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준씨는 국가정보원이라는 막강한 국가기관과 싸우는 것뿐만 아니라 의심하고 선 긋고 비난하는 사회와도 싸워야 했다. 사건 초기 가장 많이 들었던 ‘너도 갔었니?’라는 물음에 답하기 어려웠다. 조직원이 130명이라는 국정원의 발표가 있었기 때문에, 갔다고 하면 ‘RO’를 국정원에 확인시켜주는 것 같았고 안 갔다고 하면 비겁한 태도 같았다. 이 질문은 사실 다음 질문을 이어가기 위한 시작이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총, 폭파, 해킹’ 이런 내용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설명이 사람들에게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느꼈다. 다양한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자리였고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었다는 설명은 궁색한 변명, 궁지에 몰린 자기방어로만 이해되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의혹을 거두지 않은 시선으로 ‘아무리 그래도 지나친 것 아니냐, 잘못한 것 아니냐’며 그를 추궁했다. 사실을 파악하고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호기심에 가득 찬 질문, 듣고 싶은 것을 확인하려는 의도적인 질문에 설명을 아무리 해도 쳇바퀴 돌듯 이야기는 진전되지 않는 상황이 억울했다. 정용준씨에게 국정원과 사회적 외면 중 무엇이 더 힘든 싸움이었을까?
<font size="3"><font color="#C21A1A">먹잇감을 찾는 눈빛</font></font>정용준씨는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에 대한 압박이 높아지고 통합진보당에 비난이 쏟아지던 지난해 9월 기자회견을 했다. 이른바 ‘RO 회합’으로 알려진 정세강연회에 참여한 5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사건 핵심은 지하혁명조직의 정예화된 조직원들이 모여서 내란음모를 했다는 것인데, 나는 ‘RO’를 들어본 적도 없고 ‘RO’ 성원도 아닌데 강연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조직원으로 규정된 거죠. 상당히 부담스런 일이기는 했지만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어요. 구체적인 강연 내용 이전에 조사도 안 하고 증거도 없이 우리를 RO 성원으로 규정하는 것은 안 된다. 언론에 항변하고 싶었던 거죠. 그러나 예상은 했지만 ‘그래서 총 얘기 나왔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정리됐어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기자들의 반응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기자들 눈빛은 녹취록에 등장했다는 자극적인 단어들을 확인하고 싶은, 자신의 입에서 그런 단어가 나와주길 바라는 먹잇감을 찾는 눈빛과 같았다. 실제 대부분의 언론은 ‘녹취록 발언을 확인하는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보도했다. 어렵게 결심한 자리였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오히려 자신들의 이야기가 충분히 전달될 수 없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아쉬운 것은 기자들이 궁금하면 따로 연락한다든가, 한번 들어보겠다며 취재를 요청하는 후속 절차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 번도 없었죠. 이른바 진보를 대변하는 언론도 있는데, 보도가 안 되더라도 일단 인터뷰를 하고 내용을 들어보려는 과정이 한 번도 없었어요. 한참 뒤 가 보도했어요. 늦었지만 고마웠습니다.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했으니까요.”
<font size="3"><font color="#C21A1A">기자회견 자청했다가 국정원 기다리는 처지로</font></font>기자회견 이후 그는 ‘앞으로 싸움이 많이 힘들겠구나, 이러다 외톨이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반전 평화 캠페인을 나갔다가 빨갱이라고 욕하고 침 뱉는 시민도 만났다. 때리지만 않았을 뿐이지 공포가 엄습했다. 통합진보당은 어느새 모든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나쁜 놈이 돼 있었다. 그들은 전쟁이 나면 자국민을 향해 총을 쏠 놈들이라는 정서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매일 쏟아져나오는 기사의 홍수 속에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없었다. 해명은 ‘거짓말’과 ‘농담’이라는 제목으로 일축되었다. ‘진짜 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정용준씨는 이런 반응에 대해 두려움과 동시에 외로움을 느꼈다. 연일 새로운 기삿거리를 제공하는 국정원과 사람들한테 ‘정말 우리가 뭔가를 준비했고 혁명조직이라면 이런 상황을 대비하고 대응도 잘하지 않았겠느냐’는 반문을 하고 싶었다.
1심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의 유일한 증거인 녹취록 오류가 720여 곳이나 드러났다. 진실이 뒤늦게라도 밝혀질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1심 재판 결과는 모두 유죄였다. 이로써 구속된 6명뿐만 아니라 5월 정세강연에 참여한 130명 모두가 ‘내란음모’에 가담한 사람이 되었다. 기자회견을 자청한 그는 다음 구속자로서 국정원의 방문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기자회견 이후 바로 압수수색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긴장돼서 아침 시간에 잠도 설치고 아이가 놀랄까봐 걱정했죠. 압수수색 되면 동네에 다 소문이 나잖아요. 부담스럽죠. 제 행동으로 인해 가족과 주변 사람들까지 피해를 당할지 모르니까. 이적표현물이 없으니까 안 치우는 게 맞는데 제가 본 책, 처가 본 책 일부를 치웠죠. 왜냐면 우리가 아니라고 해도 저들이 가져가서 증거로 삼을 테니까요. 그리고 ‘국정원이 오면 문을 열어주지 말자, 변호사가 오면 열어주자’ 그러니까 처가 ‘그래도 열어야 하는 거 아니냐, 안 그럼 문을 부순다더라’ 이런 얘기도 했죠.”
긴장감은 1심 판결 이후 더욱 높아졌다. 압수수색을 당하거나 조사받을 수도 있겠다는 현실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는 1심 판결에 대한 실망감을 추스를 새도 없이 또 다른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태라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재판 과정에서 많은 진실이 드러났고 왜곡된 부분도 바뀌어서 알려졌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1심 재판을 통해 여론이 조금은 돌아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2심 재판에서는 좀더 적극적으로 진실을 알려야지요. 판결에 대해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font size="3"><font color="#C21A1A">이토록 억울한 마음이 풀릴까 </font></font>지난해 10월 만난 정용준씨는 그런 말을 했다. 사건이 해결되더라도 억울한 마음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토록 억울한 마음이 풀릴까 하는 겁니다. 구속된 사람들이 풀려나고 사실이 드러나야 하겠지요. 그런데 이 억울한 마음이, 어떻게 하소연할 수 없는 마음이 풀어지지가 않습니다. 이런 사회, 이런 분위기가 바뀌고 극복되지 않으면 개인적인 감정의 회복도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누군가를 간첩으로 만들어 인생을 망쳐도 끄떡없는 사회에서 정용준씨의 삶 역시 녹록하지 않다. 여전히 진행 중인 ‘내란음모’ 사건을 향한 시선이 ‘총’과 ‘폭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 억울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만난 내란음모 사건의 그들은 물론 ‘괴물’이 아니었다. 사건 초기에 뒤덮인 오해와 의도된 국정원 정치 공작의 희생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거짓말쟁이들의 악의에 놀아난 사회의 희생자는 그들만이 아닐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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