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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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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속의 아이

계모에게 맞아 16개의 갈비뼈가 부러진 채 사망한 영이
신고 의무 교육만 제대로 했어도 자료를 학교가 공유했어도, 안타까운 수많은 가정법
등록 2014-02-27 13:39 수정 2020-05-03 04:27

작은 시골 읍이 고향인 나는 중학교 때부터 도시로 유학을 와서 학교를 다녔고, 주말이면 시골집에 내려가곤 했다. 고향집과 이웃집들은 같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촘촘히 붙어 있어, 낮은 담 너머로 서로의 집 안마당이 훤히 다 보이는 모양새였다. 옆집 꼬맹이 사내아이는 참 자주 혼이 났다. 추운 겨울 그 꼬맹이는 벌거벗은 채 마당으로 쫓겨나 문고리를 잡고 서서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애원하며 구슬프게 울었다. 자주 보는 풍경이었다. 벌거벗은 채 벌벌 떨고 있던 하얀 아이, 쨍하고 깨질 듯한 추위, 목 놓아 엄마를 부르는 소리…. 당시 고등학생이었음에도 나는 반복되는 그 장면을 아동학대의 한 장면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말썽을 피우고 벌을 받는 아이, 그저 좀 심하게 혼내는 부모. 그런 생각은 내 부모도 마찬가지였는지, “애를 잡네, 잡아”라고 하면서도 남의 집안일일 뿐이었다.

섬유화… 상처가 아물기 전에 가해진 폭행

프랑스의 기자 출신인 심리학자이자 작가인 오틸리 바이는 라는 제목의 소설을 집필했다. 4살부터 12살까지 8년간 벽장 속에 묶여 지내며 학대를 당하다 구출된 아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해 갇힌 아이의 입장에서 쓴 소설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증언에 가까운 이야기다. 벽장 속의 아이는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벽장 속에 갇혀 벌을 받는다. 5살 아이는 자신이 가혹한 학대를 당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잘못해서 받는 벌이라고 여긴다. 아이는 벽장 속을 돌아가고 싶은 엄마의 뱃속이라 위안하며 힘든 시간을 견뎌낸다. 벽장 속의 아이는 서서히 그 존재조차 잊혀져 엄마는 점점 밥을 주는 것도 잊고 아이는 그렇게 망각 속으로 사라져간다. 작가는 학대당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 이 사회에 소리쳐 우리의 잠든 가슴을 깨우기 위해 썼다고 한다. 나는 다시 기억하기 위해, 다시는 잊지 않기 위해 기억 속 그 꼬맹이를 불러내본다.
지난해 10월 울산에서 계모의 학대로 사망한 영이(가명)의 이야기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사망 당시 8살이던 영이는 계모의 폭행으로 갈비뼈 24개 중 16개가 부러진 상태였고,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른 것이 사망의 원인이었다. 영이의 부검 결과 계모는 폭행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폭행을 반복해 영이의 엉덩이 근육이 소멸되고 섬유화가 진행된 사실이 확인됐으며, 다리를 부러뜨리고 화상을 입히는 등 잔혹한 학대가 지속된 것으로 드러났다.
영이가 사망한 이후 민간단체 관계자들은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았다. 민간단체들은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기 전에 우선 정부의 진상 조사 의향을 확인했으나 정부는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정부의 무응답을 사실상 거절이라 판단하고 국회와의 연계를 통한 진상 조사를 모색하던 중 민주당의 남윤인순 의원이 함께 하기로 해서 민간단체 관계자들과 교수·변호사 등이 자원해 진상조사위원회를 조직했다. 나도 변호사로서 진상조사 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위원회 참여자들은 영이의 사건이 신고(사망 2년6개월 전에 학대 신고가 있었다)에 의해 아동보호 체계 내에서 다뤄졌는데도 결국 죽음을 막지 못한 것에 주목하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면밀하게 조사해 현실에 근거한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자는 데 인식을 함께했다.

진상 조사에 정부가 나선 적 없어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그에 근거한 제도 개선안을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주체는 정부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단 한 번도 정부가 진상 조사에 나선 적이 없다.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의 모범으로 알려진 영국의 빅토리아 클림비 사망사건의 진상 조사는 영국 정부가 나서서 15개월 동안 37명의 조사패널을 구성해 진행했다(영국은 정부의 진상 조사 의무가 법에 명시돼 있다). 2000년 사망 당시 8살이던 빅토리아 클림비는 차가운 욕실에서 손발이 묶인 채 배설물과 함께 쓰레기봉투 속에 방치돼 있었다. 아이가 죽던 날, 병원으로 이송될 때 아이는 멍들어 있었고, 신체에 불구적 변형이 있었으며, 영양실조 상태였다. 클림비의 경우도 학대 사실이 노출돼 기관이 개입하고 있었음에도 사망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점에서 영이의 사례와 유사하다. 영국 정부는 클림비 사망사건에 대한 면밀한 진상 조사를 통해 적어도 12차례 클림비를 구할 기회가 있었음을 밝혀내고 이에 대한 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 클림비를 학대한 이모할머니와 동거남에게는 종신형이 선고됐다. 우리의 경우 영이 사건 전까지 불과 몇 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게 고작이었다.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바라보는 두 나라의 시각 차이를 알 수 있다.
영이도 구할 수 있었다. 2년 전 영이가 다니던 유치원의 교사는 온몸에서 묵과할 수 없을 정도의 멍을 발견하고 아동보호기관에 신고했다. 잦은 이사로 자신을 숨긴 계모는 더욱 교묘하게 영이를 학대했다. 사망 무렵 영이가 다녔던 학교의 선생님, 학원 선생님 모두 영이를 밝고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멍이 들고, 다리가 부러지고, 화상을 입었지만 다친 경위에 대한 아이의 설명과 엄마의 설명이 일치하고 항상 즉각 치료가 되었으므로 의심하지 못했다. 계모 역시 당연히 친모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입을 모아 말하는 걸 돌아보면 분명 학대의 징후였다. 동네, 유치원, 학교, 기관 등을 조사할수록 영이는 살릴 수 있었다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친모에게 연락만 했어도, 강제력을 동원해 부모를 조사할 수만 있었어도, 전문성을 갖춘 충분한 인력이 있었다면, 학대받은 아동이었다는 자료를 학교가 공유할 수만 있었어도, 아동학대 징후에 대한 철저한 교육과 신고 의무 교육만 제대로 되었어도, 학교에서 조기 발견을 위한 신체검사 등의 적절한 시스템만 갖추고 있었어도…. 너무 많은 제도적 허점이 아이를 구하지 못했다. 아니 우리 모두의 무지와 무관심이 아이를 구하지 못했다.

단 한 명도 벽장 속에 갇히지 않도록

영이의 경우 계모의 학대란 점이 부각돼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아동학대는 친부모·계부모 할 것 없이 발생하고 있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84%가 부모이며, 한 달에 한 명꼴로 학대로 인해 아동이 사망하고 있다.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인식, 훈육 수단으로 체벌을 정당화하는 관행이 가정 내 아동학대를 양산하고 은폐하고 있다. 학대받는 아동은 도움을 청하기에 너무 어리거나(언론 보도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학대받는 아동 중 1살 미만이 67%를 차지하는데,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의 사망까지 포함하면 그 비중이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보호자인 가해자에게 절대 복종하려는 성향을 보여 외부에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웃은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지 않는다. 장기간, 지속적인 아동학대가 가능한 이유다.
영이의 죽음으로 국회에 계류 중이던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부랴부랴 통과됐고,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고, 누군가 대신 소리 내어 구해야 한다. 단 한 명도 벽장 속에 갇혀 있지 않도록, 단 한 명도 목숨을 잃지 않도록 지켜봐야 한다. 제도가 잘 시행되는지 정부를 감시하고, 독촉하며, 부족한 제도를 보완해나가야 한다.

김수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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