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가구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이주가사노동자를 활용해 가사·돌봄 서비스를 싸게 해야 한다.’ 마치 이용자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사실상 ‘가사·돌봄을 시장에서 구매하라’는 의미로 돌봄의 책임을 개별 가구 중심으로 돌리려는 포석이다. 전세계적으로 돌봄에 대한 공공의 책임이 강조되는 가운데 거꾸로 가는 행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홍콩과 싱가포르를 사례로 들며 이주가사노동자 도입을 주장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인구 대비 이주가사노동자 규모가 크지만, 이들의 노동조건과 처우는 대표적으로 열악한 곳이다. 노동조건과 처우가 국제기준 위반으로, 여러 국제기구가 지속적으로 비판과 개선 권고를 하고 있다.
홍콩의 일요일, 낯익은 풍경 하나. 공원이나 건물 사이 고가 통로에 여기저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춤을 추고 음식을 나눠 먹는 사람들이 있다. 이 모습은 홍콩에서 일하는 이주가사노동자가 처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주가사노동자는 일주일에 하루밖에 쉬는 날이 없다. 이들은 고용주 집에 살도록 돼 있는데, ‘자기만의 방’이 없는 가사노동자는 쉬는 날에도 집에 쉴 곳이 없다. 그 집은 가사노동자에게 일터다. 현지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으로는 홍콩의 높은 물가를 고려할 때 이들이 갈 곳이 별로 없다.
홍콩과 싱가포르 사례를 모델로 이주가사노동자 도입을 외치는 것은 이들처럼 이주노동자를 싼값에 쓰고 싶기 때문이다. 서울시 이주가사노동자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 초청된 발표자는 노골적으로 많은 가구가 이용할 수 있게 이주가사노동자를 싸게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나서서 차별을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이주가사노동자를 우리와 동등하게 대우할 필요가 없는 노동자, 낮은 임금을 줘도 되는 존재로 규정하려는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주가사노동자 도입을 둘러싼 주장을 듣고 있으면 우렁각시가 떠오른다. 홀연 나타나 집안일을 다 해주고 조용히 사라지는 존재. 노동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그저 물만 주면 감사해하는 존재, 우렁각시. 가사·돌봄 노동은 타자화된 존재의 몫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공론의 장에서 비판 없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설화에서는 ‘우렁이+여성’이었지만, 지금 사회에서는 이주민 여성을 나와 동등하게 대우할 필요가 없는 존재, 차별해도 되는 타자로 삼으려는 것이다.
최소 두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이런 주장이 마치 돌봄에 어려움이 있는 가구를 돕는 말처럼 포장됐지만 그 기저에는 가사·돌봄 노동 가치의 불인정과 차별 강화, 동시에 공공성 회피라는 속내가 깔려 있다.
고용노동부가 시범사업에서 이주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했다 하더라도, 노동부 역시 가사·돌봄 노동의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를 서슴지 않았다. 가사·돌봄 서비스 요금이 비싸서 이주가사노동자 활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간시장에서 가사·돌봄 서비스 이용 요금은 시간당 최대 1만5천원 정도다. 이 금액이 모두 가사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돌봄노동자 실태를 조사한 한 연구에 따르면, ‘가사 및 육아 도우미’로 분류되는 가사노동자는 2020년 기준으로 시간당 8700원 정도의 임금을 받았다.(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돌봄노동 저평가 개선방안 연구’) 2020년도 최저임금이 8590원이었음을 고려하면 가사노동자는 평균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서비스 이용료가 부담스럽다고 노동자가 하는 일에 대한 보상을 멋대로 깎아내릴 수는 없다. 보수는 일의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고 노동자가 누려야 할 기본 권리를 준수하는 기준 안에서 책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시간당 최저임금 정도밖에 받지 못하는데도 가사 서비스 이용료가 ‘비싸다’고 하는 선동은 가사·돌봄 노동 가치의 불인정과 가사·돌봄 노동자의 일에 대한 평가절하를 수반한다.
가사·돌봄 노동은 오랫동안 가구 내 여성 구성원이 무급으로 수행해온 일, 별것 아닌 일로 여겨졌다. 계속해서 그 노동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노동조건 개선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끊임없이 가치를 깎아내리며 이 일을 수행할 타자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이는 케케묵은 성차별 인식의 발로일 뿐이다.
현재 가사노동자가 최저임금을 받는 상황에서 서비스 이용료가 비싸다면 부담의 원인은 노동자의 임금이 아니다. 시장에서 민간 서비스 제공 업체는 운영 비용이 들고 또한 이윤을 추구한다. 이용자에게는 부담스러운 요금이지만, 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보수가 지급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서비스가 누구나 필요한 보편적 성격이 있다면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는 국가들이 있다. 벨기에가 대표적이다. ‘서비스 바우처 제도’로 가사노동자에게 적절한 임금을 보장하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용자의 부담을 줄이도록 정부가 지원한다.
국제노동기구(ILO) 회원국이 모여 개최하는 국제노동콘퍼런스(ILC)의 2024년 논의 의제 중 하나는 양질의 일자리와 돌봄경제(Care Economy)다. 국제노동기구는 ‘돌봄의 책임이 있는 노동자’를 보호하고 일·가정 균형을 지원하기 위한 각국의 법·제도적 여건을 검토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공공에서 제공하는 돌봄서비스(보육, 장기요양 등)뿐만 아니라 돌봄 관련 노동시장 정책(출산휴가, 배우자휴가, 육아휴직, 기타 돌봄 관련 휴가와 노동시간 정책)을 살펴보고 있다. 돌봄 필요를 충족하려면 가정 밖에서 공공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가구 구성원이 일하면서도 돌볼 시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잘사는 나라 가운데 공공 돌봄 서비스가 부족하고 일·가정 균형을 위한 노동시장 정책이 미흡한 대표적인 곳이다. 가구 대비 이주가사노동자 비율이 매우 높고, 공공 돌봄 제도와 정책이 미흡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이주가사노동자를 들여 개별 가정이 돌봄을 시장에서 구매하도록 했지만, 공공서비스와 일·가정 균형을 위한 노동시장 정책 마련은 소홀히 했다. 그렇다면 홍콩 사람들은 개별 가정에서 가사노동자를 고용해 돌봄을 받는 것을 더 선호할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국제가사노동자연맹(IDWF) 내부 조사에 따르면 홍콩에서 공공 노인 요양시설을 이용하려면 40개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또한 공공 보육 서비스가 심각하게 부족하다. 게다가 홍콩은 표준노동시간 기준이 없고 출산휴가 외에 육아휴직이나 돌봄 관련 휴가, 유연노동시간 제도 등이 없다. 즉, 공공 돌봄 서비스가 부족하고 일·가정 균형 제도가 미흡한 구조에서 가구는 개별적으로 시장에서 돌봄 서비스를 구매하고 이주가사노동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일터에서 쓸 수 있는 돌봄 관련 시간과 보육 서비스가 제공되는 시간 사이에 격차가 존재하면 이 기간의 돌봄 필요는 가사노동자에게 의존하거나 무급 돌봄 노동으로 충당하게 된다. 이에 국제노동기구는 증가하는 돌봄 필요와 돌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진취적이고 지속 가능한 투자를 강조하며, 2030년까지 총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4%를 돌봄 정책에 투자할 것을 권고한다. 특히 공공 돌봄 서비스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정부는 이주가사노동자를 희생양 삼으며 가사·돌봄 노동을 시장에서 구매하도록 하려 한다. 동시에 공공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온 서울시사회서비스원 같은 기관의 예산을 삭감하고 기능을 축소하고 있다. 이런 기조는 돌봄의 공공성 약화와 시장화 촉진으로 귀결된다.
한국의 장기요양서비스와 아이돌봄은 보편적 서비스 성격을 띠지만, 민간기관 운영의 한계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요양보호사는 시간 단위로 일하고 언제 일과 수입이 끊길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황에 있으며, 그들의 노동조건은 돌봄 이용자의 사정을 충분히 반영해줄 조건이 되지도 못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 돌봄 제공자와 이용자의 이해가 상충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윤과 비용효율성을 따지는 민간 영리기관이 다양한 돌봄 필요를 채우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의 돌봄 필요는 시간·방법·형태 등에서 규격화하기 어렵고, 돌봄 제공자 역시 임금노동 외에 가족 책임 등으로 일·가정 균형이 필요한 존재다. 이윤을 중심에 두고는 돌봄 제공자와 돌봄 받는 사람의 사정을 고려하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사회서비스원은 민간기관 서비스 제공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돌봄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해 이용자에게 필요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해왔다. 그런데 최근 사회서비스원의 공공 돌봄 시도를 비용효율성 기준으로 민간과 비교해 무력화하고 있다. 이는 돌봄의 공공성 구축을 와해하고 돌봄노동의 사회적 인정을 후퇴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상황에서 이주가사노동자 도입은 이주가사노동자를 포함한 전반적인 가사·돌봄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돌봄의 공공성을 악화하고, 개별 가구의 돌봄 부담을 늘릴 수 있다. 공공 돌봄을 약화하고 시장 중심 돌봄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가면, 구매력 있는 가구는 시장에서 돌봄 필요를 충족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가구에서 돌봄 위기는 증가할 것이다. 공공 돌봄 체계 강화와 가사·돌봄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전제로 양질의 돌봄 제공과 돌봄 인력 확보가 우선되고, 그 틀에서 필요하다면 이주 가사·돌봄 노동자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
최혜영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연구원·전 국제가사노동자연맹 아시아지역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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