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세월호 참사를 처음 신고했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 고 최덕하(17)군의 마지막 애원이었다. 소년의 호소는 끝내 제대로 가닿지 못했다. 구조 작업에 나선 해경은 교신 없이 침몰하는 배에 접근했다. 선원들은 사고 해역 관할 진도관제센터 대신 제주관제센터에 사고 사실을 신고했다. 구조 작업의 징검다리가 돼야 할 어떤 주체도 제대로 된 소통을 이어가지 못했다. 박소영(25)씨가 느끼기에 세월호 참사는 전 과정에 걸친 ‘커뮤니케이션의 참사’였다.
<font size="3">전 과정 ‘커뮤니케이션의 참사’</font>그 소통의 참사를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일본 지바대학교 대학원에 다니는 박씨는 기말고사도 내팽개치고 며칠 동안 세월호 침몰 직후 88분의 시간을 시각화한 ‘인포그래픽’을 직접 만들었다. 디자인과학을 전공하는 그는 사용자가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습득하게 되는지 등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연구하고 있다. 일본에 있는 박씨와 7월24일 전화로 인터뷰 했다. “제가 하는 일이 보이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을 보이게 하는 작업이거든요. 재난 대응이란 게 치밀하게 정부의 각 기관이 소통하며 꾸려가는 것인데 그게 안 되니 사고가 점점 커진 겁니다.”
박씨가 설정한 구조 커뮤니케이션의 첫 점은 희생자 최덕하군의 신고 전화다. 이 점을 시작으로 정보가 흘러가며 사건이 전개되는 것이 정상적인 소통이다. 세월호 참사에선 달랐다. 박씨가 만든 인포그래픽에서 최군과 해경을 잇는 선은 보이지 않는다. “두 주체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해 구조도 이뤄지지 못한 것이죠.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면 너무 많은 것들이 희생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6년 전 일본에 간 뒤,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일에 큰 관심을 둘 새가 없었다. 박씨가 나선 것은 하나의 장면 때문이었다. “팽목항에 비가 내리는데, 희생자·실종자 명단이 비에 젖어 너덜너덜해진 종이에 적혀 있는 걸 뉴스에서 보았어요. 이름도 다 번졌는데 거기에 동그라미 치는 방식으로 집계를 하고 있더라고요. ‘생각보다 어설픈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 내가 살고 있구나’ 처음으로 느꼈어요.”
한국 정부의 무능은 박씨가 영국 글래스고에서 직접 목격한 ‘매킨토시 빌딩 화재 사고’(5월23일) 당시 영국 정부가 보여준 신속함과 강렬한 대비를 이뤘다. 1909년 건축된 유서 깊은 건물이 불에 타긴 했지만 화재는 빠르게 진압되었고 인명 피해도 전혀 없었다. 영국인 친구들은 “우리 동네 소방관이 가장 불을 잘 끄는 영웅”이라고 추어올렸다. 아쉬움이 컸다.
박씨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도 경험했다. 일본 정부의 사고 대응도 한국 정부보다 낫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점은 있었다. “유족들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것은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분들께 인간적인 대우와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생활이 보장돼야 하는데…. 사고 직후 돌아가신 단원고 교감 선생님도 전 세월호 희생자라고 생각해요.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살펴야지요.”
<font size="3">전문가·대중 잇는 역할 하고 싶어</font>어설픈 나라, 어설픈 어른들. 그 가운데서 박씨는 희망의 길을 더듬는다. 어른들이 어설프니, 젊은이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아직 일본에서 대학원을 마치지 못했지만 그는 이 여름 한국에 들러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자원봉사에 나서기로 했다. “세월호 이후 제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생각이 또렷해졌어요. 아직 학생인 만큼 이 시간을 활용해서 저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 전문가와 대중을 잇는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다신 세월호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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