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이 모이면 역사가 된다. 역사는 기억과 기억과 기록과 기록과의 싸움이다. 기억과 기록을 움켜쥐고 역사를 선점하려는 권력에 맞서 ‘정보의 선별과 조정’을 거부하는 피해자·시민의 기억과 기록만이 원형에 가까운 역사를 전할 수 있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에 시민기록위원회가 꾸려진 이유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그들의 희생으로 무엇이 바뀌었느냐가 결국 기억을 완성한다고 생각해요.”
박보나(21)씨는 단원고등학교(경기도 안산) 2학년5반 박성호군의 누나다. 지난 4월16일 수업(대학교 3학년) 중 사고 소식을 듣고 학교를 나온 뒤 아직 강의실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현재 휴학을 생각하고 있다.
“성호는 ‘성’의 한자로 ‘성스러울 성’(聖)을 썼어요. 어린 시절 오토바이에 치였을 때도 크게 다치지 않았고, 축구공에 눈을 세게 맞았을 때도 많이 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기적의 아이’라고 불렀어요. 신부가 될 수 있도록 하느님이 꼭 지켜주실 거라고요.”
신뢰를 얻는 진심과 노력으로가톨릭 사제가 꿈이었던 성호군은 4월23일 선부동성당에서 사제복 대신 수의를 입었다. 이날은 보나씨의 영명축일(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성인의 축일)이었다. 그가 울음을 눌러가며 말했다.
“그날 아침 성당에 가서 기도했어요. 누나 축일 축하해주러 빨리 (바다에서) 올라오라고요. 정말 저 축하해주러 동생이 와줬어요.”
그는 부모님이 비운 집에서 남은 두 동생의 식사를 챙기며 인터넷 비방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성호군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이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글들을 모니터링하게 만들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문제의 글들’을 올려 사고 현장에 있는 피해자 가족들이 볼 수 있게 했다. 가족대책위에 모니터링팀이 구성된 뒤부턴 정식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너무 심한 말들은 충격이 커서 오히려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다. 그는 바늘 같은 말로 가족들을 찌르는 사람들보다 그들의 말을 부른 사고 책임자들에게 더 화가 났다.
그렇게 보나씨는 기록에 대응하고 기록을 모으면서 세월호의 역사를 쓰는 일에 발을 디뎠다. 현재 그는 가족대책위 시민기록위원회에서 활동 중이다. 피해 가족들 중 그를 포함한 4명이 위원회에서 기록 작업에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할 예정이다.
김종천 위원회 사무국장은 “피해 가족과 시민이 기록의 주체로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는 유례없는 참사입니다. 국가가 기록의 주체가 됐던 지금까지의 역사와는 달라야 합니다. 5년 혹은 10년 뒤 왜곡된 역사를 복기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기록을 바라보는 가족들과 지원팀의 생각이 성장하면서 조직 체계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안산미디어공동체 미디코’ 사무국장이기도 한 그는 처음엔 카메라 한 대를 들고 참사를 기록했다.
“사고 첫날부터 단원고 학생들은 촛불을 밝혔어요. 이튿날부터 손팻말을 들고 나오면서 사실상 그들은 기록을 시작했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뭘 해야 하지’ 고민했습니다. ‘나는 찍는 사람이니까 찍어야지’ 하는 생각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았어요.”
사람들이 모이고 연결되면서 안산기록팀이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혼자였던 그의 곁엔 지금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뿐 아니라 대학교 기록전문가와 사진작가, 르포작가, 만화가 등이 결합해 있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가족대책위의 기구에 참여할 수 있었던 데는 ‘신뢰를 얻는 진심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록 작업을 하는 시간 외엔 분향소 주변의 기록물을 관리하며 가족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떤 가족으로부터는 “노숙자인 줄 알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아이 친구들 메시지가 어딨을까”시민기록위원회는 안산을 기록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안산을 기록하는 일이 피해 가족들과 지역공동체를 살리는 일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한 단원고 학생 아버님이 아이 친구들이 써준 메시지를 찾을 수 없다며 저에게 물으셨어요. 하늘공원 관리사무소에서 글들을 찾았는데 딸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반가워하셨어요. 기록이 세월호 가족들과 안산에 갖는 의미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안산은 슬픔의 도시를 넘어 회피의 도시가 됐어요. 적지 않은 가족들이 동네를 떠나고 있습니다. 희생자 가족이 가장 많은 고잔동을 살리는 일은 한국 사회의 혁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위원회는 세월호 가족들의 사고 진상 규명 활동을 영상으로 돕는 데 앵글을 맞추고 있다. 유가족들의 이야기와 떠난 이들이 남긴 흔적도 기록하고 모은다. 의미 있는 기록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단원고 2학년 생존 학생들이 71일 만에 학교로 돌아오기 3일 전(6월22일)에 발표한 호소문(‘우리가 학교에 돌아갈 때 두려운 것들’을 담은 글) 원본을 버려지기 직전에 확보했다. 학생들이 타이핑하기 전 직접 쓴 손글씨 메모다. 재등교 이후 생존 학생들이 학교 벽에 만들어 붙인 나무 모형도 그대로 옮겨와 보관 중이다. 김 국장은 “피해자들이 말하고 그들이 작성한 기록들을 우리가 보전해서 사회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국장은 유가족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기록할 수 있도록 ‘유가족영상기록단’ 구성도 계획하고 있다.
박보나씨는 “유가족 입장에서 무엇보다 가치 있는 기록은 아이들의 흔적”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짧게 살다 갔잖아요. 아이들이 이 땅에 남긴 게 별로 없어요. 그 흔적들을 최대한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겠어요. 친구들과 시민들이 애도했던 기록도요. 아이들은 그 흔적으로 우리 곁에 있을 테니까요.”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전광훈 “탄핵 반대 집회에 사람 데려오면 1인당 5만원 주겠다”
공수처 차량 파손하고 ‘난동’…윤석열 지지자들 ‘무법천지’ [영상]
윤석열,구치소 복귀…변호인단 “좋은 결과 기대”
윤석열 구속되면 수용복 입고 ‘머그샷’
공수처 직원 위협하고, 차량 타이어에 구멍…“강력 처벌 요청”
윤석열 지지자 17명 현장 체포…서부지법 담 넘어 난입
윤석열, 구속영장 심사서 40분 발언…3시간 공방, 휴정 뒤 재개
경호처 ‘윤석열, 하늘이 보낸 대통령’ 원곡자 “정말 당혹”
“우리 엄마 해줘서 고마워, 매일 올게”…눈물의 제주항공 추모식
“사필귀정, 윤석열 구속 의심치 않아”…광화문에 응원봉 15만개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