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슬로우어스
지금으로부터 54년 전인 1970년 8월26일, 5만여 명의 인파가 뉴욕 거리를 메웠다. 평등을 위한 여성 파업(Women’s strike for equality)에 동참한 것이다. 이들은 외쳤다. 평등한 고용기회와 임금을 보장하라고. 1970년대 구미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가사에 매여 있는 한 평등을 실현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므로 우리를 착취하면서 희생정신을 찬양하는 것은 그만두고 가사·돌봄노동에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라고 곳곳에서 여성 총파업을 단행했다.
무려 반세기 전의 주장이다. 강산은 변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외국인 가사관리사’ 최저임금 논쟁을 보면 오히려 시간을 거스른 듯하다. 한국과 필리핀 간 물가 차이를 감안해 이들에게 임금을 차등 책정해야 한다는 말은 권리장전도 제정되기 전에나 통할 얘기다. 한국에 온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가정에 입주하지 않으므로 주거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냉면 한 그릇에 1만원이 넘는 나라에서 시급 9860원도 주지 않겠다는 것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조차 보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해 최저임금을 주지 말자고 소리 높이는 이들이 신봉하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사례는 애초에 글렀다. 장시간 노동, 인권침해 등 입주 가사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라고 국제연합(UN)과 국제노동기구(ILO)로부터 수차례 권고를 받은 지 오래다. 오죽하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도 반대했을까. 돌봄 서비스의 수요자가 기업이 아닌 개인이므로 비용을 더욱 낮춰야 한다는 여성가족부 차관의 말은 현 정부의 의중을 드러낸다. 국가의 돌봄 의무를 이주노동자를 경유해 개별 가정에 떠넘기겠다는 심산이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을 주는 것이 그렇게 아까울 정도라면 대체 가사와 돌봄노동의 가치를 그동안 어떻게 평가해왔단 말인가. 제대로 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아내’의 본분이자 애 엄마의 마땅한 도리인데 세월이 변했으니 그 옛날 한 달 담뱃값으로 두던 ‘식모’를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로 대체한 것뿐이다. ‘일’이 아니므로 최저임금을 보장할 필요도 없고, ‘일’이 아니므로 여성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없다.
그러나 일하지 않는 여성은 없다. ‘일하는 여자’는 ‘역전앞’처럼 중복된 표현이다.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적용받지 못하는 지불노동자와 공짜로 가사와 돌봄을 떠맡는 부불노동자만 있을 뿐이다. 가사노동을 여성만이 도맡아 하는 이 오래된 문제에 대한 고민이나 해결 의지 없이 무급을 유급으로, 이마저도 최저임금 이하로 대체하는 것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출산율 반등에도 당연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노래를 부르는 ‘일-가정 양립’은 사실 생뚱맞은 구호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에겐 직장과 가정 모두 일터다. 비자발적인 엔(N)잡러로 사는 이들에게 그나마 효용이 있는 말은 양립이 아닌 균형, 워라밸에 가까울 것이다. 전 국민의 1%도 안 되는 이들에게나 해당되는 상속세·금융투자소득세는 여야가 앞다퉈 덜어주겠다고 나서면서 여성의 가사·돌봄노동 부담은 왜 외국인 여성에게 싼값에 떠넘기는가. 여성은 여전히 51%의 소수다. 이런 식이라면 50여 년 전 여성들처럼 다시 총파업에 나서 외칠 수밖에. “우리는 아무것도 양립하고 싶지 않다.”
신성아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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