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실장이, 대통령이 어딨는지 모른다고?”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기관보고 막바지 날인 7월10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답변을 듣고 한 유가족이 한숨을 쉬며 한 말이다. 김 실장은 세월호가 침몰한 4월16일 대통령에게 전화와 문서로 수차례 상황을 보고하고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오후 5시까지 대통령과 대면하는 회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야당 위원이 그날 대통령이 어디 있었느냐고 질문하자 김 실장은 “경호상 저희들도 대통령이 계신 곳을 알 수 없다”고 답했다. 팽목항의 희생자 가족들이 그 어느 때보다 국가의 도움을 바라던 날, 박근혜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비서실장조차 소재를 몰랐다는 것일까.
<font size="3">‘컨트롤타워가 아니다’만 무한반복 </font>
“대통령은 승객 300명이 선실에 갇혀 있는 걸 7시간 다 되도록 몰랐습니다. (비서실이) 무슨 보고를 했다는 겁니까. 구조하라고 지시하고 독려하는 게 대통령 임무의 다가 아닙니다. 대통령이 응원단입니까!” 김현미 새정치민주연합 위원이 추궁하자 김 실장은 청와대는 ‘법적으로’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란 말만 반복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근거로 내세웠다. 청와대 비서실장의 출석이 “국정조사 역사상 처음”이라고 심재철 국정조사특위 위원장(새누리당)은 자찬했지만, 유가족들은 실망
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 실장은 대통령이 ‘물에 들어가 구조할 수는 없다’며 잘못은 해경, 해경을 감독해야 할 해양수산부에 있다고 했다. 다만 청와대도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인정한다고 했다. 김 실장을 두고 ‘제2의 유체이탈 화법’을 쓴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남 탓, 실질적인 책임 회피, 그러면서 슬쩍 국민 정서를 포용한다는 이미지만 보여주려는 방식이었다.
여당 위원들은 ‘컨트롤타워’란 단어가 오해의 소지를 준다고 하는 등 증인의 말에 힘을 실었다. 진상 규명에 초점을 맞춘 야당에 비해 여당에서는 사후 대책을 주로 질의했다. 증인들은 앞으로 ‘국가 개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밤 11시 기관보고가 끝나자 성난 유족들이 소리쳤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우리 아이들 수장시켜놓고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하면 끝이냐.” 김 실장은 참사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야당 위원들의 요구에 묵묵부답했다.
이날 심재철 위원이 저녁 식사 시간을 2시간이나 잡자 유족들은 “무슨 밥을 2시간이나 먹느냐” “도시락 먹고 빨리 하라”고 화를 냈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유족들과 국회의사당 정면 계단에 앉아 넓은 국회 정원과 노을에 물들어가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구경할 기회를 얻었다. 단원고 같은 반 아이 엄마들이 얘기를 나눈다.
“저기 빌딩 참 높네. 올라가보고 싶다.”
“왜?”
“우리 애한테 가까이 가게….”
국민을 ‘대의’한다는 이 커다란 건물은 이 부모들의 아픔을 과연 안아주고 있는가.
유족들은 기관보고 동안 아침 일찍 국회에 와서 참관했다. 나는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으로 유족들과 종종 동행한다. 유족들은 국정조사가 참사의 진상을 과연 밝혀내고 있다고 생각할까. 그들은 국정조사를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font size="3">특위 요구 자료 3%만 제출한 청와대 </font>5월28일 밤, 유족 70여 명이 국회에서 철야농성을 하며 국정조사에 대한 여야 합의를 요구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의 한 임원은 5월을 “진실 규명의 골든타임”이라고 불렀다. 그때 한발을 떼지 못하면 연이은 선거 속에 세월호 참사도 잊히고 말 거라는 판단이었다. 먼저 주검을 수습한 유족들이 가족대책위를 구성했고, 전남 진도를 비롯해 전국으로 직접 증거와 증언을 수집하러 뛰어다녔다. 그런 그들이 울고 항의하고 호소해 겨우 합의된 국정조사인데, 여야는 기관보고 일정을 잡는 데만 3주를 써버렸다. 시작된 기관보고 동안 여당 위원들은 졸고 유족에게 호통치고 막말을 했다. 해경청장이 증인으로 출석한 7월2일 여당은 아예 국정조사를 5시간 동안 파행시켰다.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위원이 해경-청와대 교신 녹취록을 두고 “VIP(대통령)가 현장 영상을 좋아한다”고 녹취록엔 없는 내용을 언급한 게 빌미가 됐다. 여당은 김 위원의 특위 사퇴를 요구하면서 국정조사 일정을 중단하겠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이때 조원진 여당 간사, 심재철 특위 위원장은 당일 증인으로 출석한 해경청장을 여당 상황실로 불러 ‘수상한 티타임’을 가졌다. 참다못한 유족들이 여당 상황실로 쳐들어가 왜 증인을 방으로 불러들이느냐고 항의하자 조원진 간사는 “방에 있는데 해경청장이 들어와서 음료수 캔을 따줬을 뿐”이라고 대꾸했다. 길에 떨어진 고삐를 끌고 갔더니 소가 뒤따라왔다는 말이 떠오른다.
기관보고 일정이 끝나가는 시점에 유족들의 반응은 ‘국회를 더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럴까. 첫째는 국정조사에 불성실하게 응하거나 출석하지 않아도 제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MBC는 ‘언론의 자유’를 내세워 아예 출석을 거부했고, 청와대는 특위가 요구한 자료의 3%만을 제출했다. 그런데도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동행명령 등 제재 수단을 발동할 수 없다. 위원들도 자료가 부족하니 질의 수준이 날카로울 수 없다. 단원고 희생 학생 오영석군의 아버지 오병환씨는 “기대를 했는데 밝혀진 게 거의 없다. 여야 모두 언론에 나온 자료 이상은 없다. 이미 우리가 아는 내용이 거의 다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오병환씨는 이번에 외아들을 잃었다.
둘째는 증인들과 여당 위원들이 진실 규명에 적극적인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각 기관 책임자들은 자기의 책임은 두루뭉술하게 ‘반성한다’고 하면서 실질적 책임은 다른 부서로 떠넘겼다. 김기춘 실장의 증언이 그 백미였다. 통수권자이자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구조 전문가가 아니기에 현장 상황에 책임이 없다는 말, 사고보다 이른 시각에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참석자들이 회의 직후 배 침몰 소식을 듣고도 ‘외교안보 사안’이 아니란 이유로 흩어져버린 사실은 듣는 귀를 의심하게 했다. 인명구조의 절박성 앞에서 각 부서가 업무 경계선을 따지는 이 상황은 결국 대통령에게 통솔의 무능력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여당 위원들이 ‘VIP’를 보호하려 몸을 던지는 상황에서 국정조사의 한계는 뚜렷했다.
<font size="3">특별법 필요성 보여준 국정조사</font>유족들은 오히려 이 현실이 ‘4·16 특별법’의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특별법으로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지닌 조사위원회를 둬야 간섭받지 않고 성역 없는 조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국정조사로는 진상 규명이 요원하다는 걸 국민들도 봤다. 우리 가족들은 이래서 특별법으로 가야겠구나 생각한다. 오히려 전의를 불태우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가족들과 시민들이 모은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 인원은 약 400만 명이다. 7월15일, 이 서명 용지를 들고 유족들은 국회로 간다. 이것은 ‘최선을 다할 테니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대한 유족들의 대답이다.
오준호 작가·번역가·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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