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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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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죄는 ‘열차사고방지죄’

1998년 발열 사고 원인 불량 윤활유 고발했다 해임된 열차 검수원들
1심 패소하자 1명은 자살, 5년이나 싸웠지만 1명은 구제받지 못해
등록 2013-08-14 15:47 수정 2020-05-03 04:27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어 외부에서 는 알 수 없던 대규모 감시 프로그램을 영국 을 통해 공개했다. 그러나 그는 망명 지를 찾아 떠도는 신세가 됐고, 현재 러시아 에서 임시 망명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지난 6월14일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과 관련해 원세훈·김용판이 기소됐다. 사건 자 체가 묻히거나 몇몇 국정원 말단 직원들에 대한 처벌로 그쳤을지 모를 이 사건이 원세 훈에 대한 기소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결정적 인 이유는, 모든 국민에게 알려진 ‘심리전단 의 조직·활동 내용’과 ‘원장 지시·강조 말씀’ 이라는 국정원 내부 문건일 것이다. 그러나 이 문건을 외부에 공개한 혐의로 국정원 직 원도 같은 날 기소됐다. 직무상 비밀을 누설 했기 때문이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문건을 ‘국정원’의 ‘직무상 비밀’로 보는 것도 문제지 만, 조직 내부의 환부를 드러낸 사람이 도망 다니거나 처벌받는 상황에 놓이는 것은 미 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인가보다.
만약 스노든이나 이 국정원 직원이 없었 다면 미국의 감시 프로그램도, 원세훈의 선 거 개입도 단순한 소문으로만 떠돌다 묻혔 을 것이고, 저들의 침묵의 카르텔은 우리를 계속 비웃고 있었을지 모른다.
<font size="4">없는 부품 다른 차량에서 떼내다가 사용 </font>
이런 일련의 보도를 접하노라면 변호사 1 년차 시절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사건 이 떠오른다. 승객의 안전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열차 검수원이던 그들은 당연히 지켜져야 할 철도의 안전 문제를 언론사에 알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일로 인해 부당한 징계를 당했고 복직을 위한 법정 싸 움을 5년이나 벌여야 했다. 징계를 받아 혼 자 동해로 전출돼 가족과 생이별을 강요당 한 분은 1심에서의 패소 소식을 듣고 얼마 되지 않아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우 리 사회가 그들의 행동을 격려하며 감사를 해도 모자랄 판에 너무도 가혹한 결과가 그 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 바퀴 축에서 열이 심하게 나는 것을 축상 발열이라고 하는데, 그 정도가 지나치 면 열차 바퀴에서 불이 나거나 열차가 탈선 할 만큼의 대형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한 다. 그런데 1998년 6~12월 그들이 일하던 차량 사무소에서 새마을호만 18건의 축상 발열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됐다. 1998년 12 월12일에는 경북 포항을 떠나 서울로 가던 새마을열차 차량의 차축 3곳에서 화재가 발 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사고 는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차량 사무소 에서 불량 윤활유를 사용하는 바람에 차바 퀴와 차축을 연결하는 베어링에 유막이 형 성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문제는 불량 윤활유만이 아니었다. 고장 이 나거나 수명이 다한 부속품은 교체를 해 야 하는데, 창고에 준비된 부품이 없어 당 장 운행하지 않는 다른 차량에서 필요한 부 품을 떼내 임시로 사용하는 보수품의 유용 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보수품 유용은 부품 의 노후화를 가속화하고 위험률을 높이기 때문에 철도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처음부터 언론에 문제를 제기하려 던 건 아니다. 노조원이던 그들은 노조를 통 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차량 사 무소는 그들을 부당하게 전환배치했고, 철 도 안전과 관련한 그들의 문제제기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러다 1998년 12월12일 포항 을 떠나 서울로 가던 새마을열차 차축에서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화재가 발생했다.
<font size="4">제보 아닌 다른 사유를 구실로 내세워 </font>
그냥 기다리기에는 어떤 대형 사고가 일 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인지라, 검수원들은 1998년 12월29일 철도노조와 도시연대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축상 발열이 불량 윤활유 때문이라고 폭로했고 언론은 앞다퉈 이를 보도했다. 그리고 1999년 2월5일 MBC 뉴스가 부품 유용의 문제를 지적했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횟수를 보면, 이 사건이 국민들에겐 얼마나 큰 관심 사항이었는지 알 수 있다. 감사원 역시 축상 발열의 원인, 철도청의 미흡한 대처, 땜질식 부품 교체 등 검수원들이 제기한 문제가 사실임을 확인해주었다.
그런데 당시 철도청은 MBC 뉴스 방영 직후 노골적으로 이 차량 사무소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진행하더니, 노조 활동과 관련된 시시콜콜한 이유를 들어 이들을 징계했다. 감사에 착수한 시점도 그렇고 징계 사유 역시 이미 합의해 해결된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누가 봐도 공익제보에 따른 보복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철도청이 명목적으로는 공익제보가 아닌 다른 사유를 구실로 내세우다보니 징계 사유 하나하나를 가지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큼 미국의 법제가 부러운 적도 없었다. 미국은 1989년 내부고발자보호법(Whistleblower Protection Act of 1989)을 제정했는데, 그 안에는 내부고발이 징계의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점만 입증해도 내부고발자는 보호받을 수 있다는 규정을 두었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1990년대 중반부터 일어난 입법 운동의 결과로 2001년 7월 공익제보자의 신변을 보호하는 법률이 제정됐다. 만약 이 사건이 지금 일어났다면 그들에 대한 징계가 공익제보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돼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 규정이 없다보니, 법원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1심에서 해임 처분을 당한 3명 가운데 2명은 다행히 구제를 받았으나, 공익제보에 앞장선 1명은 패소했다. 철도청은 소송에서 문제의 본질을 숨기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치졸한 인신공격으로 일관했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침묵의 카르텔을 깬 것이 전부인데 말이다. 다행히 항소심 재판부는 이들의 문제제기가 공익적 제보로서 정당하다고 보아 승소 판결을 내렸다. 싸움을 시작한 지 3년 만이다. 3년 동안 겉으로는 담담하게 보였지만 억울하고 분하고 허탈했을 그분들께는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위로의 시간은 짧았다.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을 인정하지 않았고, 해임당한 한 분은 끝내 소송을 통한 구제를 받지 못했다.
<font size="4">새내기 변호사를 믿어주셔서 고맙습니다</font>
5년의 힘든 싸움을 마치자 그들을 다시 만날 자신이 없었다. 한동안 이 사건만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묵직했다. 나는 제대로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했던가, 제대로 그들의 억울함과 아픔에 공감했던가. 해임당한 그분은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실는지…. ‘일터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개인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는데, 다른 일도 아니고 시민의 안전을 위해 너무나 당연한 것을 이야기했다가 자신의 기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으니 그 억울함을 어떻게 견뎌내셨을까. 이 사건을 늘 마음에 두고 있던 나는 1년의 안식년을 보내고 돌아온 직후에 용기를 내어 연락을 드렸다. 복직을 하여 검수원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대답을 듣고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정말 멀고 먼 길을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분들께서 이 글을 어디선가 읽고 계실 거라 기대하며 그때 차마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너무나 부족한 1년차 새내기 변호사를 믿고 큰 고민을 함께 나눠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먼 길 돌아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결국에는 당신들께서 승리하셨습니다. 역사는 당신들의 용기를 반드시 기억할 것입니다.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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