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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 군·경·소방관처럼 일한 돌봄노동자

【연속기고―돌봄노동과 서울시사회서비스원 ④ 돌봄과 정치】 돌봄 담당하는 구성원이 취약해지지 않도록 할 사회의 의무…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을 국민 돌봄의 파수꾼으로
등록 2023-12-01 08:48 수정 2023-12-03 13:51
방호복 입은 돌봄노동자가 코로나19에 확진된 장애인을 돌보고 있다. 국가는 코로나19 돌봄 공백기에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공헌을 기억해야 한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 노동조합 제공

방호복 입은 돌봄노동자가 코로나19에 확진된 장애인을 돌보고 있다. 국가는 코로나19 돌봄 공백기에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공헌을 기억해야 한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 노동조합 제공

2019년 공적 체계 내로 돌봄서비스를 받아안은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2022년 말 서울시의회가 서사원이 제출한 예산을 142억원 삭감하면서, 서사원은 돌봄서비스의 민간 위탁관리로의 전환과 돌봄노동자 신규 채용 중지 등의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서사원 문제에서 드러난 돌봄노동의 쟁점을 같이 생각해보는 기고를 연속해서 받습니다. _편집자 주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 난파 위기를 맞고 있다. 운영 방향이 뒤집히고 예산이 삭감됐다. 2023년 9월 발표한 보건복지부의 ‘시·도 사회서비스원 표준운영지침 II’에서 “민간 협업 활성화와 민간 사회서비스 지원 기능을 확대” 문구가 들어가고 “사회서비스 공공성 향상을 위해 사회서비스 제공 기관을 운영하고 서비스 종사자를 직접 고용해 서비스를 제공함”의 문구가 사라졌다. 사회서비스 종사자 월급제와 정년 규정도 삭제됐다. 더욱이 2024년 예산안도 민간 중심의 ‘사회서비스 고도화’를 명분으로 사회서비스원 지원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사회서비스의 공적 체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기반을 다져오던 서사원의 역할을 더는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유급 돌봄 영역에서도 취약해지는 돌봄 제공자

아이돌봄, 노인돌봄, 장애인지원 등을 포함하는, ‘사회서비스’라 부르는 돌봄은 가치와 실천의 측면에서 인간 삶의 중심이자 지향점이다. 존재론적으로 우리는 태어나 성장할 때, 아프거나 장애가 있을 때, 그리고 나이 들어 거동이 어려울 때 누군가의 돌봄에 힘입을 수밖에 없다. 윤리적으로 돌봄은 취약한 돌봄 대상자의 필요에 대응함으로써 대상자를 인격체로 만드는 가치다. 돌봄은 누군가는 몸으로 해야 하는 부담이자 실천이며 책임이다. 내가 취약할 때 나를 긍정해준 돌봄으로 타인을 긍정하게 됐음을 고려한다면, 사회적 신뢰와 정치적 협력까지도 우리가 주고받은 크고 작은 돌봄과 애정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돌봄은 인간과 사회 나아가 정치 구성원이 존립하고 협력하는 것의 씨알이자 모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은 취약해진다. 사적 무급 돌봄 영역뿐만 아니라 유급 돌봄 영역에서도 취약해진다. 사적 돌봄 관계에서 돌봄 제공자는 돌봄 대상자의 필요를 우선하기 때문에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양보하게 된다. 돌봄 제공자는 정작 돌봄에 필요한 사회경제적 자원을 본인이 조달할 수 없기에 취약한 상태가 된다. 유급 돌봄 영역에서도 돌봄 종사자는 취약한 상태를 면하지 못한다.

돌봄 종사자의 임금수준은 제조·서비스직, 전문 돌봄 및 사회복지 종사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돌봄노동의 임금은 민간 중심 공급 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경력과 숙련도를 반영하는 대신 최저임금을 기반으로 책정된다. 돌봄은 사회적으로 저평가되고 이런 구조적 제약에 취약한 돌봄 종사자는 저임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정에서 한 계단, 사회에서 한 계단, 경제적으로 또 한 계단, 그 제도적 지원을 모색하는 정치적 교섭에서도 또 한 계단 하락해, 돌봄 제공자의 시민적 위상은 반지하까지 하락한다.

지체장애인, 단시간·다회 방문서비스 가능해져

여기서 돌봄 제공자를 수호해야 하는 국가적 책임이 생긴다. 돌봄 제공자가 우리 자신과 사회, 나아가 정치 구성체의 존립과 구성력의 모태가 되는 돌봄을 맡더라도 다른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취약해지지 않도록 정치사회는 이들을 보호해야 할 공적 의무가 있다. 이러한 돌봄의 사회적 책임 관점에서 보면, 서사원은 돌봄 제공자를 수호하는 공적 의무의 파수꾼이다.

서사원은 2019년 돌봄 종사자를 보호해 공적 돌봄의 질을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민간이 규율되는 돌봄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혁신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그 핵심은 ‘직접고용을 통한 월급제 정규직’이었다. 서사원은 비정규직 시간제 불안정 일자리 일색이었던 돌봄을 8시간(일), 5일(주), 40시간(주)의 정규직 전일제 표준 노동시간으로 책정했다. 장기요양보험 수가 체계에서는 급여로 인정받지 못했던 교육/행정시간과 이동시간을 서울시 차원에서 인정하고 비용을 지원했다. 월급제에서는 민간이 제공하기 어려운 서비스도 가능해졌다. 예컨대 최중증 와상 장애인의 경우 일대일을 초과하는 서비스가 어려웠지만, 월급제에서는 두 명의 지원사가 팀으로 안정적으로 돌볼 수 있었다. 또한 지체장애인 아들과 사는 경증치매 어르신 식사 지원 같은 ‘단시간 다회 방문서비스’가 가능해지면서 공적 돌봄 폭을 넓혔다.

더불어 국가와 국민은 코로나19 돌봄 공백기에 서사원의 공훈을 기억해야 한다. 발달장애인 20대 아들을 홀로 돌보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50대 한부모가 아들을 격리시설에 두고 입원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서, 서사원 직원 두세 명이 아들과 격리시설에 함께 입소해 2주간 아들을 돌보는 일도 있었다.

이런 긴급돌봄 사례는 전국적으로 수백 건에 이른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감염의 두려움 앞에서 방호복 끈을 조이며 전국을 돌고 밀접 신체 수발을 해온 종사자들의 비장함과 그 사투를 국가와 국민은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돌보던 그들의 모습은 국민 보호의 최전선에서 헌신하는 군·경·소방공무원에 손색없는 든든한 시민 수호자의 모습이었음을, 그리고 그들 뒤에서 그들을 보호하는 책임을 마다하지 않은 서사원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공적 위상 짧은 기간에 충분히 입증

국민을 돌보는 서사원의 공적 위상은 짧은 기간에도 충분히 입증됐다고 할 수 있다. 서사원은 돌봄 종사자를 시민의 수호자로 격상시키는 일에 민간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이정표를 새기며 항해 중이었다. 새 시대가 요구하는 돌봄 있는 국가로의 전환을 민간과 시장에 맡길 수 없는 노릇이다. 흔들리는 서사원의 본분을 복원해 ‘국민 돌봄의 파수꾼’으로 키워야 한다.

나상원 정치학 박사·<돌봄 민주주의>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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