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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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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어도 원전은 멈추지 않는다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탈핵’ 선언, 공사 중인 원전 언급은 없어
계획 단계 원전 사업 중단해도, 오히려 임기 중 원전 비중은 증가
등록 2012-11-30 12:02 수정 2020-05-03 04:27

‘정권은 바뀌어도 관료와 재벌은 영원하다’라는 말이 있다. 교체되지 않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실제 정권이 바뀌어도 이들의 입김 때문에 정책 방향이 변하지 않는 것을 그동안 봐왔다. 대표적인 것이 원전 정책이다. 원전 확대 정책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입안됐다. 이른바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도 이런 기본 방향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새로운 원전 건설은 계속 추진됐다.
 
당선돼도 원전 마피아에 둘러싸여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대통령이 되는 순간부터 관료들에게 둘러싸이고, 재벌과 경제적 이익집단들의 영향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는 순간, 혁신이나 개혁은 물 건너간다. 임기 5년 중 앞의 1∼2년을 어영부영 보내다 보면 시간은 다 지나가고 인기도 떨어지고 권력 누수 현상이 오기 시작한다. 따라서 정권이 바뀌기만 하면 변화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과거 민주정부 시절의 경험을 뼈아프게 돌아봐야 한다. 강력한 의지와 구체적으로 준비된 정책이 없으면 로드맵을 만들다가 시간을 다 보내게 돼 있다. 그것이 ‘관료 공화국’ ‘재벌 공화국’인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탈핵(탈원전)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탈핵에 대해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진보 쪽 후보들뿐만 아니라, 문재인·안철수라는 두 야권 후보도 선언적으로는 탈핵을 표방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국민의 뜻을 모아 가능한 빠른 시기에 우리나라를 원전 제로의 나라로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후보는 ‘탈핵’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원자력 비중의 점진적 축소”를 표방하고 있다. 유력 후보 중에서는 박근혜 후보만이 탈핵에 대한 태도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 총선 때 원자력 관계자를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한 것을 보면 사실상 원전 확대 방침일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야권 유력 후보 중에 누군가로 단일화돼 박근혜 후보를 꺾고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탈핵이 되느냐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는 순간부터 ‘원전 외에 대안이 없다’는 관료 집단과 ‘원전 마피아’로 불리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에게 둘러싸이게 된다. 그리고 이미 모든 법률과 예산과 정부계획이 원전 확대 방향으로 짜였다. 이런 상황에서 탈핵으로 방향 전환을 하려면 당선된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지금 탈핵을 추진하는 독일의 경우에는, 1998년 사민당과 녹색당 연립정부가 구성돼 맺은 정책 합의의 첫 과제가 탈핵이었다. 그만큼 정책 우선순위에서 탈핵이 앞에 있었던 것이다.
 
말로만 탈핵하는 상황 벌어질 수도

하승수

하승수

그런데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정책에서 탈핵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 있다. TV 토론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발표된 정책 내용을 봐도 의지가 부족하다. 두 후보가 밝힌 정책으로는 차기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탈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전 비중이 늘어난다. 두 후보는 현재 계획 단계에 있는 원전은 더 이상 짓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건설 중인 원전이다. 현재 건설 공사 중인 신고리 3·4호기, 신월성 2호기, 신울진 1·2호기의 5개 원전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두 후보는 얘기하지 않고 있다. 수명을 다한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라는 두 노후 원전을 폐쇄하더라도 5개 원전을 새로 지으면 원전 비중(전기 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의 32% 수준에서 37∼38%로 증가하게 된다. 원전에 더 의존하는 구조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탈핵은 더 어려워진다.

따라서 탈핵을 하려면 두 후보는 건설 공사 중인 원전에 대한 견해를 밝혀야 한다. 공사를 중단시키고 재검토를 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임기 내에 원전 비중을 얼마나 줄일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로는 탈핵을 표명했지만, 실제로는 원전 비중만 높여놓고 임기를 끝내는 무책임한 결과를 낳게 된다.

‘건설 중인 원전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원전은 가동과 동시에 막대한 중저준위·고준위 폐기물을 발생시키고 사고 위험을 증가시킨다. 수명이 끝난 원전은 거대한 방사성 폐기물 덩어리가 되고, 이것을 해체하는 데 10∼20년의 시간과 1조∼2조원의 해체 비용이 소요된다. 모두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일이다. 가능하면 하나라도 원전 개수를 줄여야 하는 이유다.

신규 원전은 송전탑의 추가 건설을 낳는다. 현재 공정률 30% 수준인 신울진 1·2호기를 완공하면 막대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765kV 초고압 송전선로를 260km나 추가 건설해야 한다. 대도시에서 쓰는 전기를 위해 지방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다. 외국에는 원전을 완공해놓고도 가동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 오스트리아에선 1978년 츠벤텐도르프 원전을 완공하고도 국민투표를 거쳐 가동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금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그때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고 자평하고 있다.

또한 탈핵을 하려면 전력 수요를 억제하고 재생에너지를 늘려나가야 한다.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는 자신의 임기 중에 재생에너지를 늘리겠다는 약속은 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노린 포석으로 보인다. 그런데 전력 수요를 어떻게 억제하겠다는 것인지는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핵심은 산업용 전기 소비를 어떻게 억제하느냐다. 그동안 정부는 전기 소비의 53%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를 원가 이하로 공급해서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대기업들에 특혜를 줘왔다. 전기요금이 유류 가격보다 저렴해지자 기업들은 전기 소비를 급격하게 늘려왔다. 이것을 바로잡으려면 산업용 전기요금을 50% 정도 올려 산업용 전기 소비를 줄여야 한다. 또한 전기를 많이 쓰는 대기업들은 일정 비율 이상 자가 발전을 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전기 소비의 30%를 자가발전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런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핵심은 너무 싼 산업용 전기

2011년 7월18일 울산 울주군에서 신고리 원전 4호기 원자로 설치 행사가 열리고 있다. 지금 건설 중인 원전 공사를 중단해 생기는 비용보다 원전을 완성한 다음에 생기는 부담이 더 크다고 환경단체는 주장한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2011년 7월18일 울산 울주군에서 신고리 원전 4호기 원자로 설치 행사가 열리고 있다. 지금 건설 중인 원전 공사를 중단해 생기는 비용보다 원전을 완성한 다음에 생기는 부담이 더 크다고 환경단체는 주장한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최근 전기 소비가 늘어나며 여름과 겨울마다 전력난이 반복되고 있다. 원전 추진 세력은 이것을 이용해서 ‘원전 불가피론’을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전력 수급 위기의 근본 원인은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과 그로 인한 전기 소비의 급증이다. 이 부분을 바로잡으려는 구체적인 정책이 있어야 탈핵이 가능하다.

스스로 정책을 못 만들면 갖다 쓰기라도 해야 한다. 이미 녹색당이나 시민사회에서 논의된 대안들이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이런 대안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미흡하다. 벌써부터 대기업들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요즘 들어 한국의 원전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단 한 번의 원전 사고로도 남한 전체가 방사능에 오염돼 버려진 땅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으로 탈핵을 하겠다면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탈핵이 된다.

녹색당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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