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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님, 요양보호사는 월급 받으면 안 되나요?

[돌봄노동과 서울시사회서비스원 ① 여성노동과 월급제] 요양보호사 김춘심씨…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원장 바뀌자 특혜 받는다고 공격당하고 계약 만료돼
등록 2023-11-03 09:10 수정 2023-11-14 05:27
2023년 5월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요양보호사가 와상 환자를 돌보고 있다. 한겨레 박다해 기자

2023년 5월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요양보호사가 와상 환자를 돌보고 있다. 한겨레 박다해 기자

2019년 공적체계 내로 돌봄서비스를 받아안은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2022년 말 서울시의회가 서사원이 제출한 예산을 142억원 삭감하면서, 서사원은 돌봄서비스의 민간 위탁 관리로의 전환과 돌봄노동자 신규 채용 중지 등의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서사원 문제에서 드러난 돌봄노동 쟁점을 같이 생각해보는 기고를 연속해서 받습니다._편집자주

“월급 받으며 일하게 됐어요. 잘하면 정규직도 될 수 있대요!”

4년 전 요양보호사 김춘심님은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 시험에 합격했다며 매생이전을 부쳐왔다. 우리는 다른 몸들의 돌봄노동자 생애사 쓰기 소모임의 글쓰기 수업 중이었고, 잔칫집 분위기를 냈다.

당시 60살을 목전에 둔 그에게 ‘블라인드 채용’이란 단어도 낯설었고,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도 어려웠다. 하지만 서사원에 입사한다면 열심히 일해도 수입이 들쭉날쭉한 시급제 노동자가 아니라 ‘월급제 노동자’로 살 수 있다고 했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이 없고, 다음달 생활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다들 요양보호사에게 서사원은 ‘로또’라고 했다. 평생 고생한 삶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그날이 ‘로또’에 당첨된 날이었다.

정중하게 문제 제기해도 “똥기저귀나 치우세요”

그의 삶을 보면 한국 중고령 여성노동자의 현실이 보인다. 1962년생인 김춘심님은 전남 무안에서 자랐다. 소를 타고 놀고 개울에서 멱을 감으며 자랐고,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가난한 집 딸의 손에는 일찍부터 연필 대신 호미와 솥뚜껑이 쥐어졌다. 서울에 가면 공장에 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다는 말에, 10대 중반 서울로 왔다. 하루에 10시간, 12시간씩 일하는 게 힘들었고 월급봉투는 얇았지만, 주말마다 야학에서 굶주린 공부를 하며 허기를 채웠다. 정규 학교 졸업장은 아니지만 졸업장이 생겼고, 결혼도 했다. 아이를 둘 낳고 조금씩 생활에 안정을 찾아가던 30대 후반, ‘아이엠에프(IMF)가 터졌다’. 냉장고에는 ‘훼미리주스’병에 담긴 보리차만 두 병 있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며 울었다.

식당 찬모, 우유 배달, 학습지 영업사원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평생 열심히 일했지만 가난은 한 번도 그의 삶을 놓아주지 않았다. 게다가 50대가 되자 정식 학교 졸업장이나 기술도 없이 마땅한 일자리를 찾는 게 더 어려워졌다. 국가자격증이라는 말에 요양보호사를 취득했다. 그러나 일터에서는 부당한 일이 끊이지 않았다. 요양보호사 사이에서 괴담 같은 이야기가 일상적으로 돌았다. 이용자 집에 갔더니 속옷도 입지 않은 채 서서 요양보호사를 맞이하는 70대 남성 노인도 있고, 50평 집을 손걸레 하나만으로 모조리 닦으라고 시키거나, 도둑 망상이 있는 인지증(치매) 노인에게 맞는 일도 있었다.

2023년 3월8일 여성의날 집회에서 김춘심씨. 조한진희 제공

2023년 3월8일 여성의날 집회에서 김춘심씨. 조한진희 제공

요양보호사는 명백히 성별화된 직종이고, 낮은 직업 위계는 성차별과 성희롱에 더 쉽게 노출되게 한다. 전체 요양보호사의 약 94%가 여성이고, 주요 노동자층은 50~60대이며, 재가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84.1%에 이른다.1

집이라는 폐쇄적인 노동현장의 특성상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고, 업무 범위가 불분명해서 다양한 갈등을 겪기도 한다. 그런데 불안정한 고용환경과 생사여탈을 이용자가 쥔 상황에서는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기 쉽지 않다. 정중하게 문제를 제기해도 “조용히 똥기저귀나 치우세요”라는 싸늘한 보호자의 답변이 돌아오거나, 혹여 내일부터 오지 말라고 하면 그대로 해고자가 되어 다음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5시간 돌봄노동 했다면 나머지 3시간은?

그러니 민간센터와 달리 직접고용이 돼서 월급제로 운영되는 서사원 입사가 요양보호사에게 ‘로또’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김춘심님은 서사원에 입사해서 가장 좋았던 게 당당함이라고 했다. “일하면서 내가 당당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 이분이 나를 잘라도 내가 일 못하게 되거나, 월급 없어지는 게 아니니까. 이제는 함부로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되고 비굴할 필요가 없어요.”

부당한 노동을 요구할 때 명확하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이용자가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해도 다른 이용자를 매칭(연결)받을 수 있다. 당장 다른 이용자와 연결되지 않아도 병가나 휴가에 들어간 동료의 대체인력으로서 일하기도 한다. 당연히 월급은 보존된다. 또한 이용자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허리를 다쳤을 때, 병가를 내고 병원에 마음 편히 갈 수 있다. 대체인력이 파견되니 이용자 눈치를 덜 보며 병가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병가로 일하지 못해도 민간에서 시급제로 일할 때와 달리 월급은 보존된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서사원 쪽과 노동자의 입장이 갈린다. 서울시장이 바뀌면서 새로 온 서사원 황정일 전 대표는 서사원 노동자가 너무 많은 월급을 받고, 병가를 자주 쓰며, 서사원 노동자만 특혜를 받는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구체적으로는 “노원센터 활동지원사 총 21명이 1일 근무 8시간 중 실제 직접서비스를 제공한 시간은 1일 평균 5시간”이라며 “서사원 돌봄근로자 59.2%는 하루 평균 3.83시간 이하의 서비스를 제공하고도 월평균 급여로 223만원을 받아간다. 이는 민간에 비해 2~3배에 달하는 임금”이라고 지적했다.2

돌봄노동자가 5시간만 돌봄노동을 제공했다면 나머지 3시간은 무엇을 했을까? 이용자의 성희롱이나 부당 노동 요구를 사무실에 보고하고 그 대응 방식에 대해 회의나 면담을 진행한다. 이용자가 1급 와상 노인이라 담당 요양보호사가 몸을 이동시키다가 자주 어깨나 손목을 다쳐서 병가를 낼 때, 대체인력으로 들어갈 다른 요양보호사에게 해당 이용자의 특성과 업무 유의 사항을 전달해준다. 그 이외에도 이용자의 몸을 이동시킬 때 이용자와 요양보호사 양쪽 다 더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근골격계 예방 안전 내용을 영상으로 교육받는다. 그리고 긴급 돌봄이 발생했을 때 지원을 나가기 위해, 대기 상태를 유지 해야 할 때도 있다. 이 모든 게 직접 돌봄을 수행하지 않은 3시간에 포함되어 있다.

2023년 4월24일 전면 파업에 나선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공공운수노조 제공

2023년 4월24일 전면 파업에 나선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공공운수노조 제공

소방관이 호스를 들고 불을 끄는 시간만 노동시간인 것이 아니라, 지역의 위험 환경을 점검하고, 어린이를 안전하게 구조하는 방법을 교육받는 시간도 노동시간이다. 경찰이 도둑을 잡으러 뛰어가는 시간만 노동시간인 게 아니라, 잠복하는 시간도 노동시간이다. 돌봄노동자도 그렇다. 민간센터에서는 이용자의 성희롱이나 부적절한 요구에 대한 대응을 개인 혼자 감내하거나 알아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요양보호사는 저임금에 노동환경도 열악하다보니, 근속 기간이 짧아서 10년 이상은 14.5%에 불과하고, 6개월 이상 3년 미만인 경우가 47.3%나 된다.3

2023년 서울시 예산 142억원 삭감돼

돌봄노동 대란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돌봄노동자의 안정적 공급과 숙련도를 위해 노동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는 게 학계와 시민사회의 오랜 목소리였다. 그래서 다양한 현장의 고충을 수면화해 공적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을 하나씩 구축하는 게 서사원이다.

게다가 서사원은 민간에서 서비스 제공을 꺼리는 중증 이용자가 많아 노동강도가 세고, 위험 노출도가 높다. 돌봄노동자의 잦은 병가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간 민간에서 병가가 적었던 것은 병가를 내면 해고로 이어지거나 소득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돌봄노동자가 억지로 참고 일하다가 결국 요양보호사를 그만두는 일이 많았다.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서울시가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진행 중인데, 황정일 전 대표는 병가를 내는 것 자체를 문제 삼았으니 모든 게 역행이다. 서사원 노조는 황 전 대표가 노동자를 ‘월급도둑’ 취급한다며 1년 넘게 싸워왔다.

그러나 싸움이 무색하게 서사원이 방만하게 운영된다며 2023년 서울시 예산이 142억원 삭감됐다. 그리고 김춘심님은 2023년 6월 계약만료 통보를 받았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돌봄노동자들이 계약만료를 통보받았고, 현재도 계속 받는 중이다.

돌봄노동에 정당한 임금 지급한 역사가 없다

그러나 돌봄노동자의 안정적 고용과 월급제는 고된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정당한 대우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게 대단한 특혜라도 되는냥 문제시하는 서사원 쪽의 행보는 분명 문제지만, 그들만 문제인 게 아니다. 알다시피 요양보호사는 중고령 여성들의 ‘반찬값 버는 노동’이라는 폄하 속에 놓여 있었다. 우리 사회는 단 한 번도 돌봄노동을 제대로 평가하고 정당한 임금을 지급한 역사가 없다.

돌봄 사회화의 상징인 장기요양보험제도가 한국 사회에 도입된 게 2008년이었으나, 2019년에야 사회서비스원이라는 공적 체계가 만들어지고, 비로소 돌봄노동자를 직접고용했으며, 여느 노동자처럼 월급제를 도입했다. 비로소 잃어버렸던 노동자의 권리를 하나씩 되찾는 중이다. 그간의 장기요양보험제도와 돌봄이 이만큼이라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빈곤층 중고령 여성들에게 정당한 임금과 안전한 노동환경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노동을 ‘도둑질’하며 ‘돌봄 문제’를 메워온 것이다. 그래서 중고령 요양보호사들이 월급제로 정당한 임금과 노동환경을 받는 게 ‘로또’인 시대가 돼버렸다.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돌봄이 돌보는 세계> 공저자

참고 문헌

1, 3. ‘요양보호사 근로환경 변화 탐색 연구’,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2021년

2. ‘특집 인터뷰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황정일 대표이사’, <이뉴스투데이> 2022년 10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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