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제39대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사를 통해 오세훈식 ‘서울 바로 세우기’를 예고했다. 오 시장은 같은 해 9월13일 연 기자회견에서도 전임 박원순 시장이 재임하던 10년 동안 서울시가 비정상으로 운영됐다고 규정하고 이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이른바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취지로 “단 한 푼의 예산도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그해 11월 부임한 황정일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 대표는 언론 인터뷰와 기고 등을 통해 “서사원이 방만한 운영을 한다”고 주장했다.
황 대표가 주장하는 ‘방만’의 근거는 서사원 노동자의 서비스 제공 시간에 견줘 월급이 높다는 것이다. 서사원 노동자의 안정적 처우가 서사원의 문제라는 의미다. 이에 발맞춰 서울시 감사위원회가 서사원을 대상으로 종합감사를 벌여 성과급 과다 지급 등을 이유로 ‘기관 경고’ 처분을 내린다. 2022년 12월16일 서울시의회는 2023년도 서사원 예산을 68억원으로 결정했다. 이는 서사원이 요청한 예산 210억원에서 약 70%(142억원) 삭감된 것이다.
서사원은 12개 종합재가센터를 4개로 축소했고 국공립어린이집 순차 종료를 예고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의회 의장과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은 서사원을 두고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조직” “민간이 하면 될 일을 공공이 해서 능률을 떨어뜨리고 예산을 낭비한다”, 심지어 “다른 어린이집보다 비싼 급·간식을 먹고 있다” 등의 표현을 쓰며 부정적 여론을 조성했다.
서사원 노동자는 공공돌봄 축소를 막기 위해 파업 등 여러 쟁의행위를 벌이며 고군분투했다. 공공운수노조 서사원지부는 2023년 4월 서울시 시민참여 기본조례에 따른 공청회를 열기 위해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7월, 서명운동 참여자가 5천 명을 돌파하며 시민공청회가 성사됐다. 공청회에서 많은 시민이 공공돌봄을 민간에 팔아넘기려는 오세훈 시정의 무도함을 비판했다. 서사원의 위기는 사회적 돌봄에 대한 백래시(반격)라는 점을 강조하며 공공돌봄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전달했다.
하지만 시의회는 오 시장 임기 내에 서사원 문을 닫을 생각에만 골몰했다. 오 시장의 돌봄 기조는 ‘값싼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쓰면 된다’는 발상에서 드러난다. 이런 정책 행보는 돌봄의 외주화와 시장화인 동시에, 돌봄노동 폄훼와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도 담고 있다.
결국 2024년 2월6일 서울시의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석주 국민의힘 시의원을 포함한 5명의 의원이 공동 발의한 ‘서울특별시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 지원 등에 관한 조례 폐지조례안’이 올라왔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시의회에서 서사원의 임금체계와 노동시간 등의 개편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전문서비스직 임금체계 개선 연구용역’을 외부업체에 줬다. 이 연구용역은 시의회 감사 결과가 ‘옳다’는 대전제 아래 진행됐다. 그 내용 역시 월급제를 폐지하고 민간 기피 영역의 돌봄을 희생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사실상 오세훈 시장과 국민의힘 서울시의원들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서사원 고사 작전이었다.
서사원은 2019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 당시 공공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시의 투자출연기관이다. 장애인·노인·어린이 등 공적 성격이 강한 돌봄서비스를 그동안 민간에 지나치게 의존해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고, 돌봄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대부분의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약 10년 만에 서울시장직에 복귀한 오세훈은 취임 이후 박 전 시장이 추진해온 정책을 대폭 수정하거나 폐기해왔다.
이러한 정치 보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권에 따라 바뀌는 시정 기조는 언제나 상대 진영이 해온 일을 부정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잘 추진되던 사업도 느닷없이 ‘폐지’라는 결괏값을 정해둔 채 지적과 감사 부적격이라는 시나리오에 맞춰 갑작스러운 기관 폐지로 치달았다. 현 시장이 누구냐, 시의원 인원이 어느 쪽이 더 많으냐에 따라 여러 부실한 근거를 정쟁 삼아 공공기관의 존치 여부를 쥐고 흔드는 격이었다.
이러한 보복과 퇴행의 정치가 반복될수록 민주주의에 중대한 위협이 가해진다. “모든 계층이 복지서비스 고루 누리게” “돌봄, 공공이 책임집니다”라는 구호 아래 설립된 서사원은 저출생·초고령 사회라는 흐름에 맞게 설계된 중요한 기관으로, 시민들의 공공돌봄에 대한 염원과 바람을 담은 시대정신의 발로였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장기적 전망과 분명한 설립 목적을 가지고 세워진 기관이 정쟁의 제물이 되어 하루아침에 존립이 위기에 처하는 것은 반목의 역사이자, 민주주의의 중대한 손상이다.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존립이 위기에 처하는 공공기관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해, 지방출자·출연기관 법을 개정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될 수 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이렇다. “경제적 효용성보다 공공성과 공익성을 우선시해야 하는 지방공공기관의 경우 지방공기업법이 지방 공공기관에 대한 통제적 수단이 아닌 육성과 발전을 위한 제도적 기반으로 인식하고 지방공공기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외부 지배구조, 즉 정치권의 영향을 받는 서사원이야말로 진영 논리와 분리해 독립적으로 육성해야 할 대표적 공공기관이다. 서사원처럼 돌봄을 수행해야 하는 기관일수록, 공공성에 기반을 둔 운영·설계가 담보돼야 하며 시민과 노동자의 목소리가 경영에 반영될 수 있게 민주적으로 운영돼야 하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법개정도 정치가 할 일이다. 정치가 저질러놓은 퇴행 또한 정치로 해결해야 한다. 서사원은 정치의 전리품이 돼선 안 된다. 정치 거간꾼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정권은 바뀌어도 돌봄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결코 잊으면 안 된다.
여미애 <레디앙> 기자·서울시사회서비스원 공공돌봄 사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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