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 “임기가 없습니다.” ‘인기가 없습니다’로 들었다.</u> 말을 해야 아나. 알아요, 인기 없는 남자인 거. ‘네가지’도 아니고 광복절 경축사에서 왜 자폭을 하나 했다. 멘붕이 오셨나. 나만 이상한 건가. 그게 아니었다. MB의 광복절 경축사를, 순국선열의 자기희생과 숭고한 뜻을 기리며, 억지로 꾹 참고 읽어보았다. ‘경제’라는 말을 18번, 그러니까 십팔번이나 했더라. 우리 심정을 어찌 알고.
<u> “임기가 없습니다.” </u>분명 MB는 자기 입으로 인기가 아닌, 임기가 없다고 했던 것이다. 헌정 파괴가 대유행이라더니 너도나도 헌법을 작살내려나 보다. 딸이 아비의 쿠데타를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긍정하는 불미스런 세상이고, 그런 딸이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것을, 불혹의 나이에 봐야 하는 참으로 불한당 같은 세상에 살고는 있다만.
<u> 그동안 너무 더웠다.</u> 너무 더우면 사람이 그럴 수도 있다. 실내온도 28℃를 과연 청와대도 지켰단 말인가. MB의 헌정 파괴 발언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나 보다. 이건 특종이다. ‘한걸레 기자가 또 선동한다’는 댓글 잡소리를 닥치게 해주겠다. MB는 정확히 이랬다. “저와 정부는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돌보는 일을 국정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전력을 쏟을 것입니다. 정치는 임기가 있지만 경제와 민생은 임기가 없습니다.” 이건 뭔 소린가. 뭔가 아방가르드하면서도 부조리한 표현 방식인가. 정치는 임기가 있으니 일단 급하게 말아먹고, 임기가 없는 경제와 민생은 천천히 말아드시겠다는 것인가. 대놓고 영구집권을 획책하겠다는 건가. 인터넷에서 너도나도 가져다 썼던 ‘MB 임기 카운트다운 시계’도 정치 따로, 경제·민생 따로 돌아가고 있었나. 찾아보니 남은 임기가 ‘6개월7일23시간30분57초’를 막 지나가고 있구만. 국방부 시계 거꾸로 가는 꿈보다 더 깜놀했다.
<u> 딸의 아비처럼 3선 개헌이고 유신이고,</u> 뭐든지 해서라도 장기독재든 영구집권이든 하고 싶다는 의식의 흐름이, 집중호우에 하수구 넘치듯 맨홀 뚜껑 밀고 솟구쳐오른 것인가. 헌정 파괴 세력들에게는 구멍난 빤쓰만도 못할, 헌법 조문을 찾아봤다. 헌법 제70조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 대통령 더 하고 싶어도 ‘빽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u> 6개월 남았습니다. </u>너무 늦으셨습니다. 뭐라고요.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겁니까. 한번만, 한번만 다시 봐주세요.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제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당신, 돌팔이 아니야. 자기 얘기 아니라고 그렇게 막 말할 수 있어. 다시 한번 봐. 다시 한번 보라고! 6개월이라니, 6개월이라니! ‘6개월7일23시간19분51초’를 막 지나가네요.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을 아껴 쓰세요.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막 때리고 삽질했던 사람들 찾아다니며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사과하세요. 그리고 쓸데없이 일 벌이지 말고, 제발, 그냥, 남은 임기만 조용히 채우세요. 그게 본인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습니다.
<u> 그나저나 권리장전이 나오기 전인</u> 16세기 절대군주가 롤모델이라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에게 누가 헌법 좀 가르쳐주면 안 될까. 불가피하게 불안하다. ‘영국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45년이나 왕으로 군림했다. 꺅.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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