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 그런지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과 불어오는 바람 냄새와 땅 위를 굴러다니는 꽃잎에서 완연한 봄을 느낀다. 공장 안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못 느꼈을 눈의 호사지만 마음은 영 진정되지 않는다. 사람이 오고 사람이 간다. 출근과 퇴근이 반복되는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에서의 일상은 드라마 혹은 영화 속 화면처럼 고정된 나와 움직이는 타인으로 구별된다. 따뜻하다 못해 더운 오후. 선선하다 하기엔 아직 선듯한 새벽녘 한기. 노숙농성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은 천근만근 늘어진다. 그러나 이야기로 한 근, 웃음으로 두 근, 울음과 분노로 또 한 근 덜어내고 깎아내 정상치로 돌리려 안간힘을 쓴다. 힘겹게 만든 정상치는 반복이 아닌 새로움의 연속이며, 다른 시작점의 출발이다. 하루하루 버티고 살아가는 것이 단순 반복의 연속이라면 이건 너무 잔인하고 가혹하다.
지난 4월4일 22번째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과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해 대한문에 분향소가 설치됐다. 분향소엔 수많은 사람들의 분향과 헌화가 이어지고 있다. 꽃을 두고 가는 사람, 떡·빵·음료수 등 여러 가지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싸오는 사람들이 늘 분향소에 있다. 한쪽엔 쌍용차 노동자들이 상복을 번갈아 입으며 자리를 지킨다. 간간이 터지는 웃음과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울음 줄기가 대한문의 하루를 오롯이 채운다. 경찰의 호시탐탐은 24시간 이어지고, 하루에 두세 번 있게 마련인 경찰들과의 푸닥거리는 이제 일상이 돼버렸다. 연행도 되고, 짓밟히기도 했으며,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먼지 속의 소음은 자장가가 됐고, 사람들의 무심한 시선과 어딘가 가는 종종걸음은 이어지는 생각을 끊임없이 가위질하고 편집한다. 밤새 맞은 이슬을 침낭에서 툭툭 털어내고 양초를 갈고 향을 다시 올린다. 더러워진 주변을 청소하고, 냄새 나는 양말을 갈아 신는다. 대한문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분향소가 차려지던 날부터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분향소를 지킨 사람이 있다. 작은 체구의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마이크를 쥔 손은 늘 떨렸고 이야기는 담백한 사람.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이다. 지난해 돌아가신 이소선 어머니의 아들이다. 침낭 하나와 깔판 한 장뿐인 한뎃잠을 마다하지 않는다. 매일 오는 것도 면구스러운데, 올 때마다 빵을 잔뜩 사서 온다. 영정사진 앞에 빵이 늘 쌓여 있는 이유다. 왜 매번 빵을 가지고 오시냐고 감히 묻지 못했다. 배고픈 노동자를 생각하는 그 마음을 짐작하는 건 몇 마디 말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죽지 말고 싸우자는 말 속엔 열사를 형으로 둔 이의 아픔이 묻어난다. 가족사가 한국현대사가 돼버린 사람의 마음을 난 아직 안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이 지닌 역사적 무게의 힘겨움도 가늠하기 어렵다. 그런데 빵에 담긴 그 마음만큼은 알 것 같다. 전태일 열사가 40년 전 여공들에게 사준 풀빵이 시공을 넘어 전태삼의 빵으로 대한문에서 우리 손에 전해지고 있다.
일과를 대한문에서 마치는 이들
1년 전, 그러니까 2011년 3월이다. 쌍용차 무급자 임무창씨가 죽었다. 13번째 죽음이었고, ‘쌍용남매’라 불리는 두 아이가 덩그러니 세상에 남겨졌다. 많은 이들이 마음을 보태고 안타까움에 연대의 손길을 보내왔다. 가수 박혜경씨는 기꺼이 아이들의 누나가 돼줬고, 정혜신 박사는 심리치유를 시작했으며, 레몬트리 공작단은 3개월 넘게 주말을 포기하고 경기도 평택으로 달려와 아이들과 조합원을 위해 시간을 쏟았다. 사회자 김제동은 웃음으로, 작가 공지영은 물심양면으로 우리를 도왔다. 명진 스님은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돼 때가 되면 용돈과 학용품을 사주었다. 투쟁하는 동지들은 또 어떤가. 그들이 지금껏 쌍용차 노동자들과 함께 맞은 건 비와 눈뿐만이 아니다. 벌금과 연행을 밥 먹듯 함께 했고, 서러움의 길바닥 밥을 또 얼마나 먹었던가.
그리고 또 한 부류의 사람들. 일과를 대한문에서 마치는 이들이 있다. 정보기술(IT) 업계 대표이사, 건축사,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 강원도에서 오신 분, 학원강사, 강남 직장인 등 이른바 ‘연대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궂은일을 가리지 않고 이들은 늘 자리를 지켜준다. 내 일처럼 아파하고 눈물을 흘린다. 분향소가 침탈당한 날, 연대인은 우리와 함께 울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안타까운 소식을 매일 트윗으로 알리고, 수줍게 찾아와 침낭과 음식을 놓고 이내 자리를 뜨는 이들도 있다. 우리 이야기를 글로 알리는 르포작가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 모든 사람이 지금 대한문 분향소에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과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이 빠르게 속도를 내고 있다. 노동, 학계, 종교, 언론, 문화예술, 시민사회, 정치권 등이 주축이 된 ‘범국민추모위원회’는 이번에야말로 쌍용차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이어지는 토론회와 기자회견, 쌍용차 100인 지킴이운동, 지난 4월1일 대한문 상주단과 4월21일 범국민추모대회는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기 위한 자리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이어지는 죽음과 진실 규명을 위해 우선 할 일은 무엇보다 정부의 공식 사과인데, 이를 누가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 결국 여론의 압력이 결정할 것이고, 요지부동인 상황을 사람만이 변화시킬 수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 가슴속에 쌓인 피의 응어리를 우선 풀어줘야 정상적 삶을 살아갈 희망도 근거도 생기지 않겠나. 그러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한다. 대한문 분향소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외로운 고도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하는 희망과 연대의 광장으로 바뀌어야 한다.
85호 크레인의 온기, 쌍용차 공장의 한기
외롭게 부산 바닷바람을 맞으며 사계절을 버틴 85호 크레인은 처음엔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죽음의 공간이었고 과거를 향한 아픈 기억이 존재하는 장소였다. 그런 85호 크레인에 살이 붙고 핏줄이 돌기 시작한 건 사람들의 발걸음이었다. 결국 수많은 사람이 사람을 살렸고 희망을 쐈다.
쌍용차는 어떤가. 죽음을 찍어내는 공장으로 나날이 속도를 높이고 있지 않은가. 공장 안팎으로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는 ‘자동차 절망 공장’의 대명사가 되지 않았는가. 인면수심의 괴물로 변해가는 회사 쪽을 따라 공장 안 노동자들도 어느새 그 대열에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망각한 인간들의 출퇴근 행렬은 죽음의 행렬만큼이나 끔찍하다. 이들은 두 부류가 있다. 이 죽음의 행렬을 모르는 사람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대열을 따라 걸어가는 사람이다. 파괴된 인간성은 보이지 않는 법이라 했던가. 이들도 점차 인간성을 잃어가고 사람의 온기를 상실한 냉혈한이 돼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대한문에 사람이 모여야 하는 이유는 죽음을 막고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공장 안팎으로 파괴되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사람의 온기와 인간의 핏줄을 만들어줘야 하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무감각의 괴물을 생산하는 것에 동의할지 모른다. 대한문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쌍용자동차 해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