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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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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1천원 돌려주세요

문화재를 보려고 간 것도 아닌데 절에 내는 관람료, 10년이나 더 전에 관람료 돌려주라는 판결이 났건만
등록 2014-03-15 16:47 수정 2020-05-03 04:27

문화재를 보려고 산에 간 것이 아닌데 왜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하나.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가 지난해 가을 가족과 지리산에 간 이야기를 하며 투덜댄다.

극락 가긴 다 틀렸군

“아니, 왜 천은사 쪽에서 올라가면 문화재를 보지도 않는데 관람료를 받느냔 말이야. 우린 지리산에 가려는 거지 문화재를 보려고 간 것이 아닌데.”
과거에 많이 듣던 이야기였다. “아직도 받냐?”
까칠한 성격의 친구여서 그냥 넘어갈 리 없을 것 같았는데 역시나 한바탕 붙었단다.
“4명이면 돈도 꽤 돼서 따졌는데 법원에서 합법으로 판결 난 거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냈다.”
“어? 법원에서는 문화재 관람료를 돌려주라고 판결했는데… 대법원까지 갔고.”
“진짜냐?”
“그 사건은 잘 알지. 내가 진행했던 사건이니까.”
기록을 찾아보았다. 대법원에서 천은사에 문화재 관람료를 돌려주라고 최종 선고한 날은 2002년 8월13일, 벌써 10년이 넘었다.
문화재 관람료 문제는 오래된 분쟁거리였다. 우리나라의 주요 명산에는 대형 사찰이 많고, 이들 대부분은 오랜 역사를 지닌 관계로 그 산의 상당한 면적을 소유하고 더불어 많은 불교 문화재도 보유하고 있어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지리산 천은사는 지방도로로 차를 타고 가다 도로 중간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했다. 천은사 경내 모습.

지리산 천은사는 지방도로로 차를 타고 가다 도로 중간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했다. 천은사 경내 모습.

내가 활동했던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에도 이에 대한 민원이 많이 들어와 2000년 3월7일 참여연대 강당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보통 시민단체에서 진행하는 토론회는 독립영화관 조조 시간대 흥행률을 기록하는데, 그때는 방청객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대부분 스님들. 발제를 하면서 이상스레 적막이 흘러 전부 돌아가셨나 싶어 도중에 고개를 들다가 나를 지긋이 주시하는 수많은 스님들의 눈동자와 부딪혔다. 극락 가긴 다 틀렸군. 사찰은 고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산중에 위치하다보니 유지·관리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찰 쪽 토론자의 여러 말씀은 경청할 만했지만, 내부 토의 뒤 우리나라 대표 명산인 설악산과 지리산을 대상으로 소송하기로 했다. KBS 에서는 그렇잖아도 이 문제를 지적하는 시청자가 많았다면서 방송도 하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내가 맡은 지리산 천은사 사건은 문화재 관람료 1천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이었다. 소장을 제출하러 간 직원이 법원 접수처 공무원이 소송 금액이 1천원뿐이어서 인지대를 얼마 받아야 할지 애매하다고 해서 그냥 넉넉하게(?) 100원을 냈다고 했다.

‘행정법상 공물’, 해결책이 나타나다

지리산 천은사의 경우 구례읍과 남원시로 가는 861번 지방도로로 차를 타고 가면 도로 중간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하는데, 도로에서 천은사까지는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차에 탄 사람들로서는 천은사 쪽으로 일부러 가지 않는 이상 천은사를 먼발치에서 스쳐 지나가게 된다.

천은사 쪽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문화재를 관람할 의사가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는 답변은 예상했지만, 천은사 소유 문화재는 천은사 본사 이외에 도계암·상일암 등 암자들도 있고 이 암자들은 861번 지방도로에 인접해 있어서 도로를 지나가면 자연히 보게 된다는 것이다.

거참. 설악산 신흥사를 담당했던 변호사께 그쪽은 이런 항변이 없었느냐고 물어보았다.

“여기는 더해. 설악산 국립공원 지도에 신흥사 땅을 표시했는데, 과장하면 주차장에서 권금성 케이블카로 올라가면서 보이는 땅의 상당 부분이 신흥사 땅이더라. 신흥사 문화재를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겠더라(나중에 판결문을 보니 신흥사는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173.7km² 중 관광객이 주로 찾는 외설악 쪽으로 38.6km²를 소유하고 있고 여기저기 흩어진 많은 문화재도 직접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1심은 패소했다. 뭔가 어색한 이 항변을 항소심에서 어떤 법률 연결고리로 받아쳐야 하나 고민하다가 똑똑한 후배 김태선 변호사(현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상의했다.

“행정법상 공물(公物) 개념으로 접근하면 어떨까요?”

도로는 일반인의 통행을 위해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공물인데,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공물을 이용한 행위를 가지고 천은사 소유 문화재를 관람할 의사가 있거나 천은사 소유 문화재를 관람했다고 보는 것은 공물의 개념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필이 왔다. 결국 항소심에서 승소하고 대법원에서도 최종 승소했다.

내 멱살 잡히는 걸 찍고 싶다?

대법원에서도 승소하자 담당 PD로부터 연락이 왔다. 천은사 앞에서 대대적으로 등산객을 모아 집단소송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절 앞에서 내 멱살 잡히는 모습을 찍고 싶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내부 논의 뒤 다른 사업도 많이 밀려 있고 이번 건은 대법원 판결까지 받았으니 다음 단계는 지역 단체 차원에서 지역 상황에 맞춰 대응하는 것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그리고 한 단체에서 판결문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왔고 자료를 건네주었다.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도 있고 해서 요즘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검색해보았다.

2013년 2월 광주고등법원은 문화재 관람료는 물론 위자료 10만원까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또한 사찰이 문화재 관람료 징수를 위해 861지방도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아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1회당 100만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불교는 어떤 종교보다 자연친화적이며 철학적 바탕도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깊이 있게 담고 있다. 따라서 사찰 소유 문화재를 어떻게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훼손되지 않게 보존·관리하느냐의 문제로 논의하면 더욱더 국민의 신망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데, 천은사 쪽이 문화재 관람료 문제를 너무 오래 끄는 듯하다. 가뜩이나 분노할 것도 많은 지금 시기에 이런 문제는 아름답게 매듭됐으면 한다.

이상훈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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