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난 정씨는 어깨가 결렸다. 무릎과 허리는 욱신욱신했다. 그저께 유리에 벤 손가락엔 아직 반창고가 덜렁덜렁 붙어 있다. 한 달째 고물상 일을 하는데도 일이 손에 익지 않는다. ‘그래도 출근할 수 있는 게 어디냐’며 끙 소리 한 번 내고 오늘도 일어선다. 고물상 일은 생각보다 출근을 서두르지 않아 좋다. 새벽 인력시장은 얼마나 일찍 나갔던가. 한겨울 쨍한 새벽 공기 속에서 오돌오돌 떨며 조금만 더 늦게 출근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때보다 지금은 얼마나 호강에 겨운가. 긴 줄로 늘어선 인부 사이에서 젊은 축에 껴 간택받아 올라탄 봉고차에서의 단잠은 꿀맛이었다.
뺑뺑이 일감, 고립된 나날
고물상 일은 아침 8시에서 오후 5시까지 했다. 공병을 분리하는 게 주로 하는 일이다. 먼저 부대에 담긴 소주병, 음료수병, 맥주병 등 다양한 병들을 한곳에 쏟아붓는다. 그다음 산을 이룬 공병을 종류별로 하나둘 박스에 담는다. 공병에 담배꽁초가 들어 있거나 휴지가 박혀 있는 녀석을 보면 예전 회식 자리가 떠오른다. 재떨이가 있음에도 빈 병에 재를 떨었던 기억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던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담배꽁초와 휴지가 박힌 병은 따로 취급했다. 공병 세계지만 여기에도 급이 있었다.
쓰레기 더미처럼 쌓인 공병이 내 신세와 꼭 닮았다는 생각을 할 때쯤 또 한 무리의 공병이 사정없이 쏟아진다. 하루 종일 공병들 속에 파묻혀 분리 작업을 하고 나면 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킨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해가 중천에 걸려 있어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엔 좀 머쓱한 시간이기도 하다. 소주 생각이 나서라기보다 어둑해지는 밤을 기다려줄 친구가 소주밖에 없어 술집에서 몇 개의 공병을 만든다.
출퇴근길에 지나치게 되는 회사를 볼 때마다 울화통이 터진다. 몇 차례 회사가 보이지 않는 곳을 택해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알량한 자존심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무력해지고, 언젠가부터는 출퇴근길 경로가 원래의 길로 바뀌어 있었다. 공병을 분리하는 일에 익숙해질 무렵, 6개월 정도가 되자 고물상 일도 더는 못하게 됐다. 젊은 청년들이 그 자리를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새벽 인력시장에서 젊다는 이유로 내가 나이 든 형들을 본의 아니게 밀어냈던 것처럼. 다시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 동료들처럼 노가다, 대리운전, 항만 일 등 닥치는 대로 해야만 하는 뺑뺑이 일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는 더웠다. 김씨의 이마에서 흐른 땀이 티셔츠를 흥건하게 적셨다. 쥐어짜면 금방이라도 물이 주르르 흐를 정도로 목에 두른 수건은 완전히 젖어 있어 무겁다. 덤프트럭 운전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다니는 일인 줄 알지만 실은 더위와의 싸움이다. 차에서 오르내리기를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하고, 적재물에 언제나 신경이 곤두선다. 고속도로 길 옆에 길게 늘어선 대형 트럭 안에서 잠을 청하던 기사들을 이젠 좀 이해할 것 같다. 쏟아지는 햇살만큼의 고통이 졸음이기 때문이다. 화물차를 ‘달리는 흉기’로 취급하는 일각의 시선은 당사자가 느끼는 공포에 비하면 한가할 정도다. 차량 안쪽 거울에 달린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고 기도하는 소녀의 모습은 ‘오늘도 무사할 수 있을까’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아내와 아이들과 떨어진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려움의 아르피엠(RPM)은 높아만 간다.
회사에 뒤통수 맞은 무급자들
좁은 길에서 차량이 기우뚱하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아찔한 나머지 식은땀 위에 식은땀을 쌓는다. 운전한 지 1년 가까이 다돼가지만 신경은 더 예민해지고 살은 더 빠졌다. 김씨는 원래 주방장 일을 했다. 서울의 유명 호텔 한식 조리부에 있었는데, 좀더 안정적일 것 같아 이 회사에 들어왔다. 그러나 지금 생활은 생각했던 평범한 일상에서 많이 떨어진 듯한 느낌이다. 가뭄으로 강바닥이 말라 갈라지는 뉴스를 보며 통장 잔고가 바닥나는 것이 떠오른다. 더 열심히, 더 악착같이 살았는데 평수 작은 곳으로 이사는 계속되고 있다. 쌍용차라는 회사가 지금이라도 불러준다면 들어갈까도 고민이지만 하던 일도 있고, 예전 동료들과의 관계로 돌아갈 자신이 없다. 그래서 요즘 운전대를 잡으면 딴생각을 자주 한다. 마주 달려오는 트럭의 경적과 헤드라이트 불빛에 깜짝 놀라 운전대를 다시 잡는 경우가 부쩍 많아진다.
지난 6월13일 회사는 3년 전의 약속을 지킨다는 언론 플레이를 시작했다. 쌍용차 노사가 무급휴직자에 대한 지원 방안을 합의했다는 보도였다. 기업노조(어용노조)와 회사가 마련한 이 방안을 접한 무급휴직자(1년 뒤 복직 약속을 받은 461명)의 첫 반응은 뒤통수를 맞은 얼떨떨함이었다. 쌍용차 회사가 말하는 무급휴직자 지원 방안은 자녀 학자금 지원과 명절 선물 지급, 회사 주식 150주 지급, 협력업체 취업 적극 알선이 핵심 내용이다. 무급휴직자는 엄연히 조합원 신분이다. 따라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뒤늦게 한 것뿐인데 마치 새로운 것인 양 호들갑을 떤다.
당장 쌍용차 무급자 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무급휴직자는 사 측과 공장 복직을 위한 단 한 번의 협의나 대화도 없었다. 합의 주체, 당사자가 빠진 실체 없는 합의는 인정할 수 없고 당장 폐기할 것을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22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이 자살하거나 죽어갔다. 회사가 합의서 내용을 지키지 않아 벌어진 일치곤 비극적이다. 회사는 무급자 실태를 조사한 결과 자녀 학자금 지원이 가장 절실한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대상자는 10여 명에 불과하다. 또한 협력업체에 우선적으로 취업하는 무급휴직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하겠다고 한다. 노동자를 길들이고 편 가를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갈등 해소가 아닌 다시 갈등의 땅굴을 파겠다는 것이다.
회사에 베인 마음은 어떻게 하나
쌍용차 사태가 3년을 넘었다. 지긋지긋한 기간이었고, 치 떨리는 시간이었다. 두려움과 분노의 시간이었다. 회계 조작에 의한 강제적 정리해고로 스물두 개의 세계가 사라진, 이 끔찍한 시대를 상징하는 정치적 사건이었다. 학계, 문화, 종교, 예술, 노동, 학생, 시민 등 다양한 이들이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거리와 현장 정치에 놀란 기성 정치권도 뒤늦게 쌍용차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국정 조사와 국회 청문회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할머니·할아버지가 하던 공병 줍고 분리하는 일을 쌍용차 무급자와 해고자들이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자리마저 일자리 가뭄에 시달리는 젊은 청년들이 메우고 있다. 공병을 줍다 벤 손가락은 치료할 수 있지만, 3년간 쌍용차 회사로부터 베인 마음은 어떻게 하나. 낯선 운전대를 잡으며 놓지 않았던 공장 복귀의 간절함은 또 어떤가. 쌍용차 파업이 벌써 3년째다. 이제 해결해야 한다. 공병에 어른거리는 노동자들과 운전대를 잡고 땀 흘리는 노동자들을 보며 쌍용차의 찢긴 3년 전 약속이 생각나는 지독히 더운 여름이다.
쌍용자동차 해고자·트위터 @nomad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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