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는 해롭다
인터뷰도 그렇다
공지영 등단 25돌 기념선집 출간에 맞춘 인터뷰 홍수… 진보언론에서도 말할 기회 차단당한 소수들
누군가를 찾아가 예리하게 탐문하는 자가 있다. 상대방도 귀한 시간을 내서 성실히 답하고 진심을 내비친다. 둘의 대화에 동참해, 독자는 사람을 알고 그 너머 세계를 체험한다.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까지 갖는다. ‘인터뷰’의 힘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인터뷰는 그런 순박한 행위로만 남지 않는다. 치밀한 계산하에 이뤄지는 담론의 실천이자 지식의 발현, 권력의 소산이 된다. 여러 정황과 의도가 개입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자 현상과 다름없다. 스타를 탄생시키고 유행을 선도하며 트렌드를 이끄는 인터뷰다. 요즘 누가 대세인지 인터뷰에서 먼저 확인할 수 있다. 대중문화 산업의 풍속계로서 흥미롭고 중요하다. 요즘에는 공지영이 대세인 모양이다. 이 베스트셀러 작가와의 인터뷰가 대세다.
에 한윤형이 긴 글을 썼다. ‘진보언론의 공지영 인터뷰 홍수의 폐해?’라는 제목의 글이다. 논란과 관련해, 진보언론이 그에게 과다한 변명의 지면을 제공한다는 비판이다. 인터넷에서도 공지영이 한 인터뷰 동영상을 두고 논쟁이 뜨겁다. 논란 2회전이 지펴지는 듯하다. 나는 한 기자와 좀 다른 측면에서 공지영 인터뷰를 시비하고자 한다. 내용보다는 말 그대로 분량 자체를 두고서다. 간단하다. 공지영 인터뷰의 폐해는 최근 쏟아진 그 ‘홍수’ 같은 양에서 비롯된다. 작가의 얼굴을 우리는 나 혹은 같은 진보언론에서만 만나지 않는다. 에서도 연재기획으로 볼 수 있다. 지하철 등지에서 구할 수 있는, 진보와 무관한 무료 일간지다.
에서 그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다. 그렇다. 공지영은 지금 맹렬히 인터뷰 중. 에 나와 “첫 소설부터 지금까지 나의 영혼은 똑같다”고 답하고, 에서 김두식과 만나서는 “5년 전 그, 결혼 않고 헤어져서 좋았어요”라고 말한다. 에서는 지승호에게 “나는 약간 엉뚱한 일개 작가, 권력이 되는 게 싫어요”라고 심정을 토로한다. 그렇다. 등단한 지 25년이 되는 1천만 부수의 인기 작가가, 기념선집을 내며, 그렇게 분주히 여러 매체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그런 지면에서 과연 어떤 속 깊은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함께한 사진만 남는다. 문제는 뻔히 짐작되는 출판사업의 의중에 달려들고, 경쟁적으로 나눈 덕담을 ‘인터뷰’라며 내놓고 폼 잡는 진보언론이다.
권위 있는 인터뷰어를 앞세워 명성 갖춘 인터뷰이를 쫓는다. 전자의 무게감으로 후자와의 균형감을 갖추며, 그럼으로써 대담하는 두 사람의 권력은 물론이고 지면을 제공하는 매체의 권위까지 높이려고 한다. 명백한 권력의지다. 불편한 권력 속성이다. 담론권력, 지식권력, 문화권력의 행사다. ‘공지영’과 ‘지승호’와 ‘김두식’이라는 이름의 면식. 와 출판자본의 교제로서 충분하다. 결국 배신당하는 것은, 울림 있는 인터뷰를 통한 독자의 자기반성 기회다. 또한 생략되는 것은, 공지영만큼이나 많은 사연과 고난을 갖고 있지만 막상 글 쓰고 말할 기회가 차단된 이 땅의 약한 이들이다. 이들의 현실을 대화로서 면대할 우리의 인터뷰 기회다. 가을비도 좋고 소나기도 예쁘지만, 넘치는 ‘홍수’는 안 좋다. 인기 없는 소수자(와)의 인터뷰가 그립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사랑은 비판을
허락하는 것
선의와 당위에 묻혀버린 과오와 사과… 완벽하게 나뉜 옳고 그름은 없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자가 행사하는 폭력이란 무서운 것이다. 그 배경에는 당위가 있기 때문이다. 폭력도 정의가 된다. 그 어느 마땅한 항의가 돌아오더라도 그것은 그저 순교자를 향한 돌팔매일 뿐이다. 공지영 이야기다.
쌍용차 문제를 다룬 책 를 둘러싸고 공지영-하종강·이선옥 사이의 분쟁이 벌어진 뒤 시간이 조금 흘렀다. 유독 한 부분의 내용에 대한 출처가 빠졌다. 인용문을 가져와서 가필 형태를 띠었다. 공지영의 진심이 어떠하든 간에 상관없이 이것은 최소한의 절차상 사과가 뒤따라야 하는 문제다. 그러거나 말거나 출판사는 비겁하게 대처했다. 공지영은 진정 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다. 되려 구태 운동권의 인정욕구로 몰아붙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문제와 관련한 공지영의 대처를 바라보며 말 문이 막혔다. 그녀의 트위터 계정은 386의 평균적인 멘탈리티(정신)를 SNS에 소개하는 일종의 ‘봇’과 같이 느껴진다. 그 선의와 당위, 정의와 상식, 시민의 힘이라는 단어에 매료된 멘탈이 현실을 얼마나 뜨겁게 기만하는지 잘 보여준다. 세상에 완벽하게 나뉠 옳고 그름은 없다. 어디에나 틈새가 있고 세부적인 논의거리가 있으며, 그것들은 모두 동등하게 대우받고 평가받아야만 한다. 문제는 세상사의 명암을 자신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과오를 상대 진영의 불순한 지적으로 여기는 성향에 있다.
별 고민 없이 진영의 논리에 무임승차하기 위해 사람, 상식, 개념, 희망, 정의 이런 단어들을 동원해 어느 한쪽을 악으로, 내가 선택한 쪽을 선으로 규정하려는 노력은 세상을 아비규환으로 잡아 이끈다. 마냥 정의로운 것과 악의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더 나은 삶을 모색할 책임과 의무, 특권이 있으며, 이는 양 진영의 근본주의자들- 끊임없이 상대가 악마임을 주장해야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의 대의 안에서 찾을 수 없는 가치다.
최근 공지영은 와 월간 , 인터뷰를 통해 한치도 나아가지 않은 현실 인식을 드러냈다. “논란 아니에요. ‘논란’이라는 표현은 저에게 상처예요. 소란이 맞지 않나요? 전혀 문제될 이유가 없었어요”(한겨레) “내가 그걸 베낄 만한 문장이 전혀 아니다”(나·들) “우리끼리 치고 박고 미움이 전도되는 것이 힘들었어요. 여기서 일단 어떤 방식이든 내가 중단하자, 그런 생각을 하고 그 다음에 다 끊어버렸죠”(주간경향) 적잖은 이들이 공지영의 ‘문화권력’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상황을 들여다보면 이건 문화권력이 아니라 오직 추종자들만이 챙겨줄, 알량한 머릿속의 순교를 향한 아집으로 보인다.
적잖은 교수와 지식인들이 이상할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 말을 아끼거나 궤변을 동원해 공지영을 감싼다. 공지영의 진심 어린 사과 없이 이 사태는 봉합될 수 없다. 물론 여태의 상황을 돌이킬 때 그럴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허지웅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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