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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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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부러진 화살

용역깡패 차에 치이고도 구속된 유성기업 노동자,
경찰 화살에 맞고도 옥살이하는 쌍용차 해고자…
파업에 이은 구속을 당연시 하는 사회, 회사 쪽 편드는 사법부가 바뀌어야
등록 2012-03-02 17:14 수정 2020-05-03 04:26

감옥이란 곳을 37살에 처음 들어갔다. 쌍용자동차 파업이 끝난 2009년 8월이다. 사람의 열기로 숨이 턱턱 막히는 좁디좁은 감옥에 15명이나 들어가는 ‘혼거방’은 그 자체로 고역이었다. 웃통을 벗고 생활하는 일이 다반사라 ‘형님’들의 화려한 문신은 처음엔 두려움과 공포였다. 생소한 감옥, 낯선 상황에 하루하루가 말 그대로 징역살이였다. 차츰 감옥에 적응해가던 무렵, 나는 우연히 책 한 권을 읽었다. 바로 이다. 얇은 책이라 금방 읽었다. 재판부가 더는 두렵지 않았다. 로 인해 사법부에 대한 내 마음속 두려움의 화살이 부러졌던 것이다. 온갖 비리와 탈법의 온상인 사법부가 두렵거나 겁날 이유가 없었다. 탈법을 저지르는 사법부 앞에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구속이 외려 당당해 보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후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재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뒤로도 노동자의 구속은 이어졌고, 사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과 집회는 계속되고 있다. 노동자에게 사법부는 여전히 규탄의 대상이지, 호소와 선처의 대상은 아니다. 적어도 쌍용차를 포함한 노동문제에 관해서는 말이다.

»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경찰에 연행되는 모습. <한겨레> 자료

»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경찰에 연행되는 모습. <한겨레> 자료

‘테이저 건’을 기억하는가

요즘 영화 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사법부로 향하자 열기는 더욱 증폭된 듯하다. 문외한이니 영화에 대해 말할 것은 별로 없다. 영화 속 노동자 현실과 영화 밖 노동자 현실에 대해 몇 마디 얘기하고 싶을 뿐. 영화에선 2000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당시 경찰이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상황을 조금 부연설명하면,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은 박훈 변호사와 함께 노동조합 출입을 요구했다. 법원마저 노조 출입을 허하라는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경찰에 의해 노조 출입을 저지당했다. 노조원들은 항의하는 차원에서 무저항의 표시로 웃통을 벗는다. 그러자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됐다. 진압하는 모습은 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알려졌고, 대우차 정리해고 투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머리가 터지고 온몸이 피범벅이 된 노동자들의 아우성이 아직도 생생하다. 쌍용차 2009년의 예고편이라도 되는 듯, 처절하고 끔찍한 모습이었다.

로 생긴 사회적 논쟁을 보며 불편함을 느낀다. 논쟁에 대한 찬반 또는 진실, 혹은 사실과는 다른 노동자들의 구속을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노동자의 파업은 구속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고 구속이 당연한 것처럼 사회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연 없는 무덤 없듯, 억울한 사연이 왜 없겠는가. 그런데 노동자들의 사연은 억울함을 넘어 잔인하다. 아니 잔인함을 넘어 짜인 각본처럼 진행된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그 본보기가 아닌가. ‘테이저건!’이란 용어는 2009년 7월 처음 들었다. 당시 쌍용차 노조 언론담당이던 나는, 그것이 어디에 쓰는 물건이고 정확한 명칭이 무엇인지 기자들에게서 듣게 됐다. 쌍용차 진압용으로 사용된 테이저건(전기충격기)은 5만V 전류가 순간적으로 흐른다. 작은 화살처럼 생긴 탐침을 쏘아 맞은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인명 살상이 가능한 무기다. 이른바 ‘테러 진압용’이다. 그것을 산업현장의 파업노동자들을 향해 쐈다. 테이저건에서 발사한 화살이 얼굴에 박힌 조합원이,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의무실에 덩그러니 앉아 있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돌이켜보면 경악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테이저건을 쏜 책임자는 처벌은커녕 제대로 된 조사를 받았는지 확인할 길조차 없다. 노동자들의 저항 정도는 억울함과 탄압의 정도와 맞닿아 있다. 그런 면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은 ‘순박하게’ 투쟁한 것이다. 사법부는 노동자의 현실에 애써 눈을 감았고, 예정된 판결을 내렸다.

» 경찰이 테이저건으로 발사한 화살이 얼굴에 박힌 쌍용차 노동자. 그러나 파업으로 구속당한 것은 노동자였다. 쌍용차 노조 제공

» 경찰이 테이저건으로 발사한 화살이 얼굴에 박힌 쌍용차 노동자. 그러나 파업으로 구속당한 것은 노동자였다. 쌍용차 노조 제공

유성기업 노동자의 화살은 어디로

지난해 6월 ‘밤엔 잠 좀 자자’는 요구를 내건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막으려고 ‘갑’인 완성차 현대자동차가 ‘을’ 관계인 부품사 유성기업을 방패막이 삼아 벌인, 전쟁 아닌 전쟁이었다. 회사 쪽이 고용한 용역깡패들은 대포차를 이용해 조합원 13명을 백주대낮에 집단으로 밀어버렸다. 이들의 수첩엔 유신코퍼레이션, 경상병원, 국민체육진흥공단, 대우자판, 부루벨코리아, 씨엔앰, 수원여자대학, 삼성물산, 재능교육 등의 개입 흔적이 빼곡했다. 이른바 전문 용역깡패였다. 그런데도 용역깡패는 용케도 법망을 비껴갔다. 아니, 사법부도 법의 그물을 그들에겐 애써 던지지 않았다. 맞은 사람은 ‘존재’하는데 때린 사람은 ‘유령’인 상황이 유성기업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지난 2월3일, 구속된 4명의 노동자에게 최고 3년의 실형을 비롯해 구속자 전원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이 정도면 노동자에게 ‘법은 늘 가진 자들을 위한 법’이라는 상식이 굳어지기에 충분하다.

96명이 전과자가 됐고, 300억원가량의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걸려 있다. 검찰 조사를 받은 사람은 300명이 넘었고, 3천 명이 실직의 고통을 겪었다. 3년 실형을 받은 한상균 지부장은 아직도 6개월을 더 감옥에 있어야 한다. 바로 쌍용차 이야기다. 쌍용차 파업은 기술유출과 정리해고로 시작됐다. 2007년 중국으로의 기술유출을 국가정보원이 인지수사에 나서며 그동안 ‘설’에 머물던 쌍용차의 기술유출이 본격적인 법적 문제로 넘어갔다. 그러나 검찰은 쌍용차 파업이 마무리된 2009년 11월이 되어서야 늑장 기소했다. 명백히 ‘봐주기’ 수사였다. 쌍용차 파업이 기술유출 문제임을 알고 있는 재판부는 우리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회사 쪽의 주장은 원문 그대로 받아들였다.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겠는가. 충분히 예상되지 않는가. 사법부가 우리 주장을 기각해 벌어진 노동자들의 삶의 기각을 보라. 쌍용을 넘어 수많은 사업장에서의 무자비한 탄압과 불법적인 폭력을 보라. 사업주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정리해고를 밥 먹듯 하고, 불법적 분사와 탈법적 인력 운영을 한다.

사법부는 노동을 공부해야

판사 가운데 노동자의 현실과 노동현장에 대해 이해하는 이가 얼마나 되는가. 노동 관련 용어를 아는 이는 또 얼마나 되는가. 기계적인 학습과 책상머리 공부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파괴하고 짓밟는지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그쳐선 안 된다. 노동법 공부를 하고 현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고 그 대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해 없는 판결이 수많은 노동자를 감옥으로 내몰고 억울한 길거리 인생으로 내팽개치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정치적 사건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사법정의가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면 그건 공염불이며, 정권에 따라 출렁이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어리석음이다.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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