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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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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날아온 해고 통보

2009년 어버이날, 노동부에 2405명 정리해고 신고서 낸 쌍용차
‘가족’이라 부르다 ‘가축’처럼 짓밟아도 우리는 즐거운 일상을 복원한다
등록 2012-05-11 18:02 수정 2020-05-03 04:26
쌍용차 경영진이 어버이날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해고 신고서에 포함된 노동자 아버지는 농성장을 나오지 못하고 뜨거운 여름을 공장 안에서 맞았다. 2009년 7월, 고립된 아버지에게 ‘계란 특식’을 전하려고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 주변을 서성이다 지쳐가는 아이. <한겨레> 류우종 기자

쌍용차 경영진이 어버이날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해고 신고서에 포함된 노동자 아버지는 농성장을 나오지 못하고 뜨거운 여름을 공장 안에서 맞았다. 2009년 7월, 고립된 아버지에게 ‘계란 특식’을 전하려고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 주변을 서성이다 지쳐가는 아이. <한겨레> 류우종 기자

낮부터 마신 막걸리에 불콰해진 아버지는 쇠죽 끓이는 일도 잊은 채 동네 어른들과 술잔을 기울인다. 술 취한 주인 따라 카네이션도 덩달아 덜렁거렸지만 오늘만은 주인에게 소보다 귀한 것이 카네이션이다. 어머니는 연신 웃는 얼굴로 가끔 술잔을 홀짝거렸다. 누나 다섯에 아들 둘인 집이라 카네이션 일곱 송이를 모두 달긴 어려웠다. 작은 화분과 조카 녀석들이 만든 종이 카네이션이 총동원돼 시골집 흑백텔레비전 둘레를 온통 천연색으로 물들였다. ‘쓸데없이 돈 쓴다’고 타박하던 어머니도 몇 날이고 카네이션을 달고 다닌다. 보무도 당당하게 어깨는 폈고, 자식 많은 것이 이날만은 뿌듯한지 카네이션 수가 줄어드는 해는 서운한 눈치다. 잔업 특근이 잡혔어도 이날만은 열 일 제쳐두고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 고향으로 달려갔다. 어버이날은 내게 소중한 일상 가운데 으뜸이다.

꺾인 카네이션, 짓밟힌 일상

2009년 5월8일 어버이날, 쌍용차는 여전히 법정관리 상태였다. 벌써 250여 명이 희망퇴직을 강요당한 뒤였고, 남은 사람에게는 정리해고 투쟁이 임박해 있었다. 어버이날인 그날, 쌍용자동차는 고용노동부에 2405명에 대한 정리해고 신고서를 제출한다. 하필 이날을 선택한 회사의 대범한 도발에 ‘개 같은 놈들’이란 분노가 현장을 가득 메웠다. 고용노동부로 향하는 항의 집회는 어느 때보다 격렬했고, 참가 인원도 훌쩍 늘었다. 이날만은 피해줄 거라 기대했던 것일까. 배신감과 분노로 가득 찬 조합원들은 고향 대신 광장으로 모였고 누구도 고향에 가지 못했다. ‘수십 년 일한 회사가 이럴 줄 몰랐다’는 한탄은 가슴 한켠에 남아 있던 눈꼽만큼의 기대마저 분노로 변하게 만들었다. 회사 쪽은 왜 하필 5월8일 어버이날을 택해 정리해고 신고를 강행한 것일까?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이라서인가, 아니면 실무자의 단순 실수일까? 나는 지금도 그것이 궁금하다.

공장의 평화가 있던 시절, 어버이날이면 우리는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일을 했다. 부모 가슴에 달아주던 카네이션이 이젠 우리 가슴으로 옮겨온 것이다. 조그만 고사리손들은 종이 카네이션을 만들었고, 더 큰 아이들은 이날을 위해 용돈을 모아 부모를 행복하게 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부모가 또 그 부모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어버이날 풍경은 이렇듯 즐거움과 기다림이었다. 그런데 회사는 이 행복한 일상을 보기 좋게 짓밟았다. 제아무리 잘났건 못났건, 가난하건 부자건 아이에겐 충분히 존경과 사랑을 받을 대상이 부모가 아니던가.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런 사람이 엄마·아빠가 아니던가. 아이들이 뺏긴 건 카네이션이 아니라 일상의 평화와 생활의 즐거움이었다. 고향에 못 간 우리처럼 준비한 카네이션을 달아주지 못한 우리 아이들은 2009년 어버이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회사가 짐승으로 느껴졌다

“인간의 탈을 쓴 자들이라면 적어도 오늘만은, 적어도 오늘은 아니어야 했습니다. 그러함에도 굳이 오늘 노동자 사형선고를 한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행위입니다. 2405명의 인원을 노동부에 신고한 공동 관리인은 집으로 돌아가 떳떳하게 자기 가슴에 꽃을 달겠지요….”

2009년 5월8일 급히 낸 촌평의 일부다. 성명서 내기엔 어이없었고, 규탄서 작성하기엔 저들의 질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촌평으로 대신했다. 돌이켜보면 짧은 촌평을 쓰며 느낀 분노와 좌절은 작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환멸과 함께 회사가 짐승으로 느껴졌다. 지금도 이들은 다가오는 어버이날 어떤 선물을 주고받을지 고민할 것이다. 군사독재 정권 때 밤새 잔인하게 고문하다 아침이면 딸아이와 다정한 대화를 나눴다는 인간 백정들을 보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이번 수능에서 대학에 합격해 온 가족이 자랑하던 자식놈 등록금을 강탈하겠다고 합니다. 긴병에 효자 없듯, 몇백만원 들어가는 자식 병원비를 지급 못하겠다고 합니다. 아파트 대출금 돌리려고 퇴직금 중간정산 하려는데 그것도 일방적으로 막았습니다. 난생처음 부모님 해외여행 시켜드린다던 약속은 거짓말로 변했습니다. 새벽녘 쏟아지는 잠 줄여 하나둘 모아둔 연·월차가 이제는 휴지 조각이 돼버렸습니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니 야식으로 지급되는 라면을 안 먹을 수 있고, 떨어진 작업복은 꿰매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백한 임금 강탈인 승호 중단과 승격 중지는 우리 아이의 밥그릇을 뺏는 비열한 짓입니다. 경조금, 검진, 선물, 생계보조금, 위안금, 장기근속자 포상 등 사 측은 14개의 단협 위반과 20개가 넘는 별도 합의서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2008년 12월 노조 선거 결선 홍보물 가운데)

회사는 2008년 노조 선거가 진행되는 가운데 단협 파기라는 도발을 한다. 차기 집행부의 선택의 폭을 앗아간 것이다. 손발 다 잘린 채 필사적으로 지켜온 모든 복지와 생계비마저 중단해버렸다. 함께 살자는 노조의 제안에 콧방귀도 뀌지 않은 이유를 우리는 뒤늦게 알게 된다. 회사는 처음부터 정리해고를 강행할 목적으로 노조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자본이 이기지 못하는 인간의 질서

돌이켜보면 회사는 우리의 일상부터 공격해 들어왔다. 어버이날 정리해고 신고를 강행한 것은 실수였을 수 있다. 신고하고 보니 어버이날임을 알고 화들짝 놀랐을 수도 있다. 고의였다면 악랄한 것이고, 실수였다면 노동자의 일상엔 관심 없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고의건 실수건 자본이 노동자를 ‘발톱에 낀 때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은 적확한 표현이다. 회사가 잘나갈 때는 ‘가족’이라 부르지만 쫓아낼 때는 ‘가축’보다 못한 대접을 하는 것이 자본이다. 그들이 파괴한 일상의 생태계엔 아이가 있고, 부모가 있고, 가족이 있다. 고단한 노동에도 숨 쉴 수 있는 허파 같은 공간이 가족인데, 자본은 이 가족을 철저히 공격 지점으로 선택했다. 부모도 아이도 아내들도 모두 숨 쉴 수 없을 만큼 괴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아무리 우리의 일상을 파괴하고 짓밟아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것이고 삶을 복원해나갈 것이다. 아픈 곳을 아는 우리는 자본의 질서가 아닌 인간의 질서와 관계로 즐겁게 다시 살아 숨 쉴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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