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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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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 앞에서

등록 2013-02-25 10:44 수정 2020-05-02 19:27

지옥문이 열린 걸까. 아직은 루비콘강을 건넌 게 아니다, 라고 믿고 싶다.
북한이 결국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오가는 말이 참으로 험하다. KBS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80% 넘는 응답자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 포기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단다. 이 좁은 땅에서 핵을 가진 북한과 함께 살아야 하나? 그럴 순 없다. ‘한반도 비핵화’가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목표여야 하는 까닭이다. 문제는 어떻게다. 핵무장론, 북폭론, 경제봉쇄론 등 강경책이 쏟아진다. ‘대화와 협상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자’는 호소는 미약하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국제정치의 행위자로서 주권국가의 선택지는 외교, 공작, 전쟁의 세 갈래로 나뉜다. 공작은 따로 언급하지 말자.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늘 있는 일이지만, 공작만으로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할 이도 없을 테니. 북핵시설 폭격은 해법이 될 수 있나. 일각에서 제기하는 북폭은 전쟁 불사를 전제한다. 북폭이 진지하게 추진된 적이 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다. 윌리엄 페리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 북폭 계획을 주도했는데, 최종 순간에 접었다.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밀 폭격이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고, 이 경우 초기 3개월간 미군 사상자 5만2천 명, 한국군 사상자 49만 명에 엄청난 수의 민간인과 북한군 사상자 발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더 복잡하고 심각하다. 페리 전 국방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북한 전역에 핵시설이 산재해 있고 핵무기는 아무 데로나 옮길 수 있다”며 “군사공격으로 북의 핵능력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실효도 없고 삶터를 잿더미로 만들지 모를 북폭은 선택지에서 제외해야 한다. “가장 비싼 외교가 가장 싼 전쟁보다 낫다”는 격언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핵무장’은 북한처럼 항상적 국제 제재를 받는 고립국가로 전락하는 걸 각오하지 않는 한 선택지가 될 수 없다.
남은 건 외교뿐이다.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판단이 외교 포기의 이유는 될 수 없다. 외교의 아름다움은 상대방의 전략을 바꾸는 데 있다는 걸 기억하자. 통상의 오해와 달리 협상이 외교의 전부는 아니다. 제재도 외교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북한의 핵 보유 의지를 꺾을 만큼 강력한 경제 봉쇄가 작동하려면 필수 전제가 있다. 중국의 전면적 참여다. 중국은 북한 대외무역의 90%(남북교역 제외)를 차지하고, 1376.5km의 국경선을 맞댄 정치·경제·군사적 후견 세력이다. 중국의 참여 없는 대북 제재가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건 지난 20년의 대북 제재 역사가 입증한다. 중국도 ‘핵 없는 북한’을 바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중국의 꿈’을 실현할 때까지 동북 지역이 안정돼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북한 없는 한반도’가 자국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으리라는 확고한 판단이 서지 않는 한 전면적 대북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대북정책 원칙이 ‘전쟁 방지(不戰), 혼란 방지(不亂), 비핵화(無核)’ 순으로 짜인 까닭이다. 시진핑 시대에서도 이 원칙이 쉽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친미반중’ 노선으로 일관해온 이명박 정부 5년의 폐해를 박근혜 정부가 반성적으로 고찰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북폭도 제재도 무망하다면, 남는 건 결국 협상뿐이다. 6자회담 틀을 되살리고,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에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경제 재건,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체제 구축 등 동북아의 평화 비전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꺼져가는 협상의 불씨를 어떻게든 되살려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 길뿐이다. 남과 북을 잇는 유일한 끈인 개성공단을 3차 핵실험의 후폭풍으로부터 지켜내는 게 첫발일 수 있다. 지혜로운 농부는 가뭄과 기근에도 종자는 먹지 않는다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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