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목소리 듣는 쌍용차 청문회한뎃잠을 자는 해고자에게 여름이 겨울보다 훨씬 낫다. 비를 피할 수 있고 전경보다 무섭다는 모기만 물리칠 수 있다면 어디서든 잠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서울 대한문 분향소에서 잠을 자던 중 가위에 눌려 눈뜬 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22명의 영정이 모셔진 ...2012-09-13 16:46
경찰은 새누리당 경비인가그날도 비가 왔다. 때늦은 장마에 노동자들의 피켓과 밤새 잠자리 노릇을 했던 얇은 은박지가 빗물에 젖어 어지럽게 거리 위를 떠다녔다. 비 오는 가운데 출근하는 시민을 향해 선전전을 하고 있는데 일이 발생했다. 오전 8시. 차량 외관부터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임을 알 수 ...2012-08-30 15:23
반복되는 오심, 정권의 편파판정펜싱은 잘 모르기도 했지만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 종목이었다. 그러나 이번 런던올림픽을 보며 펜싱이 꽤나 재미있다는 걸 알았다. 펜싱 경기 오심 논란 때문에 뒤늦게 관심이 생긴 것이다. 지난 4월5일부터 서울 대한문 천막농성을 이어가다 보니 올림픽을 볼 시간도 여건도...2012-08-15 17:02
미안하다는 말 이제는 하지 않을게요오늘 재판정에서 문득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법 파견에 관련된 재판이었는데, 제가 증인으로 나갔거든요. 증언을 준비하려고 입사한 때부터 지금까지 지난 시간을 기억해내고 장면들을 떠올려야 했어요. 재판정 증언대에서 선서를 한 뒤 답변을 하...2012-08-02 13:36
아무도 우리를 돌보지 않는다어린아이를 데리고 여름휴가를 떠났다. 벌써 4년이 넘은 얘기다. 처음엔 3살밖에 안 된 아이 걱정에 계곡으로의 여름휴가를 꺼렸지만 모처럼 가족 모두의 휴가여서 빠질 수 없었다. 누나들은 물 좋은 계곡에 자리를 예약해뒀고, 우리는 부랴부랴 물놀이 용품을 준비했다. 그런데...2012-07-20 23:03
공병 줍는 무급자 아침에 일어난 정씨는 어깨가 결렸다. 무릎과 허리는 욱신욱신했다. 그저께 유리에 벤 손가락엔 아직 반창고가 덜렁덜렁 붙어 있다. 한 달째 고물상 일을 하는데도 일이 손에 익지 않는다. ‘그래도 출근할 수 있는 게 어디냐’며 끙 소리 한 번 내고 오늘도 일어선다. 고물...2012-07-06 18:33
길 위에서 길을 만들다 나는 중학교 시절 난전에서 파는 운동화를 신고 다닐 정도의 가정형편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느끼지 못한 옷과 신발에 대한 창피함이 읍내로 중학교를 옮기자 사춘기의 몽정처럼 온몸으로 느껴졌다. 읍내 아이들의 가방과 옷, 신발이 부러웠다. 예민한 나이에 옷과 신발에 신경 ...2012-06-21 21:28
한상균의 달은 어디에 뜨는가얼마 전 음력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때마침 월요일에 오신 부처님 은덕으로 부처님의 가사장삼 황금빛처럼 3일간은 황금연휴였다. 더구나 화창한 날씨는 많은 사람들을 집안에만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산과 들, 그리고 유원지로 나들이를 나선 이들이 적지 않았...2012-06-06 18:07
웃음의 향을 피운 바자회[%%IMAGE1%%]솔방울을 줍고 따는 일로 산골 농부 아버지의 겨울 준비는 시작된다. 사과농사와 논농사를 마치고 나면 겨울에 할 뻥튀기 장사를 위한 채비다. ‘갈비’라 부르는 마른 소나무 잎도 잔뜩 끌어 모아둬야 한다. 뻥튀기의 땔감 연료로 사용되는 솔방울과 갈비를...2012-05-23 14:36
어버이날 날아온 해고 통보낮부터 마신 막걸리에 불콰해진 아버지는 쇠죽 끓이는 일도 잊은 채 동네 어른들과 술잔을 기울인다. 술 취한 주인 따라 카네이션도 덩달아 덜렁거렸지만 오늘만은 주인에게 소보다 귀한 것이 카네이션이다. 어머니는 연신 웃는 얼굴로 가끔 술잔을 홀짝거렸다. 누나 다섯에 아들 ...2012-05-11 18:02
대한문, 여기 사람이 있어요봄이라 그런지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과 불어오는 바람 냄새와 땅 위를 굴러다니는 꽃잎에서 완연한 봄을 느낀다. 공장 안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못 느꼈을 눈의 호사지만 마음은 영 진정되지 않는다. 사람이 오고 사람이 간다. 출근과 퇴근이 반복되는 서울 ...2012-04-26 14:40
작업복 대신 상복을 입는 우리들밤늦게 오는 문자는 달갑지 않다. 언젠가부터 생긴 이 버릇은 시골집에 홀로 있는 어머니 때문이었다. 연세는 75살을 넘기셨지만 아직 일을 하는 어머니가 고향에 계시다. 큰 병 있을까 병원 가기 주저하는 심정이랄까? 밤늦게 오는 전화나 문자가 가끔 두려울 때가 있다. 그...2012-04-11 15:26
왜 마름들은 갈수록 흉포해질까일전에 동국대 학생들을 우연한 기회에 만난 적이 있다. 교육을 상품화하는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해 총장실 점거투쟁을 한 이들치곤 첫인상이 착하고 앳돼 보였다. 이리도 착한 학생들이 총장실 점거투쟁을 했다니 조금은 의아할 정도로 밝고 명랑했다. 학생들을 만난 이유는 총장실...2012-03-30 11:38
준엄한 호응, 경고의 응원어린 시절 텔레비전을 통해 나오는 뉴스는 의심의 여지 없는 진리였다. 그만큼 방송의 힘은 대단했고, 기자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전두환을 텔레비전을 통해 처음 봤으며, 광주 5·18 살육을 ‘정의사회’ 구현이라 믿었던 것도 방송을 통해서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북의...2012-03-15 10:51
노동자의 부러진 화살감옥이란 곳을 37살에 처음 들어갔다. 쌍용자동차 파업이 끝난 2009년 8월이다. 사람의 열기로 숨이 턱턱 막히는 좁디좁은 감옥에 15명이나 들어가는 ‘혼거방’은 그 자체로 고역이었다. 웃통을 벗고 생활하는 일이 다반사라 ‘형님’들의 화려한 문신은 처음엔 두려움과 공...2012-03-02 1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