘구조 명령’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구조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한다. 변호인들은 이 부분을 강조하는 질문을 했다.
변호인: 선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하다가 만약 사고가 중하지도 않은데 퇴선을 시켜 오히려 인명피해가 커질 수도 있지 않은가. 그 경우에도 독자적 판단을 해야 하는가?
이윤철 교수: 세월호의 복원성이 안 좋다는 건 선원들도 알고 있었다. 선교에 모여 컨테이너가 떨어지는 것도 목격했다. 긴박한 상황이라는 건 선원들도 인지했다고 본다.
변호인: 선장이 재선하고 있는데, (선장이 적절한 판단을 못했다고 하더라도) 1등 항해사나 기관장이 선장에게 조언을 하는 게 쉽겠는가?
김명모 교수: 쉽지 않겠지만 그렇게 했어야 한다. 선장만이 선박의 안전을 보장할 순 없다. 15명의 선원이 힘을 합쳐야 한다. 선장이 잘못 판단한다고 14명이 가만히 있다면 그게 선원인가?
18차 공판에서는 박형주 가천대 건축공학과 교수가 증인으로 나와 ‘가상 시나리오에 기반한 승선원 대피경로 및 탈출소요시간’ 시뮬레이션 결과를 설명했다. 변호인들은 ‘퇴선 명령이 이뤄졌더라도 모두 탈출·구조됐을지 확실치 않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따라서 시뮬레이션 결과는 선원들의 인적 책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박 교수는 정상적인 퇴선 명령이 내려졌을 경우를 세 가지 시나리오로 나눠 분석했다. 첫째, 사고 직후인 아침 8시50분께 배 기울기가 30도일 때 3층 좌현 갑판으로 탈출. 둘째, 세월호 인근 둘라에이스호 선장이 탈출을 권고한 9시24분께 기울기가 52.5도일 때 3층 좌현 갑판으로 탈출. 셋째, 조타실에서 선원들이 해경 123정으로 올라타려고 한 9시45분께 59.1도로 기울어진 선박에서 4층과 5층 좌현 갑판으로 탈출. 배 기울기에 따라 보행 속도는 달라진다. 평지에서 성인 남자의 보행 속도를 평균 1초당 1.4m라 보고 기울기가 30도일 때는 보행 속도를 0.89(m/s)로 59.1도일 때는 0.46(m/s)으로 잡았다. 여성의 보행 속도는 남성의 80%로 했다. 승선원들은 모두 각자의 선실에서 대피를 시작하도록 설정했다.
선원 훈련비 투자 않은 선주도 책임 있어시뮬레이션 결과 첫째 시나리오에선 5분7초 만에, 둘째에선 9분38초 만에, 셋째에선 6분25초 만에 승객과 선원 전부가 탈출에 성공했다. 즉, 세월호가 59.1도까지 기울어진 상황에서도 적절한 퇴선 안내만 있었더라면 승선자 모두 6분여 만에 바다로 탈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의 경우 둘째보다 배 기울기가 더 컸음에도 탈출 소요 시간이 적게 걸린 까닭에 대해 박 교수는 “4층에 승선원들이 가장 몰려 있었고, 탈출 경로가 4층 갑판과 5층 갑판으로 다변화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배가 기울며 3층 갑판이 침수되고 4층·5층이 수면에 가까워졌는데,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주로 4층에 머물렀기에 전체 탈출은 더 빨라진 것이다. 가족들이 안타까워 신음 소리를 냈다. 변호인들은 시뮬레이션의 허점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변호인: 진술을 들어보면 다친 사람이 꽤 있고, 겁먹고 움직이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던데 (시뮬레이션에서) 그건 생략했나?
박 교수: 그렇다.
변호인: 승객들이 공포, 당황으로 앞사람을 추월하기도 할 텐데 그것도 생략했나?
박 교수: 그렇다.
변호인: (수평 이동시) 경사진 바닥을 걸어야 하는데도 평균적인 수평보행 속도를 적용했나?
박 교수: 그런 상황에선 게걸음을 한다고 보고, 수평보행 속도보다 낮은 속도를 적용했다.
변호인: (시뮬레이션 영상의 객실 출입구 하나를 지적하며)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이곳에는 출입문이 없었다고 한다. 이 출입구를 통해 탈출한다는 건 잘못된 가정 아닌가?
박 교수: 도면을 토대로 했다. 도면에는 문이 있었다.
변호인들의 지적을 수용하더라도, 퇴선 명령만 있었다면 상당수의 인명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시뮬레이션에는 ‘충분한 수의 훈련된 선원들이 신속하고 정확히 승객들을 유도한다’는 가정이 있다. 세월호 선원들은 모두 그런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승객 구조를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런 변명을 하는 건 온당치 않겠으나, 선원들을 훈련할 의무가 있는 해운사의 책임 역시 가볍지 않다. 김명모 교수는 “교육자로서 희생자들에게 부끄럽다”며 동시에 선원 교육에 대한 투자를 ‘비용’으로만 보는 사업자들을 비판했다. “선원들은 선주에게 ‘을’의 입장이다. 선주가 교육비를 투자하지 않는데 선원들이 어떻게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겠는가?”
선원의 상무만큼 중요한 국가의 의무변호인들은 피해자 가족들로부터 비난을 받긴 하지만, 그럼에도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원들의 책임을 줄이기 위해 해경·해운사 등 다른 주체들의 책임을 드러내는 일이다. 검찰은 선원들에게 큰 책임을 지우는 반면, 해경의 과실 지적에는 소극적이다. 탈출 시뮬레이션에는 ‘해경이 선원들의 도움을 받아 퇴선 조치를 취했다면’이라는 경우의 수가 들어가지 않았다. 이러한 가정이 있었다면 해경에게도 상당한 책임을 물을 근거가 된다. “해경이 도착한 후 구조 책임은 해경에게 있다”는 변호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선원의 상무만큼이나 중요한 국가의 의무 소홀도 반드시 짚어야 한다.
오준호 작가·번역가·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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