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보면 떠오르는 문구다. 애초 선한 의도가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의미지만, 의도 자체도 선한 것 같지 않다. 특히 사회서비스가 그렇다. 이미 실패한 것으로 입증된 낡고 위험한 ‘시장화’ 정책을 소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3년 5월 ‘사회서비스 고도화 추진 방향’을 발표하고, 12월에 3대 분야 9대 추진 과제를 담은 ‘제1차 사회서비스 기본계획’(2024~2028)을 제시했다. “국민 누구나 필요할 때 누리는 질 높은 사회서비스”로 포장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가 밝혔듯 사회서비스 고도화는 곧 시장화, 산업화를 의미한다. 이미 사회서비스원을 축소하면서 민간시장을 활성화하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사회서비스원은 민간 중심 돌봄 구조의 폐해 속에 대안으로 등장했다. 정부 주도로 지방자치단체가 설립 주체가 되어 돌봄서비스를 직접 운영하고, 돌봄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최초의 시도다. 154개국 3천만 명의 조합원을 대표하는 국제공공부문노동조합연맹(PSI)은 국가의 돌봄 책임을 강화하는 한국의 사회서비스원을 모범 사례로 삼아 보고서를 내고 국제 웨비나(화상토론회)를 열 정도로 국제 노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비록 경북에선 끝내 설립되지 못했지만, 2019년 4개 지역을 시작으로 2023년까지 단계적으로 전국 16개 광역시도에 사회서비스원이 설립됐다. 민간 사업자와 보수 진영의 반발이 강력했고, 근거법조차 상당한 내용상 후퇴를 감내하고서야 2021년 9월 어렵게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과 ‘고군분투’ 끝에 설립된 사회서비스원은 코로나19 위기의 한가운데서 돌봄 공백이 발생한 아동, 장애인, 어르신에게 긴급돌봄을 제공하며 존재감을 알려나갔다. 사회서비스원 노동자 역시 88.1%가 사회서비스원이 지역사회 돌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사회공공연구원, 2022).
어려운 조건에서 전국적으로 사회서비스원이 설립될 수 있었던 배경엔 중앙정부의 역할과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근거 법률안이 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하며, 명칭 통일부터 시작해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할 목적과 주요 사업 내용 등을 표준 지침에 따라 운영하도록 했다. 초기 설립비는 개소당 100% 국비가 지원됐고, 사업운영비는 50% 매칭 방식으로 지원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급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표적이 된 것은 모범 사례로 평가받아온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이다. 서사원은 월급제 고용과 팀제 운영, 그리고 종합재가센터와 국공립 어린이집 운영 등 서비스 공급자로서의 설립 취지와 목표를 충실히 구현해나갔다. 하지만 노사가 합의해 체결한 단체협약을 해지해 무력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2023년 210억원 예산에서 서울시가 42억원, 서울시의회가 100억원을 삭감했을 뿐 아니라, 12개였던 종합재가센터를 2023년 9월부터 4+1(장애인)개까지 축소했다. 데이케어센터 2곳과 6개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 6곳 역시 위탁 해지까지 대책 없이 추진하고 있다. 2024년 2월6일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시의원들은 서사원을 아예 폐지하는 조례까지 발의했다.
서사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구조개혁과 재무건전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며 사업과 예산 축소, 기관 통합 등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의 지방 공공기관 혁신 계획은 ‘사회서비스 분야의 민관협력에 기반한 사회서비스 고도화’와 맞물리면서, 사회서비스원 축소라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관 통폐합으로 대구와 울산은 ‘복지가족진흥사회서비스원’으로, 충남은 ‘여성가족청소년사회서비스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바뀐 것은 이름만이 아니다. 사회서비스원의 핵심 역할이 서비스 공급자에서 민간 지원자로 바뀌고 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국공립 어린이집은 1477개가 새로 생겼지만, 정작 사회서비스원에 속한 어린이집은 40곳에 불과하다. 2019년 보건복지부는 “사회서비스원은 새로 설치되는 국공립 시설을 우선 위탁받으며, 특히 서비스 수요가 많은 신규 국공립 어린이집, 공립 요양시설은 필수적으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에 우선 위탁 규정이 반영되지 않으면서 새로 국공립 어린이집이 생겨도 대부분 민간위탁으로 운영된다.
2022년까지 종합재가센터를 135개 확충하겠다는 초기 계획 역시 여전히 29개에 머물러 있다. 2023년 사회서비스원을 신규 설립한 충북과 부산은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종합적인 재가서비스 제공을 위한 사업’(제10조 4)을 아예 정관에서 빼버렸다. 지자체가 종합재가센터 확대를 주저하는 이유는 시장을 침해한다는 민간 사업자의 반발도 영향을 미쳤지만, 중앙정부의 지원 예산이 없어진 탓이 크다. 이 와중에도 시도 사회서비스원을 지원해야 할 중앙사회서비스원은 민간의 참여 활성화에만 집중하고 있다. 사회서비스 기업과 투자사와 협약을 체결하고, 투자 네트워크 구축과 유치 역량을 높이기 위한 지원사업도 벌이고 있다.
사회서비스원이 존립 위기를 맞는 동안 민간자본의 ‘요양서비스산업’ 진출은 더욱 가속되고 있다. KB라이프생명에 이어, 생명보험업계 자산규모 4위인 신한라이프도 요양전문 자회사를 설립해 2025년 요양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DB손해보험, NH농협생명 등도 요양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5년 동안 개인이 운영하는 장기요양기관은 1만6375개소에서 2만3184개로 늘어났다. 여전히 영세한 소규모 개인사업자의 난립이 문제지만, 앞으로는 대규모 금융자본의 지배력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중개수수료 중심으로 요양보호사를 매칭하는 요양 스타트업 플랫폼 기업들은 방문요양 인프라로 진출하며 대면서비스를 시작하고 있다. 다수의 생명·손해보험사가 요양서비스 사업에 진출한 일본과 같이, 한국의 민간 보험사들도 보험상품과 요양서비스를 연계하는 상품 개발과 함께 끊임없이 규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10명 이상 노인요양시설의 임대운영 허용을 만지작거리는 이유도 민간자본의 투자와 운영 부담을 완화하면서, 사모펀드 같은 대규모 금융자본의 진입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의료법상 수익을 외부로 유출할 수 없는 병원과 달리, 요양기관은 외부 투자자에게 배당금 등을 지급할 수 있다. 그만큼 금융자본의 탐욕에 노출돼 있다. 잘 알려진 영국의 ‘서던크로스 헬스케어’ 파산 사태뿐 아니라, 프랑스 다국적 요양기업인 오르피아와 미국 사모펀드 운영회사의 사례는 민간투자자의 배당 극대화와 부동산 임대 전략이 결국 요양노동자를 착취하고,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노인을 방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한국의 소유구조 형태별 노인요양시설의 운영 사례를 분석한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이희승 외, 2023), 금융자본이 운영하는 한 노인요양시설의 경우, 전체 지출 가운데 21%를 전출금 형태로 모회사나 투자자가 가져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돌봄은 여성에게만 전가했던 가부장적 잔재에 시장화 정책이 더해지면서, 열악한 노동과 낮은 서비스라는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적 의미와 가치에 대한 재평가는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노동자와 이용자를 갈라치기하는 것이 아닌 모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시장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다. 많은 정치적 난관과 제도적 한계, 재정적 어려움에도, 사회서비스원은 돌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여전히 소중한 전략적 거점이다.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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