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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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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오심, 정권의 편파판정

등록 2012-08-15 17:02 수정 2020-05-03 04:26

펜싱은 잘 모르기도 했지만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 종목이었다. 그러나 이번 런던올림픽을 보며 펜싱이 꽤나 재미있다는 걸 알았다. 펜싱 경기 오심 논란 때문에 뒤늦게 관심이 생긴 것이다. 지난 4월5일부터 서울 대한문 천막농성을 이어가다 보니 올림픽을 볼 시간도 여건도 되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새벽 시간을 적당히 즐기며 올림픽을 봤을 텐데, 해고자가 되고 나선 스포츠 경기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 이런 사정에도 펜싱 경기를 다시보기 기능을 이용해 몇 번 본 이유는 어떤 부분이 오심이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명백한 오심에 눈물을 떨구던 신아람 선수의 모습을 반복해 보며 ‘정말 억울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땀방울이 심판의 순간적 판단과 실수로 정정당당하게 겨뤄보지도 못한 채 꺾일 때의 박탈감이 고스란히 마음으로 느껴졌다. 반복되는 오심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오심도 경기의 일부이기 때문에 운에 맡기면 되는 것인가.

지난 8월6일 경기도 안산 SJM 고장 앞에서 김영호 SJM 노조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멀리 뒤에는 회사가 쌓아둔 컨테이너가 있고, 경찰은 공장 접근을 막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지난 8월6일 경기도 안산 SJM 고장 앞에서 김영호 SJM 노조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멀리 뒤에는 회사가 쌓아둔 컨테이너가 있고, 경찰은 공장 접근을 막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편파적인 심판에 대한 철석같은 믿음

올림픽 개막이 있던 날 새벽부터 전화기는 쌓이는 문자로 몸살을 앓았다. 급박한 상황이 수시로 들어왔고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7월27일 새벽 4시를 기해 전격적으로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의 자동차부품업체 SJM 공장에 용역이 난입한 것이다. 컨택터스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방패를 들고 헬멧과 곤봉으로 중무장한 컨택터스는 경찰과 구분이 되지 않았다. 300여 명의 용역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새벽 시간을 틈타 공장 접수 작전을 벌였다. SJM 조합원 70여 명과 금속노조 조합원 80여 명이 공장 안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었지만 버틸 재간이 없었다. 용역들은 잡히는 대로 던지고 짓밟았다. 곤봉으로 두들겨패고 쇳덩어리와 소화기를 던진 것은 물론 심지어 자리를 피하는 조합원을 따라가 폭행하기도 했다. 용역들의 SJM 공장 접수 작전으로 조합원 3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가운데 11명은 팔다리가 부러지고 치아 함몰까지 발생했다. 새벽에 벌어진 컨택터스 용역 활극은 2시간이 지난 아침 7시가 돼서야 끝났다.

곧바로 SJM 사 쪽은 아침 7시 직장폐쇄를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에 신고한다. 직장폐쇄도 하기 전 용역을 투입해 폭행을 저질러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밀어낸 것이다. 명백한 불법임을 알면서도 이들은 보란 듯이 반칙을 했다. 또한 경비업법 제18조에 따르면 용역 투입 24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들은 신고하지 않았다. 출전 선수 명단을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올림픽으로 치면 부정선수였다. 자격 박탈은 물론 선수 생명이 끝나는 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름만 바꿔 지속적으로 출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폭력이 일어나던 2시간 동안 경찰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을까. 마치 격투기 심판인 양 옆에서 지켜만 봤다. 조합원들의 112 신고엔 늑장 출동했고, 살려달라는 호소는 팔짱 낀 채 듣지 않았다. 사 쪽은 어떤 배짱으로 이렇게 움직였을까. 이들은 어떤 출발의 총성을 들었기에 미친 듯 새벽에 공장을 질주한 걸까. 어떤 상황에서도 가진 자들의 편을 들어주는 이 사회에 수두룩한 편파적인 심판에 대한 철석같은 믿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안산 SJM 공장에 용역이 난입한 날 오후 이명박 대통령은 휴가 전 국정현안점검회의를 한다. 안산 SJM 공장에서 벌어진 용역들의 폭행으로 노동자들의 팔다리가 부러지고 치아 함몰이 있었음에도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날 오후 3시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용역을 투입한 만도에 대해 고액 연봉과 귀족 노조라는 프레임으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연봉이 높은 귀족 노조가 나라 경제가 어려운데 무슨 파업을 벌이느냐는 것이다. 국정현안점검회의 시간이 오후 5시임을 고려하면 직장폐쇄 사실이 실시간으로 보고되고 있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국정현안점검회의에서 다뤄진 노동문제가 실은 노동 현안이 아니라 자본 현안으로 다뤄졌던 것이다. 노동자 피해 상황에 대한 점검이나 조처가 아니라 자본의 억울함과 신속한 대응을 위한 유관기관 대책회의였던 것이다. 만약 국정현안점검회의에서 용역경비업체와 폭력의 문제가 지적됐다면 어땠을까. 팔짱 낀 채 사태를 악화시킨 경찰에 대해 바로잡았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이런 바람은 무망할 정도로 폐기된다. 언제나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그들의 표현대로 마사지되고 삭제됐다.

편들기 넘어 잘못된 신호 주다

지난 8월6일 런던올림픽에서 발생한 일련의 오심 논란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올림픽은 영광의 순간만큼이나 안타까운 일도 많았다” “경기에 최선을 다했고 판정은 심판이 하는 것이니 선수로서 결과에 승복한다고 했지만, 솔직히 저 개인적으로는 그 판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연설을 접하면서 SJM과 만도, 그리고 용역업체 컨택터스가 생각났다.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불법과 편파 판정, 일방적 탄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올림픽에서의 오심까지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불만을 제기했다. 오심이 일었던 종목과 선수를 일일이 지목해 구체적 사례까지 들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편파 판정에 시달리고 동일한 출발선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왜 아직까지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 것인가. 쌍용차 노동자 22명과 백혈병 등에 걸린 삼성전자 노동자 56명이 목숨을 잃었다. 제주도 강정에선 신부가 용역에 폭행당하고 성체마저 짓밟히고 있다. 경남 밀양에선 송전탑으로 인해 마을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 이 죽음과 고통, 탄압과 억울한 노동자의 사정은 왜 조목조목 말해지지 않는가. SJM과 만도에 용역이 투입된 날 정부는 일방적으로 자본의 편을 들었고 결국 자본에 잘못된 신호를 줬던 책임은 없는가.

열대야에도 마음 졸이며 지켜봤을 런던올림픽이 8월13일 폐막된다. 선수들은 또다시 4년을 준비할 것이고 4년 뒤 또 다른 드라마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오심이 점점 늘어나고 결과를 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된다면 과연 올림픽의 가치는 유지될 수 있을까. 이번 런던올림픽은 공정무역을 표방해 모든 음식에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하는 등 ‘공정’에 무게를 뒀다고 한다. 그러나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 인형을 만드는 중국 공장에서 노동 착취가 발생했다는 보도는 공정무역을 무색하게 했다. 얼마 전 정부는 공정한 사회를 주창한 바 있다. 결코 공정하지 않은 제도와 법의 적용 속에서 노동자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며 어떻게 공정한 사회라 말할 수 있겠는가.

심판이 상대 팀의 일원으로 뛰는 꼴이니

심판이 있는 상황에서도 오심이 있고 페어플레이를 기대하기 어려운데 정작 심판을 봐야 할 당사자들이 심판은커녕 한 팀의 일원으로 게임을 뛴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우리는 심판 없는 게임을 강요당하고 출발선은 제각각이며 달려야 할 거리도 도약할 도약대도 모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자본과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밀리는 자본의 게임에서 적어도 조건과 기회는 함께 주어져야 하지 않는가. 여름 올림픽 오심보다 심판을 자임하는 자들의 일상적인 편파 판정 속에서 무덥다.

쌍용자동차 해고자·트위터 @nomad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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